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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経済大恐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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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恐慌

ウィキバックと, 私たちの皆の百科事典. 移動: 見回り, 探し src=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a/Disambig_grey.svg/23px-Disambig_grey.svg.png 他の意味に対しては 大恐慌 (同音異義) 文書を参照してください. src=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5/54/Lange-MigrantMother02.jpg/250px-Lange-MigrantMother02.jpg src=http://bits.wikimedia.org/skins-1.19/common/images/magnify-clip.png道路ディアレングの写真作品, 1936年 3月 カリフォルニア ニポモで 7歳になった娘を連れて配給圏を待つ 32歳女性の姿.

大恐慌(大恐慌, the Great Depression)は 1928年から一部国家で起き始めた経済恐慌が 1929年 10月 24日, ニューヨーク 株式市場の大暴落, すなわち 黒い木曜日によって触発されて全世界で拡がった経済 恐慌を意味する.[1]

これによって企業らの 倒産, 大量 失業, デフレーション などが招来された. 個別国家経済家ミルゾブヒ繋がれていたし, 資本の流れも自由だったから恐慌は世界的規模で短い時間内に拡がった一方, 市場を統制することができる規制はその頃まだ発展していることができなくて被害の規模は取り留めることができなく大きくなった. 資本主義は大恐慌によって 1920年代の黄金期の終焉を告げた.

目次

 [隠すこと] 

[編集] 概要

1929年 10月, ニューヨーク 株式市場の 崩壊は世界経済がいくら虚弱なのかを見せてくれた. 全世界の商品価格は 1926年以来ずっと落ちたし, このために オーストラリアや ラテンアメリカのような輸出国々の ヨーロッパ 及び アメリカ住んだ製品に対する購買力が減少した. アメリカでは 賃金 減少と 消費 萎縮で構内市場が打撃を受けた. 国際 金融は 1次世界大戦の負担から全然回復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一方 1次世界大戦は特にヨーロッパ以外地域で急激な生産性増加を持って来たがそれを支える需要の増大はなかった. その折衷案で 固定換率制と 自由兌換制(金兌換制も)が導入した. しかしこの制度は世界貿易を復旧するには安全性が欠けていた. 大恐慌に引き継いだ流動性争奪戦の中で資金は逆にヨーロッパでアメリカに流れて行ったしそうでなくても割れる直前だったヨーロッパ経済は撲殺が出た. 大部分の国家で労動力の 4分の1が失業状態だった. 価格と賃金が暴落して産業生産はドイツの場合 1929年の 53パーセント水準まで落ちたし, 世界貿易は 1929年の 35パーセントで沈んだ. 不況は政治領域にまで影響を及ぼして極端勢力が拡散して自由民主主義の威信が落ちる重大な状況が展開された. 1930年代に全体主義に傾かない国々は第2次世界大戦が勃発した 1939年まで大量実業科不況に苦しんだ. 戦争は人力及び兵站品に対する需要をふやして技術進歩を促進させる效果をもたらして経済の新しい時代の開かれるきっかけになった.

[編集] 恐慌発生以前の経済状況

第1次世界大戦での戦争戦勝国アメリカは 1920年の大田後恐慌を経って早く世界の中心的自由主義国でもたげたし, 戦地だった西ヨーロッパ多くの国に比べて, 帝国主義国家としての生産力と資本力の格差を見せながら, 1922年には上昇局面に入って行った. それを下敷きしたことは, 主にアメリカの展示利得による過剰資本を西ヨーロッパ・中南米で輸出したことと, 国内成長産業である耐久(屠蘇割合 1%)消費財(自動車・家電製品など) 及び建築に対する投資で, チープな購入信用(消費者信用)もここに有用だった.

その一方に, その 1920年代は一貫して 5% 以上の失業率を持った構造的失業(構造的失業)も確かに存在したし, また農業・綿紡織・皮革・石炭・朝鮮など不況産業も維持していて, 成長と正体が併存する形態での好況だった. 他の一方, アメリカは 第1次世界大戦 後では世界第1の農業国になったが, ヨーロッパ農業の回復とともに世界的に生産過剰が表面化したし, 1920年代を通じて世界農業は晩成的不況を現わしていた. また一つの原因は証券市場のおもわく師のためだという主張もあった.

その理由は 1次世界大戦後当時ウォールストリートに住む銀行財閥たちがお金を儲けようという式の投機(ヘッジファンド)によって証券市場の崩壊で企業らの信頼下落と, 企業らの実績悪化によって失業者が生じてそれによって消費心理悪化消費減少等の悪循環で大恐慌が起きたし国々はこれにより銀行財閥たちにお金を借りるしかない状態になってしまった体たらくになったし, やがて起きた ¥"2次世界大戦¥"によって消費が増加するによって大恐慌も終りが出た.

債権国としてのアメリカの過剰した民間ドル資金の対外流出は主に西ヨーロッパ特にドイツで流れこんだし, ドイツの復興資本に寄与したが, その取得されたドル為替手形がドイツの賠償支払いができるようにしたし, それを取得したイギリス・フランスはアメリカに展示債務を返還するという還流循環(還流循環)が成り立つことで 1920年代の好気配が維持された.

もう一つは, 中南米・カナダに投下されたアメリカ民間資本がイギリスに吸い込まれて, アメリカに対するイギリスの貿易赤字支払いにあてるようになる連鎖状況(連鎖状況)になった. かくして 1920年代の競技(景気)上昇と再建金本位制(再建金本位制)が作られた. それらはすべての面で 1929年から始まった大恐慌及び 1930年代の晩成不況(慢性不況)の基礎条件を作った.

[編集] 恐慌の発生

1920年代のアメリカのこの競技(景気)上昇を支えた過剰資本は競技の進行とともに遊休過剰資本の株式投資・土地投機(フロー里に一番盛行したら)になったし, 1920年代末にはその頂点に至ったが, もう過渡信用(過度信用)と過渡投機が累積して, 自動車・建築, その他耐久財に過剰が招来されていた. かくして先にの未曽有の株式相場大暴落をきっかけで深刻な大恐慌が始まった.

1930年 12月 11日 ニューヨークの有力な銀行である ユナイテッドステーツ銀行が破産して 50万人が引き出すことができなくなったし, 1931年 一年の間 2,300個の銀行が門を閉めたし, 1930年‾1933年まで毎週平均 6万 4000人の失業者が零れ落ちて 1933年には 1,600万人に至った.

特に競技(景気)の規定的要因(規定的要因)である建築・鉄鋼・自動車の減退は明らかだったし, 滞貨(滞貨)の激増, 生産の縮小, 企業倒産の続出, 失業者の増大, 彼ら下降要因の累積的相互波及(累積的相互波及)によって経済活動の麻痺を起こした.

建築活動の縮小がずっと冷厳な事態に展開されたわけは, その内容期間(耐用期間)が非常に長くなったからだが, 1930年代全般(前半)までも続いたら, いよいよそれがこの大恐慌が長期化するようになる大きな要因を作るようになった.

[編集] 拡散

金融恐慌はオーストリア最大の銀行である クレデ−タンシュタルト銀行を 1931年 5月に破産に追いこんだし, この余波はドイツ・イギリスでも波及されてから, 1931年 9月にはイギリス, 1933年 3月にはアメリカが金本位制度で離脱するという, 資本主義の根幹を振って置く本位化(本位貨) 崩壊にまで至った. この包括的な大恐慌は 33年夏には底を現わしたように見えながら不況で移したあと巻いた.

[編集] 大恐慌以後の経済

結局大恐慌は 1929年から 1933年まで長期正体を現わしたし, 好況での回復を見せ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り, その後の晩成的不況で見られたようにあの時まで前例もなかった <資本主義の自動回復力喪失(自動回復力喪夫) designtimesp=15283>を現わして, 順調な成長力を見せてくれる社会主義と対比された. アメリカでは異意克服のために国家による有效需要の創出(創出), 完全雇用, 金本位制止まり(停止)に代わりをする 管理通貨制度(管理通貨制度)を主唱した “ケインズ政策”が主唱された.

アメリカはこのケインズ政策を一部取り入れた ニューディールを取ったが, 世界の大勢はイギリスの スターリング特恵制も 成立を機会で, 世界貿易のブロック化(化)[2]とそれに対抗する ファシズム火・国家独占金元の火(国家独占資本主義化)を誕生させたし, よって 第2次世界大戦を準備する傾向を作り出した.

[編集] 世界に及ぼした影響

大恐慌は発生地であるアメリカだけでなくアメリカと経済協力を結ぶとか輸出, 輸入をしていた世界多くの国に大きい影響を及ぼした.

  • ドイツ ワイマール共和国では 第1次世界大戦 後それさえも起こして立てた経済さえ崩れて大きい混乱を経験するようになったし 16 ‾ 30歳年令層の男の中で半分が失業者だったし 1932年まで 600万名の失業者が発生した. そういう状況に ヒトラーが導く ナチだが出帆するようになる.
  • イギリス イングランド 北東部 灰ででは造船所が閉鎖されて働き口を失った 200人の男性たちがデモを起こしたりしたし 1931年 9月パウンド化の金兌換を中止して金本位制度を廃止した.
  • ブラジルでは当時全世界 コーヒーの 3/4を生産及び輸出して富を蓄積した ¥"コーヒー経済¥"が大きい打撃を受けてひんぱんなクーデターと独裁など多い政治的混乱を経験するようになる.
  • ソ連は大恐慌であまり大きい打撃を受けなかったし, 1928年に発表した スターリンの 5ヶ年計画で困難を経った資本主義国々より高い成長を成したが, 1933年には食糧不足事態が起きた.
  • 日本 やはり東京証券取引所が暴落して 629個に達する企業らが幾列にも倒産しながら戦争物資を作るための 物心が不足にしよう, 鉄鉱石が豊かな 満洲を侵攻こんにちはだった.
  • 中部ヨーロッパでは長年の地主役目をした オーストリアの クレデ−タンシュタルト銀行が 1931年 5月破産してドイツとオーストリアの経済がおびただしい破綻に抜けた.
  • オーストラリアでは 1929年 10% 未満だった失業率が 1932年には 30% 以上に急増した. 小説茨の間たちでは労動者たちが働き口を捜し回る 日雇い 労動者に転落する話が出る.
  • 大恐慌は世界金元の歴史に重大な事件だったし自由放任型市場経済の危険性を知らせた. その後世界各国は ケインズ経済学に対する関心が高くなったし国家が 計画経済を通じて経済巨視的環境を適切に造成して市場経済に適切に介入して 巨視的政策を通じて景気加熱と不況の時ごとに適切な政策を取るのが有效で效果的という経済理論が説得力を高めた. 立つ純粋資本主義に対する差別性を持つのに 修正資本主義 または 混合金元のとも言う. 西欧資本主義が大恐慌を経験する時ソ連では計画経済を通じて急速に工業化に成功した影響もあって日程位の計画経済を資本主義に取り入れるのが效果的という理論はもっと魅力的な理論と見えたり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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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대공황

대공황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다른 뜻에 대해서는 대공황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도로디어 랭의 사진작품, 1936년 3월 캘리포니아 니포모에서 7살된 딸을 데리고 배급권을 기다리는 32세 여성의 모습.

대공황(大恐慌, the Great Depression)은 1928년부터 일부 국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경제 공황이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즉 검은 목요일에 의하여 촉발되어 전 세계로 확대된 경제 공황을 의미한다.[1]

이로 인하여 기업들의 도산, 대량 실업, 디플레이션 등이 초래되었다. 개별 국가 경제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고, 자본의 흐름도 자유로웠기 때문에 공황은 세계적 규모로 짧은 시간 내에 확대된 반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규제는 그 당시 아직 발전되어 있지 못하여 피해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본주의는 대공황에 의하여 1920년대의 황금기의 종언을 고하였다.

목차

 [숨기기] 

[편집] 개요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의 붕괴는 세계경제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여 주었다. 전 세계의 상품 가격은 1926년 이래 계속 떨어졌고,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나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수출 국가들의 유럽 및 미국산 제품에 대한 구매력이 감소했다. 미국에서는 임금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구내 시장이 타격을 받았다. 국제 금융은 1차 세계대전의 부담으로부터 전혀 회복되지 못했다. 한편 1차 세계대전은 특히 유럽 이외 지역에서 급격한 생산성 증가를 가져왔으나 그것을 지탱할 수요의 증대는 없었다. 그 절충안으로 고정 환율제와 자유 태환제(금 태환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세계무역을 복구하기에는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대공황에 뒤이은 유동성 쟁탈전 속에서 자금은 거꾸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갔고 그렇지 않아도 깨지기 직전이던 유럽 경제는 박살이 났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력의 4분의1이 실업상태였다. 가격과 임금이 폭락하고 산업 생산은 독일의 경우 1929년의 53퍼센트 수준까지 떨어졌으며, 세계무역은 1929년의 35퍼센트로 침몰했다. 불황은 정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쳐 극단세력이 확산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위신이 떨어지는 중대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1930년대에 전체주의로 기울지 않은 나라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 대량 실업과 불황에 시달렸다. 전쟁은 인력 및 군수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기술진보를 촉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경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편집] 공황 발생 이전의 경제 상황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전쟁 전승국 미국은 1920년의 대전 후 공황을 거쳐 빠르게 세계의 중심적 자유주의국으로 대두했으며, 전쟁터였던 서유럽 여러 나라에 반해,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생산력과 자본력의 격차를 보이면서, 1922년에는 상승 국면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밑받침한 것은, 주로 미국의 전시 이득에 따른 과잉 자본을 서유럽·중남미로 수출한 것과, 국내 성장산업인 내구(도소비율 1%)소비재(자동차·가전제품 등) 및 건축에 대한 투자이고, 저렴한 구입신용(소비자 신용)도 이에 유용했다.

그 반면에, 그 1920년대에는 일관해서 5% 이상의 실업률을 가진 구조적 실업(構造的失業)도 분명히 존재했고, 또한 농업·면방직·피혁·석탄·조선 등 불황산업도 유지하고 있어서, 성장과 정체가 병존하는 형태에서의 호황이었다. 다른 한편,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뒤로는 세계 제1의 농업국이 되었으나, 유럽 농업의 회복과 함께 세계적으로 생산과잉이 표면화하였고, 1920년대를 통하여 세계 농업은 만성적 불황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증권 시장의 투기꾼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 이유는 1차 세계대전 후 당시 월가에 사는 은행재벌들이 돈을 벌자는 식의 투기(헤지 펀드)로 인해 증권시장의 붕괴로 기업들의 신뢰 하락과,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인해 실업자가 생기고 그로 인해 소비심리 악화 소비 감소등의 악순환으로 대공황이 일어났고 나라들은 이로 인해 은행재벌들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어버린 꼴이 되었고, 이윽고 일어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대공황도 끝이 났다.

채권국으로서의 미국의 과잉한 민간 달러 자금의 대외 유출은 주로 서유럽 특히 독일로 흘러 들었고, 독일의 부흥자본에 기여했는데, 그 취득된 달러 환어음이 독일의 배상지불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것을 취득한 영국·프랑스는 미국에게 전시 채무를 반환한다는 환류순환(還流循環)이 이루어짐으로써 1920년대의 호경기가 유지되었다.

또 하나는, 중남미·캐나다에 투하된 미국 민간 자본이 영국에 빨려 들어가, 미국에 대한 영국의 무역 적자 지불에 충당하게 되는 연쇄상황(連鎖狀況)이 되었다. 이리하여 1920년대의 경기 상승과 재건금본위제(再建金本位制)가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모든 면에서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 및 1930년대의 만성불황(慢性不況)의 기초조건을 만들었다.

[편집] 공황의 발생

1920년대의 미국의 이 경기 상승을 지탱한 과잉자본은 경기의 진행과 함께 유휴 과잉자본의 주식투자·토지투기(플로리다가 가장 성행했음)로 되었고, 1920년대 말에는 그 정점에 이르렀는데, 이미 과도신용(過度信用)과 과도투기가 누적되고, 자동차·건축, 기타 내구재에 과잉이 초래되고 있었다. 이리하여 먼저의 미증유의 주식시세 대폭락을 계기로 심각한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1930년 12월 11일 뉴욕의 유력한 은행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은행이 파산해 50만 명이 예금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1931년 한해 동안 2,3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으며, 1930년~1933년까지 매주 평균 6만 4000명의 실업자가 쏟아져 1933년에는 1,600만 명에 이르렀다.

특히 경기의 규정적 요인(規定的要因)인 건축·철강·자동차의 감퇴는 뚜렷했고, 체화(滯貨)의 격증, 생산의 축소, 기업도산의 속출, 실업자의 증대, 그들 하강 요인의 누적적 상호파급(累積的相互波及)으로 인하여 경제활동의 마비를 일으켰다.

건축 활동의 축소가 훨씬 냉엄한 사태로 전개된 까닭은, 그 내용기간(耐用期間)이 매우 길어졌기 때문인데, 1930년대 전반(前半)까지도 계속되더니, 드디어 그것이 이 대공황이 장기화하게 되는 커다란 요인을 만들게 되었다.

[편집] 확산

금융 공황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은행인 크레디탄슈탈트 은행을 1931년 5월에 파산으로 몰아넣었으며, 이 여파는 독일·영국으로도 파급되다가, 1931년 9월에는 영국, 1933년 3월에는 미국이 금본위제도에서 이탈한다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놓는 본위화(本位貨) 붕괴에까지 이르렀다. 이 포괄적인 대공황은 33년 여름에는 바닥을 드러내 보이면서 불황으로 옮겨가고야 말았다.

[편집] 대공황 이후의 경제

결국 대공황은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장기 정체를 나타냈으며, 호황으로의 회복을 보이지 못하다가, 그 뒤의 만성적 불황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때까지 전례도 없었던 <자본주의의 자동회복력 상실(自動回復力喪夫) designtimesp=15283>을 나타내, 순조로운 성장력을 보여주는 사회주의와 대비되었다. 미국에서는 이의 극복을 위하여 국가에 의한 유효 수요의 창출(創出), 완전 고용, 금본위제 정지(停止)에 대신할 관리통화제도(管理通貨制度)를 주창한 “케인즈 정책”이 주창되었다.

미국은 이 케인즈 정책을 일부 도입한 뉴딜 정책을 취했으나, 세계의 대세는 영국의 스털링 특혜제도 성립을 기회로, 세계무역의 블록화(化)[2]와 그것에 대항하는 파시즘화·국가독점자본주의화(國家獨占資本主義化)를 탄생시켰으며,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준비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편집] 세계에 끼친 영향

대공황은 발생지인 미국 뿐만 아니라 미국과 경제 협력을 맺거나 수출, 수입을 하고 있던 세계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그나마 일으켜 세운 경제마저 무너져 큰 혼란을 겪게 되었고 16 ~ 30세 연령층의 남자 중 절반이 실업자였고 1932년까지 6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러한 상황에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출범하게 된다.
  •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재로에서는 조선소가 폐쇄되어 일자리를 잃은 200명의 남성들이 시위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1931년 9월 파운드화의 금태환을 중지해 금본위제도를 폐지했다.
  • 브라질에서는 당시 전 세계 커피의 3/4을 생산 및 수출해 부를 축적한 "커피 경제"가 큰 타격을 입어 잦은 쿠데타와 독재 등 많은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된다.
  • 소련은 대공황으로 그리 큰 타격을 입진 않았고, 1928년에 발표한 스탈린의 5개년 계획으로 곤란을 겪던 자본주의 국가들 보다 높은 성장을 이루었으나, 1933년에는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 일본 역시 도쿄 증권 거래소가 폭락하고 629개에 달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전쟁 물자를 만들기 위한 철이 부족하자, 철광석이 풍부한 만주를 침공하였다.
  • 중부 유럽에서는 오랜 지주 구실을 하던 오스트리아의 크레디탄슈탈트 은행이 1931년 5월 파산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제가 엄청난 파탄에 빠졌다.
  •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929년 10% 미만이던 실업률이 1932년에는 30% 이상으로 급증했다. 소설 가시나무새들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 대공황은 세계자본주의 역사에 중대한 사건이었고 자유방임형 시장경제의 위험성을 알렸다. 그후 세계 각국은 케인즈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국가가 계획경제를 통해 경제 거시적 환경을 적절히 조성하고 시장경제에 적절히 개입하여 거시적 정책을 통해 경기과열과 불황시마다 적절한 정책을 취하는 것이 유효하고 효과적이라는 경제이론이 설득력을 높였다. 이는 순수 자본주의에 대한 차별성을 갖기에 수정자본주의 또는 혼합자본주의라고도 한다. 서구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겪을 때 소련에서는 계획경제를 통해 급속히 공업화에 성공한 영향도 있어서 일정정도의 계획 경제를 자본주의에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이론은 더 매력적인 이론으로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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