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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ソウルの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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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北村写真 - 鍾路区仁寺洞(鍾路区 仁寺洞) (1901年写真)

上の写真の場所は厳密に言えば北村に規定される才童,嘉会洞,三清洞一帯ではないが

北村は広い意味で定義すれば 清渓川と 鍾樓の北にある町内という意味で

写真に取れた区域がすぐ鐘路大道(大路)と鍾樓北にあたる.

[梅泉野録](梅泉野録) 圏1 お膳によると

ソウルの大道である鍾樓以北を北村と呼んで 老論以下権勢ある両班たちが暮しているし...

と記録されていて鐘路どおり(鍾路大路) 北地域を北村で規定していることを分かる.

上の写真のアングル (1901年完工された漢城電気会社(漢城電気会社) 社屋で  北西の方(景福宮方向)を見て撮った写真)

 

鍾路区内需洞(内需洞) 地域(1894年写真)

朝鮮時代慶喜宮と六朝距離(通り)の間に位した地域で

主に衆人たちと下級役人たちがたくさん暮した.


上の写真のアングル

(慶喜宮東丘で六朝距離(通り)と景福宮を見て撮った写真)

 

 

朝鮮時代ソウルの商業中心地ウンゾングが (1904年写真)

上の写真は朝鮮時代最大繁華街であるウンゾングがを撮った写真で 写真の背景は朝鮮時代ではない旧韓国末時代だが 家屋やだけ(大路)は 19世紀朝鮮時代から大きい変化がないので 朝鮮時代ウンゾングがの姿だと言っても構わない. 朝鮮時代整備された道路計画区域を見られる.  

  上の写真のアングル (1904年漢城電気会社(漢城電気会社) 社屋で普信閣の方を向けて撮った写真)         南大門路1 (1894年写真)
朝鮮時代鍾路区ウンゾングがの次で賑やかなソウルの商圏メイン・ストリート 上の写真はアメリカの雑誌ドモリストファミリ(DeMorest¥"s Family Magazine) 1894年号に収録された写真で 当時朝鮮ソウルの姿をよく現わしている. 狭い道端を占拠している草家小屋は家家(仮家)と言う臨時居所として 移動商人たちが物品を売るために臨時的に設置した小屋だ.
 

上の写真のアングル

(北倉洞丘で北鐘路の普信閣方向を向けて撮った写真)

南大門路2 (1882年写真)
朝鮮時代 鍾路区ウンゾングがの次で賑やかなソウルの商圏メイン・ストリート 上の写真よりもうちょっと南側で撮った写真で 多分この写真を撮った位置は南大門樓閣に推定される

上の写真のアングル (南大門樓閣で北東の方を眺めて撮った写真)      

  日製が撤去する前完全なギョングブックグング姿 一部  

 

現在は朝鮮時代の 50‾60% 位だけ復元されていると言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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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의 모습

조선시대 북촌 사진 - 종로구 인사동(鍾路區 仁寺洞) (1901년 사진)

위 사진의 장소는 엄밀하게 말하면 북촌으로 규정되는 재동,가회동,삼청동 일대는 아니지만

북촌은 넓은 의미로 정의하면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사진에 찍힌 구역이 바로 종로 대로(大路)와 종각 북쪽에 해당한다.

[매천야록](梅泉野錄) 권1 상에 의하면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하 권세있는 양반들이 살고있고..."

라고 기록되어 있어 종로대로(鍾路大路) 북쪽 지역을 북촌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수있다.

위 사진의 앵글 (1901년 완공된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 사옥에서  북서쪽(경복궁 방향)을 보고 찍은 사진)

 

종로구 내수동(內需洞) 지역(1894년 사진)

조선시대 경희궁과 육조거리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주로 중인들과 하급 관리들이 많이 살았다.


위 사진의 앵글

(경희궁 동쪽 언덕에서 육조거리와 경복궁을 보고 찍은 사진)

 

 

조선시대 서울의 상업 중심지 운종가 (1904년 사진)

위 사진은 조선시대 최대 번화가인 운종가를 찍은 사진으로 사진의 배경은 조선시대가 아닌 구한말 시대지만 가옥이나 대로(大路)는 19세기 조선시대부터 큰 변화가 없으므로 조선시대 운종가의 모습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조선시대 정비된 도로계획 구역을 볼 수 있다.  

  위 사진의 앵글 (1904년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 사옥에서 보신각 쪽을 향해 찍은 사진)         남대문로1 (1894년 사진)
조선시대 종로구 운종가 다음으로 번화한 서울의 상권 중심가 위 사진은 미국의 잡지 드모리스트 패밀리(DeMorest"s Family Magazine) 1894년 호에 수록된 사진으로 당시 조선 서울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좁은 길가를 점거하고 있는 초가 오두막집은 가가(假家)라고 하는 임시 거처로써 이동 상인들이 물품을 팔기위해 임시적으로 설치한 오두막이다.
 

위 사진의 앵글

(북창동 언덕에서 북쪽 종로의 보신각 방향을 향해 찍은 사진)

남대문로2 (1882년 사진)
조선시대 종로구 운종가 다음으로 번화한 서울의 상권 중심가 위 사진보다 좀더 남쪽에서 찍은 사진으로 아마 이 사진을 찍은 위치는 남대문 누각으로 추정된다

위 사진의 앵글 (남대문 누각에서 북동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일제가 철거 하기전 온전한 경북궁 모습 일부  

 

현재는 조선 시대의 50~60% 정도만 복원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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