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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政院改革先に立つカトリック

師弟から一般信者まで同じ言葉は 70‾80年代以後初め

15個校具全体時局宣言… 教皇庁公認司教会議が主軸

一部きれいではない視線に真理・正義・自由・愛実現が教会役目

韓国カトリックが国政院大統領選挙介入を糾弾するのに先に立っている. 全国の 15個校具全体が時局宣言を言ったのに相次いで 23日には正義具現全国司祭壇がソウル広場で ¥"国政院改革と政府の悔改を促す時局ミサ¥"を開催する予定だ. 韓国カトリックを代表する公式器具である韓国カトリック司教会議も適切な時期に ¥"国政院事態で毀損されたデモクラシーの価値は必ず回復しなければならない¥"は公式立場(入場)を出すことと知られた. 韓国カトリック首長である韓国天主教主教会の議長雨降りである司教(済州校具場)は最近一カトリック言論とのインタビューでカトリック師弟たちと山伏, 一般信者たちの時局宣言は民主化をさからって行く政府の根本的過ちを指摘する事で, 聖霊がなさる仕事だと積極支持意思を明らかにした.

師弟から一般信者までカトリックがこのように大大的に時局に対して一声を賭は 1970‾80年代民主化運動参加以後ほとんど初めてだ. 特に今度動きはその間進歩的性向で論難の対象になって来た正義具現全国司祭壇が主軸になったのではなくローマ教皇庁の公式承認を受けた団体である ¥"司教回の正義平和委員会¥"次元で成り立って意味が特別だという評価だ.

去る 7月 25日釜山校具から 9月 4日議政府校具まで 15個校具全体が参加一時国宣言は国政院大統領選挙介入真相糾明と責任者処罰, パク・グンヒェ大統領の謝りと再発防止, 国政院改革を要求した. 保守的性向である大邱・慶北校具も 1911年スタート以来 102年ぶりに初めて同参した. カトリック司教回の関係者は 17日 1987年 6月の抗争の時も黙った大邱大校具を含んですべての校具の師弟たちが時局宣言に参加したという事実はそれほど事態が病勢が悪いと思ったからだと言った.

今度時局宣言に参加したカトリック師弟は 2,124人で全体師弟 4,835人の 43%にのぼる. 5,000余山伏と一般信者 1万名余も時局宣言に同参した. 特に光州大橋で師弟と信者など 1,200余人は去る 12日 5・18記念聖堂で時局ミサをした後ロザリオ期も行進をした. 1987年 6・29 民主抗争以後 26年ぶりだ.

韓国天主教会はどうして社会参加に積極出るのだろう. カトリックの社会参加は教理上では 1962‾65年に開かれた第2次バチカン公議回に根を置いている. 当時制定された司牧憲章は人間の尊厳性を増進して人類の共同線を実現するのが教会の使命だと宣言した. 禅宗した教皇ヨハネバオで 2歳は 1979年 1月 ¥"ラテンアメリカ司教回の¥" 開幕演説で目の前にある貧乏, 苦痛, 悲しみ, 隣りたちの難しさとへだたって暮すことができないしそこに確かにメッセージを投げなければならないと強調した. 1992年ローマ法皇庁は ¥"教会は真理・正義・自由・愛の四種類価値を社会のすべての分野で実現しなければならない¥"は新しい教理書を定めた. すなわち, 教会と社会は分離することができないし, 教会は世の中人々のために教会が存在すると確認したのだ. 最近選出されたプランチスコ教皇も教会垣根外を向けた社会的関心がもっと必要だと強調した.

それでも韓国天主教会の社会参加が精巧分離原則に行き違うと不気味に見る目もある. これに対してカトリックソウル大橋で正義平和委員長である搏動号花嫁は真理と正義, 自由, 愛の実現のために社会問題に積極介入するのが教会の役目だと強調した. 一般信者 1万である時局宣言を導いた盛炎の前教皇庁韓国せりふも一般信者たちがともすれば個人的な信仰生活にとどまりやすいのにギリシア道人の社会的愛実践にも積極出るのが塗った信仰人の姿勢だと言った.

が同じ教理に歩調をあわせて韓国天主教会は 1970年代以後故金寿換樞機卿を中心に民主化運動に積極出た. 金樞機卿が 1971年ラジオで全国に生中継されたクリスマス夜の十二時ミサから長期独裁で走り上げる朴正煕政権の危険性を警告したことを始まりに, 1974年には維新に反対したジハックスン司教が逮捕すると救国祈祷会を開いた. これをきっかけで若い師弟たちが中心になって正義具現司祭壇が結成されたし, ミンチォングハックリョンサでも(1974年), 富川で性拷問事件(1986年), 朴鐘哲だね顧問致死事件(1987年) 糾明など民主化と人権向上に先に立った. 最近には 4だいたい事業課済州カンジョン海軍基地建設, 双竜車解雇労動者など社会問題に深く参加している.

が同じ背景には韓国カトリックの殉教歴史も作用している. ¥"4台迫害¥"を知られた辛酉(1801)・己亥(1839)・丙午(1846)・病因(1866) 迫害など多様な弾圧を通しながら発生した 1万 3,000余殉教者たちの血が良心による社会参加の種子を身胎したというのだ. 韓国天主教主教会の正義平和委員会総務であるザングドングフン花嫁は殉教者たちの流した血が現在天主教会が正義と平和を求める事に積極的に導いた側面があると言った.

一方, このようなカトリックの積極的な社会参加が肯定的な呼応を受けながら信者数も急激に増えている. 1962年 53万名余に過ぎなかった信者数は 2008年 500万人を超えたし, 昨年末には全国民の 10%が越える 536万名余で増加した. 他の宗教は教勢が足踏みや減るのに比べて異例的な現象だ. 朴文秀韓国カトリック文化研究院副院長は人権と民主化を実践して来た韓国カトリック歴史がその秘訣だと言った.

グォンデイックギザ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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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기도 하다.

"국정원 개혁" 앞장서는 천주교

사제부터 평신도까지 한목소리는 70~80년대 이후 처음

15개 교구 전체 시국선언… 교황청 공인 주교회의가 주축

일부 곱지않은 시선에 "진리·정의·자유·사랑 실현이 교회 역할"

한국 천주교가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전국의 15개 교구 전체가 시국선언을 한 데 이어 23일에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개혁과 정부의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공식 기구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도 적절한 시기에 "국정원 사태로 훼손된 민주주의의 가치는 반드시 회복돼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천주교 수장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최근 한 가톨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주교 사제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의 시국선언은 민주화를 역행하는 정부의 근본적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적극 지지 의사를 밝혔다.

사제부터 평신도까지 천주교가 이처럼 대대적으로 시국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기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참여 이후 거의 처음이다. 특히 이번 움직임은 그동안 진보적 성향으로 논란의 대상이 돼 왔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축이 된 것이 아니라 로마 교황청의 공식 승인을 받은 단체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차원에서 이루어져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지난 7월 25일 부산교구부터 9월 4일 의정부교구까지 15개 교구 전체가 참여한시국선언은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국정원 개혁을 요구했다. 보수적 성향인 대구ㆍ경북 교구도 1911년 출범 이래 102년 만에 처음으로 동참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는 17일 "1987년 6월항쟁 때도 침묵했던 대구대교구를 포함해 모든 교구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사태가 위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국선언에 참여한 천주교 사제는 2,124명으로 전체 사제 4,835명의 43%에 이른다. 5,000여 수도자와 평신도 1만여 명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특히 광주대교구 사제와 신자 등 1,200여 명은 지난 12일 5ㆍ18기념성당에서 시국미사를 한 뒤 묵주기도 행진을 했다. 1987년 6ㆍ29 민주항쟁 이후 26년 만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왜 사회 참여에 적극 나서는 것일까. 천주교의 사회 참여는 교리상으로는 1962~65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제정된 사목헌장은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하고 인류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선언했다.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1월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개막 연설에서 "눈 앞에 있는 가난, 고통, 슬픔, 이웃들의 어려움과 동떨어져 살 수 없고 거기에 분명히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2년 로마교황청은 "교회는 진리ㆍ정의ㆍ자유ㆍ사랑의 네 가지 가치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새 교리서를 확정했다. 즉, 교회와 사회는 분리할 수 없고,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고 확인한 것이다. 최근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회 울타리 바깥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 참여가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며 곱지 않게보는 눈도 있다. 이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인 박동호 신부는 "진리와 정의, 자유, 사랑의 실현을 위해서 사회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을 이끈 성염 전 교황청 한국대사도 "평신도들이 자칫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 머물기 쉬운데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사랑 실천에도 적극 나서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교리에 발맞춰 한국 천주교회는 1970년대 이후 고 김수환 추기경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다. 김 추기경이 1971년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에서 장기 독재로 치닫는 박정희 정권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을 시작으로, 1974년엔 유신에 반대하던 지학순 주교가 체포되자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젊은 사제들이 중심이 돼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됐고, 민청학련사건(1974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1986년),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1987년) 규명 등 민주화와 인권 향상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 사회 문제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한국 천주교의 순교 역사도 작용하고 있다. "4대 박해"를 알려진 신유(1801)ㆍ기해(1839)ㆍ병오(1846)ㆍ병인(1866) 박해 등 크고 작은 탄압을 거치면서 발생한 1만 3,000여 순교자들의 피가 양심에 따른 사회 참여의 씨앗을 배태했다는 것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인 장동훈 신부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현재 천주교회가 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이끈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천주교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긍정적인 호응을 받으면서 신자 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1962년 53만여 명에 불과하던 신자 수는 2008년 500만 명을 넘었고, 지난해 말에는 전 국민의 10%가 넘는 536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다른 종교는 교세가 제자리걸음이거나 줄어드는 데 반해 이례적인 현상이다.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은 "인권과 민주화를 실천해온 한국 가톨릭 역사가 그 비결"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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