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嘘をしない日本人発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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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詫び ‘河野談話’ 導き出したYoshimiYoshiaki教授インタビュー

“北朝鮮政府文書に ‘日本人を拉致しなさい’となっているのがないと北朝鮮の ‘日本人拉北者問題’がないと主張しても良いことか.”

日本軍慰安婦制度の強制性を認めて謝罪した 1993年河野洋平(河野洋平) 官房長官談話を導き出したYoshimiYoshiaki(吉見義明・66・写真) 与えます(中央)台教授は 31日 “日本軍が強制で慰安婦を募集したという証拠は非常に多い. 日本政治家たちが真実に目と耳を閉めて各種証拠を見ないだけ”と言いながらこのように言った.

彼は 1992年 1月日本防衛庁(現防衛省) 防衛研究所図書館で日本軍が慰安婦問題に直接関与した事実が盛られた公文書 6点を見つけて朝日新聞に情報提供した. その後日本政府は真相調査をしたし, 1993年 8月 ‘日本軍が強制で慰安婦を募集するのに関与した’と言う事実を認めた ‘河野談話’を発表した. ニュースイメージ 

最近Nodaヨシヒコ(野田佳彦) 総理, Abe信條(安倍晋三) 前総理, Hashimoto盗塁(橋下徹) 大阪(大阪) 市場など日本政治家たちが相次いで日本軍の慰安婦強制連行事実を否定することを彼はどんな考えで見守っただろうか. Hashimoto市場ははなはだしくは “慰安婦が日本軍に暴行, 脅迫にあって引かれて行ったという証拠を韓国が出したら良いだろう”とまで言った.

▼ “日 反証なければ慰安婦証言法的效力” ▼

1993年 ‘河野談話’を導き出したYoshimiYoshiaki日本与えて来るよ教授は 31日大学執務室で本報記者と会って最近日本がすぎ去った事を否定することに対して “自己反省が不十分で, 自信感が不足だ”と指摘した. 東京=パク・ヒョンズン特派員 lovesong@donga.com

Yoshimi教授を与えて来るよ研究室で会って慰安婦問題に対しての話を交わした.

―最近日本政治家たちが先を争って河野談話を否定する発言をするのに….

“彼らは ‘慰安婦強制動員’と書かれた政府公文書がないということを根拠でそれほど主張する. しかし誰が公文書に ‘慰安婦を強制で募集しなさい’と書くか.”

―公文書になった証拠は確かにないか.

“日本軍が慰安所を設置して慰安婦を強制で募集するのに関与した事実は明白で証拠も非常に多い. 1940年 10月に作成されたアメリカ公文書ではだまされてミャンマー(当時ミャンマー)に全韓国慰安婦 20人の話が書かれている. 1948年 11月東京(東京) 裁判所判決には日本軍が中国で強制で慰安婦を募集した内容が書かれている. 日本政治家たちはこんな事実を全然言及していない.”

―一部政治家は日本軍ではなく民間業者が慰安婦を募集したと主張する.

“日本軍が直接出て慰安婦を募集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はずだ. しかし慰安所は軍隊が直接用意した. 民間業者たちが慰安婦を連れて来れば軍隊は誘拐(の中よ連れて来たという意味) あるいは人身売買(お金をくれて慰安婦で買って来たという意味)ではないのかいちいち確認した. 誘拐や人身売買が明白でも軍隊は民間業者を全然処罰しなかった. こんな記録たちを見る時日本軍が慰安婦募集に関与したと言うしかない.”

―それなのにどうして政治家たちが日本軍の慰安婦強制募集を否定するか.

“慰安婦問題を黙過するように狭く解釈するからだ. 彼らは ‘軍隊が慰安婦を強制で募集した’と言う公文書があるのか, オブヌニャだけ話す. 退役日本軍の回顧録, 韓国慰安婦お婆さんたちの証言は受け入れない. 証言も相手の反証がなければ法的証拠で認められることができる.”

―日本政治家たちは自分の主張に問題点があるというの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意味か.

“冗談にすることがある. 日本は北朝鮮にハイジャック日本人問題解決を毎度要請する. しかし北朝鮮公文書に ‘日本人を拉致しなさい’となっているのがないだろう. それなら北朝鮮は ‘拉北者問題はない’と主張しても良いことではないか.”

―政治家だけではなく極右団体たちも河野談話を否定する. 根本的な理由は何か.

“日本がすぎ去った事に謝り始めたことはわずか 20〜30年前だ. その前にはすぎ去った事を問題視しなかった. 自己反省が不十分だった. また一つは日本人たちの自信感不足だ. 現在経済が良くなくて韓国と中国が浮び上がっている. 自信感を徐徐に失いながら自分が違ったことを認めないで外部の攻撃に反撥していると思う.”

―河野談話の成果をどんなに評価するか.

“日本政府が慰安婦の問題点を認めたことは大きい意味がある. しかし慰安婦問題をまともに解決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河野談話を基礎で日本政府が確かに責任を負って賠償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1996年アジア女性基金を作って国民募金を通じて慰安婦お婆さんたちに 1人当り 200万円(約 2800万ウォン)ずつ支援したりした. しかしかなり多い数お婆さんたちが拒否した. 国民ではなく政府が補償金を集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未来指向的な韓日関係を作るために政治家たちがどうすれば良いか.

“日本政治家たちがもうちょっと勉強したら良いだろう. 視野をとても狭くしなくて事実をありのまま見たら良いだろう. あった事をないと言えば未来指向的な関係がなれない. いくら (すぎ去った事を) 認めるのが苦しくても将来の信頼関係を積むために認めることは認めなければならない.”

―韓国政府は慰安婦問題と係わってUN決議案推進カードを触っている.

“韓国の人々が慰安婦問題に確かに行動する姿を見せ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が日本の将来のためにももっとましだ. 被害を受けた韓国お婆さんのためのそ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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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지않는 일본인 발견

사죄 ‘고노담화’ 이끌어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 인터뷰

“북한 정부 문서에 ‘일본인을 납치하라’고 돼 있는 게 없다고 북한의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도 되는 건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이끌어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66·사진) 주오(中央)대 교수는 31일 “일본군이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했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일본 정치인들이 진실에 눈과 귀를 닫고 각종 증거를 보지 않을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2년 1월 일본 방위청(현 방위성)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문제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담긴 공문서 6점을 발견해 아사히신문에 제보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진상조사를 벌였고, 1993년 8월 ‘일본군이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하는 데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뉴스이미지 

최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 등 일본 정치인들이 잇달아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그는 어떤 생각으로 지켜봤을까. 하시모토 시장은 심지어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 협박을 당해 끌려갔다는 증거를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라고까지 말했다.

▼ “日 반증 없으면 위안부 증언 법적효력” ▼

1993년 ‘고노 담화’를 이끌어 낸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는 31일 대학 집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최근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 “자기반성이 불충분하고,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요시미 교수를 주오대 연구실에서 만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최근 일본 정치인들이 앞다퉈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데….

“그들은 ‘위안부 강제 동원’이라고 적힌 정부 공문서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누가 공문서에 ‘위안부를 강제로 모집하라’고 적겠는가.”

―공문서로 된 증거는 확실히 없나.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안부를 강제로 모집하는 데 관여한 사실은 명백하고 증거도 매우 많다. 1940년 10월에 작성된 미국 공문서는 속아서 미얀마(당시 버마)에 온 한국 위안부 20명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1948년 11월 도쿄(東京) 재판소 판결에는 일본군이 중국에서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일본군이 아니라 민간업자가 위안부를 모집했다고 주장한다.

“일본군이 직접 나서 위안부를 모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안소는 군대가 직접 마련했다. 민간업자들이 위안부를 데려오면 군대는 유괴(속여 데려왔다는 의미) 혹은 인신매매(돈을 주고 위안부로 사왔다는 의미)가 아닌지 일일이 확인했다. 유괴나 인신매매가 명백해도 군대는 민간업자를 전혀 처벌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들을 볼 때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에 관여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정치인들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모집을 부정하나.

“위안부 문제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대가 위안부를 강제로 모집했다’는 공문서가 있느냐, 없느냐만 이야기한다. 퇴역 일본군의 회고록,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증언도 상대방의 반증이 없으면 법적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자신의 주장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은 북한에 피랍 일본인 문제 해결을 매번 요청한다. 하지만 북한 공문서에 ‘일본인을 납치해라’고 돼 있는 게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납북자 문제는 없다’고 주장해도 되는 것 아닌가.”

―정치인뿐 아니라 극우단체들도 고노 담화를 부정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이 과거사에 사과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30년 전이다. 그 전에는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았다. 자기반성이 불충분했다. 또 한 가지는 일본인들의 자신감 부족이다. 현재 경제가 좋지 않고 한국과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자신감을 점차 잃으면서 자신이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고 외부의 공격에 반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노 담화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고노 담화를 기초로 일본 정부가 확실히 책임을 지고 배상했어야 했다. 1996년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고 국민 모금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1인당 200만 엔(약 2800만 원)씩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할머니들이 거부했다. 국민이 아니라 정부가 보상금을 모았어야 했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기 위해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 정치인들이 좀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 시야를 너무 좁게 하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봤으면 좋겠다. 있었던 일을 없다고 하면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과거사를)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장래의 신뢰 관계를 쌓기 위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유엔 결의안 추진 카드를 만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확실히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게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더 낫다. 피해를 본 한국 할머니를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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