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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に日本人たちがたびたび両班白丁話す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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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場合 高麗時代まで 日本のブラクミンや引導のカスト制度みたいな 階級差別が存在したしやっぱりこれらを隔離するための村が存在した. グックサチェックに出る香, 牛, 釜谷みたいな地域人が正しくこんな村を意味する名称.[2] こちらに住む人々は ¥"身分上良人¥"だが賎民で待遇された. 高麗時代時キタイや搖り返し族との戦争で取った虜たちをこんなに住むようにしたと言ったりする.   朝鮮時代に入って来てもより合理的な性理学が入って来るうえ中間に壬辰の乱が発生するせいで身分がでたらめに入りまじて[3] こんなに集団的にすべての住民を賎民で見做す慣行は消えた.
それでも両班主の秩序を身分制は朝鮮時代末期まで持続したし主に白丁たちが日製時代までも多く差別されたが, 1898年 10月 29日, 独立協会が開催した官民共動会で白丁出身であるバックソングツンは私は大韓の一番卑しい人で無知沒覚します. しかし忠軍愛国の意味はだいたい分かっています.と演説したし, 1920年代は白丁たちが作った衡平社(衡平社)を中心に白丁たちの人権を尊重して平等に待偶してくれることを要求する衡平運動(衡平運動)を展開したりした.
しかしとても無茶なきっかけでこんな階級社会はプリチェ抜かれてしまったが, そのきっかけは外でない朝鮮戦争. 朝鮮末期以後大きい社会的フレームの変化がなかった韓半島に初めて起ったボムグックがゾック規模の現代式戦争で誰もがすっかり亡びて混乱の中にたれては拉北, たれては越南, たれては他の地域で避難を行くなど整理がまともにできない混乱する人口移動によって全国民の居住地が完全に入りまじてしまったうえで, ゾンゼングトングに大規模人名思想が起って前後にも家門で何で暮らすのに汲汲していた時代が続いたせいに多い数の人々が自分の家門がまともに分からなくなったし, 戦争の商魂が洗われた以後でも 1共和国の土地改革政策と 1960年代以後急速度の経済を経験しながら土地所有に土台を置いた身分格差が消えて階層の間移動が非常に活発だったから, 今日には 微賎な家だと差別する人も差別受ける人もほとんどいないし伝統ある両班家門とするかでも 21世紀に入ってはそんなのない. 名誉を裏付けてくれることが家門で社会的地位[4]で取り替えられたからだ.   すぐ ¥"両班¥"という称号が墜落して ¥"が両班¥", ¥"私両班¥" 意思両班 する式でちょうど呼ぶ言葉と転落したということがこれを傍証する. 両班という称号は貴族で語中がトズングイを指称する呼称になってしまったし常民という称号はそのまま身分が上にある人が下にいる人を呼ぶ正式呼称だったが, 法的に人間の身分が消えた社会の特性の上おびただしく大きい悪口に変貌した.
一例で 2000年初盤に戸主制撤廃を置いて楡林で反対しながら戸主制がなければ韓国人口かなり多い数が常民という主張をしたがそれこそつけられた. どんなに頭に来れば当時一討論放送に出た楡林年寄りがこんなものを言って一喝したが, むしろ (彼らの主張によれば ¥"全部常民になる立場(入場)¥"である) 観客たちは誰もがあざ笑うことを投げたし, 他の年を取った年寄りたちも ¥"サングノム云云距離(通り)なら前職大統領や企業人たちもすべて常民で見下すつもりか¥"と そうしては人生末年に 国政院に引かれて行くの 悪口をするとその年寄りは泣き叫んだらそのまま出てしまった時も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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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본인들이 종종 양반 백정 운운하지만

한국의 경우 고려시대까지 일본의 부라쿠민이나 인도의 카스트 제도같은 계급 차별이 존재하였고 역시 이들을 격리하기 위한 마을이 존재했다. 국사책에 나오는 향, 소, 부곡 같은 지역명이 바로 이런 마을을 의미하는 명칭.[2]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분상 양인"이지만 천민으로 대우받았다. 고려시대때 거란이나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잡은 포로들을 이렇게 살게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보다 합리적인 성리학이 들어오는 데다가 중간에 임진왜란이 발생하는 바람에 신분이 마구 뒤섞여서[3] 이렇게 집단적으로 모든 주민을 천민으로 간주하는 관행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양반 위주의 질서를 신분제는 조선시대 말기까지 지속되었으며 주로 백정들이 일제시절까지도 숱하게 차별당했는데, 1898년 10월 29일, 독립협회가 개최한 관민공동회에서 백정출신인 박성춘은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 그러나 충군애국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라고 연설했고, 1920년대에는 백정들이 만든 형평사(衡平社)를 중심으로 백정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는 형평운동(衡平運動)을 전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굉장히 엉뚱한 계기로 이런 계급사회는 뿌리채 뽑혀버렸는데, 그 계기는 다름아닌 한국전쟁. 조선 말기 이후 큰 사회적 틀의 변화가 없던 한반도에 처음으로 벌어진 범국가적 규모의 현대식 전쟁으로 너나 할것없이 쫄딱 망하고 혼란속에 누구는 납북, 누구는 월남, 누구는 타 지역으로 피난을 가는 등 정리가 제대로 안되는 혼란한 인구 이동으로 인해 전국민의 거주지가 완전히 뒤섞여 버린데다가, 전쟁통에 대규모 인명 사상이 벌어지고 전후에도 가문이고 뭐고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계속되었던 탓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문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었고, 전쟁의 상흔이 씻겨나간 이후로도 1공화국의 토지개혁 정책과 1960년대 이후 급속도의 경제발전을 겪으면서 토지소유에 바탕을 둔 신분격차가 사라지고 계층 간 이동이 매우 활발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미천한 집안이라고 차별하는 사람도 차별받는 사람도 거의 없으며 전통있는 양반 가문이라 할 지라도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그런 거 없다. 명예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가문에서 사회적 지위[4]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양반"이라는 칭호가 추락하여 "이 양반", "저 양반" 의사양반 하는 식으로 막 부르는 말로 전락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양반이라는 칭호는 귀족에서 어중이 떠중이를 지칭하는 호칭이 되어버렸으며 상놈이라는 칭호는 그냥 신분이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정식 호칭이였는데, 법적으로 사람간의 신분이 사라진 사회의 특성상 엄청나게 큰 욕으로 변모했다.
일례로 2000년 초반에 호주제 철폐를 두고 유림에서 반대하면서 호주제가 없으면 한국 인구 상당수가 상놈이라는 주장을 했으나 그야말로 묻혀졌다. 오죽 열받으면 당시 한 토론방송에 나온 유림 노인이 이런 말을 하며 일갈했으나, 오히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전부 다 상놈이 될 입장"인) 관객들은 너나할것 없이 비웃음을 던졌고, 다른 나이 든 노인들도 "쌍놈 운운거리면 전직 대통령이나 기업인들도 다 상놈으로 멸시할 거냐"면서 그랬다가는 인생 말년에 국정원에 끌려가겠지 욕을 하자 그 노인은 울부짖더니 그냥 나가버렸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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