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敗戦の後朝鮮を発ちたがらなかった .. jokkbari ..ハハ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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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を発ちたくなかった日本人たち

しかし敗亡という衝撃の中で韓半島を発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日本人の姿に関心を置いた事がなかった. 無関心のためなのでそうだったろうか. これに対する研究資料を接したこともほとんどなかった. それで敗戦後韓半島を発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日本人たちの姿をグリーン <朝鮮を発って>を接しながら受けた衝撃が大きかった. 敗戦を当たった彼らが韓半島を発ちながら残した染みが光復 68年を送った今までも強く残っているから. 

燃え上がる目つきでイム・ジョングクを睨んだ日本敗残兵のように日本の敗亡を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日本人たちも多かった. 支配者として享受した特権が根こそぎ崩壊した状況で朝鮮で生まれて育ったし, 一家も親戚も財産も皆朝鮮にあった日本人たちがそのすべてのものをあきらめて軟膏さえつたない日本に帰るよりはどうしても朝鮮に残りたかった. 

植民地支配の上層にあった日本人官僚, 大金持ちなど高級情報を独占した人々が早目に財産を処分して日本に不法搬出したが, 高級情報を接することができなくて日本が敗亡することとは想像もできなくて暮して来た日本人たちの中には自分たちが ¥"故郷¥" 同じ朝鮮を発って不慣れな ¥"日本¥"に帰らなければならない現実を受け入れにくかった.

彼らは自分たちが根付いて暮して来た地が朝鮮人の地だと考えて見たことがほとんどなかった. 当時朝鮮にあった公衆浴場は大部分朝鮮人の出入りを禁止した. 日本人は朝鮮人と一浴槽に身を浸す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考えであった. 彼らは朝鮮地に住みながら朝鮮人の存在を念頭に置かなかった. 敗戦後うって変わった朝鮮人の姿を通じてはじめて朝鮮人の存在感を感じながら恐怖と恐ろしさに震えた. それとともに一方では朝鮮人たちを向けた怒りと敵がい心を積んで行った. 

敗戦と言う(のは)おびただしい現実の前にマッダックトリン日本人たちは朝鮮に残った財産を処分して本国に無事に帰るための道を捜すために可能な方法をすべて動員した. 現金を捜すために銀行に駆け付けたし, ざりがに道具を市場に売ったし, 土地と建物などを処分するために東奔西走した. その結果市場にかもうというあふれたが, 一分け前を狙ったおもわく師たちの買い留めるのが重なって空高いとは思わなくて物価は聳えた. 解放の喜びに浮き立っていた朝鮮人たちも聳える物価高の苦痛から脱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まだゆらめく彼らの影

解放直後から大韓民国政府樹立の前まで米軍政と句朝鮮総督府高官たちが結託しているといううわさが絶えず出回った. 過去朝鮮地でいろいろの悪事をやらかした私は朝鮮総督府学務局長時オオバだとドキサブロと財務局長ミズタナオマサ, 私は朝鮮銀行副総裁ギミジマIchiroなどが朝鮮に泊まっているという記事が 1948年 6月 8日 <京郷新聞>に出た. 一方新文記自晦は旧総督部内助説の外にも済州島 4・3 事件当時 200余名の日本人が討伐どおり投入されたという疑惑を申し立て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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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후 조선을 떠나기 싫어 했던 .. jokkbari ..허허

조선을 떠나기 싫었던 일본인들

하지만 패망이라는 충격 속에서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일본인의 모습에 관심을 둔 적은 없었다. 무관심 때문이어서 그랬을까. 이에 대한 연구 자료를 접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패전 후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린 <조선을 떠나며>를 접하면서 받은 충격이 컸다. 패전을 맞은 그들이 한반도를 떠나며 남긴 얼룩이 광복 68년을 보낸 지금까지도 질기게 남아있으니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임종국을 노려보던 일본 패잔병처럼 일본의 패망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본인들도 많았다. 지배자로서 누리던 특권이 송두리째 붕괴한 상황에서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고, 일가도 친척도 재산도 모두 조선에 있었던 일본인들이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고조차 변변찮은 일본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어떻게든 조선에 남고 싶었다. 

식민지 지배의 상층에 있었던 일본인 관료, 갑부 등 고급 정보를 독점한 이들이 일찌감치 재산을 처분해서 일본으로 밀반출했지만,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없어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며 살아왔던 일본인들 중에는 자신들이 "고향" 같은 조선을 떠나 낯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은 자신들이 뿌리내리고 살아왔던 땅이 조선인의 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당시 조선에 있었던 공중목욕탕은 대부분 조선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일본인은 조선인과 한 욕조에 몸을 담글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들은 조선 땅에 살면서 조선인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패전 후 돌변한 조선인의 모습을 통해서 비로소 조선인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인들을 향한 분노와 적개심을 쌓아나갔다. 

패전이란 엄청난 현실 앞에 맞닥트린 일본인들은 조선에 남은 재산을 처분해서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했다. 현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갔고, 가재도구를 시장에 내다 팔았고, 토지와 건물 등을 처분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시장에 물자는 넘쳐났지만, 한 몫을 노린 투기꾼들의 사재기가 겹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물가는 치솟았다. 해방의 기쁨에 들떠 있던 조선인들도 치솟는 물가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직도 어른거리는 그들의 그림자

해방 직후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미 군정과 구 조선총독부 고관들이 결탁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과거 조선 땅에서 갖가지 악행을 저질렀던 전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 도키사부로와 재무국장 미즈타 나오마사, 전 조선은행 부총재 기미지마 이치로 등이 조선에 머물고 있다는 기사가 1948년 6월 8일 <경향신문>에 났다. 한편 신문기자회는 구 총독부 내조설외에도 제주도 4·3 사건 당시 200여 명의 일본인이 토벌대로 투입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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