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ナチ戦犯葬式無産…つける所ない死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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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大戦当時ローマで数百人を虐殺してからも謝りを拒否する 15年の自宅軟禁あげく 100歳で死んだナチ戦犯の葬式が市民の抗議に無産されたのに相次いで死骸もつける所を尋ねることができなくて 16日(現地時間) 夕方ローマ隣近郡飛行場に放置された. 

その上にドイツもともすれば極右勢力の聖地化を憂慮してナチ武将親衛隊出身で ¥"アルデアティの洞窟の白丁¥"と呼ばれたエリヒプリプケの葬地問題に対してドイツ政府の責任ではないという立場を打ち明けて故国に易しく帰りにくい世話になった. プリプケが 50年の間暮したアルゼンチンとドイツの故郷でも彼の死骸を受け入れるのを拒否した状況だ. 

これに先たち最初ナチ戦犯プリプケのための葬式は 15日ローマ隣近バイト老視(市)にある極右勢力の神学校で行われる予定だったが数百人の抗議デモ隊が追われながら無産された.

アルバノ−のニコルだと匹だから市場はバイト櫓歌 2次世界大戦当時レジスタンスの本拠という理由を聞いてローマ市内で出発した葬列のアルバノ−進入を禁止したがローマ州がこれを無效処理する紆余曲折を経験したりした.

しかし葬列が神学校隣近に到着しながら両側の衝突が本格化された. 何人の人は運柩行列を向けて暗殺者!, 死体をごみ溜めに捨てなさいなどの悪口をしたし, ¥"プリプするように教授執行である¥"という文が書かれたプラカードも見えた.

これに対立して 30人余りの右翼勢力はナチ式敬礼をするかと言えばファシスト歌を歌ったし彼は英雄だったと叫ぶなど刺刺しい雰囲気が演出された. 葬式賛否勢力が衝突する中に警察は 500人余りの反対勢力を沮止して結局には催涙弾まで発射した.

プリプするように側はこの日午後葬式を一応延期されてから与件が好転しないでてんから取り消すと明らかにした.

黒い色バン車に積まれたプリプするように有害は引き続きローマ隣近郡飛行場近くに移されてドイツで行く方案を模索したがこれさえ不如意で呉行き場のない世話になった. 

ドイツ連邦政府外交部マルチンシェポ代弁人はドイツ政府がこの問題を責任負う理由がなくてイタリア政府も公式要請をして来なかったと独逸人がドイツにつけることができるが家族の決定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った. 

イタリアも 16日がナチがローマユダヤ人地域を攻撃してから 70周年なので葬式の推移に格別の関心を見せている. 

ユダヤ人コミュニティではプリプケの死体を化粧して地中海に振り撤くのが適切な解決方法という主張も申し立てられた. 

プリプするように 1944年 3月ローマ外郭のアルデアティの洞窟で大規模虐殺を主導した疑いで 1998年イタリア法廷で終身刑を宣告受けた. ナチ親衛隊に対するゲリラの攻撃を ¥"10倍でドエガブゲッダ¥"と計画されたこの虐殺でレジスタンス隊員, ユダヤ人, 子供など 335人が命を失った. 

プリプするように判決以後高令と健康問題のため収監されなかったし自分の弁護士のローマ自宅に年金される形態で兄さん(型)を住んだ. 彼はいつまでも犯行を謝らないまま上部の命令に従っただけで当時世界多くの所で民間人が死んだという言い訳だけ繰り返した.

プリプするように第2次世界大戦が終わった後アルゼンチン南部の観光名所であるバリルロチェで逃げて 40年以上ホテルマネージャーで暮す 1995年にはイタリアに送還されて裁判を受けた. 

アルゼンチン生活当時プリプするようにぬけぬけ実名を使いながら地域有志に行世したしドイツパスポートを持ってドイツ, アメリカ, イタリアを旅行したりした. バリルロチェは多くのナチ戦犯が平穏な生を享受する逃避先で悪名が高かった.


日本とは違いますよね.
人間が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道徳的価値観を 
東洋人より西洋人がもっとザルジキ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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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 장례식 무산…묻힐 곳 없는 주검

세계대전 당시 로마에서 수백 명을 학살하고도 사과를 거부하다 15년의 가택연금 끝에 100세로 숨진 나치 전범의 장례식이 시민의 항의로 무산된 데 이어 주검도 묻힐 곳을 찾지 못해 16일(현지시간) 저녁 로마 인근 군 비행장에 방치됐다. 

더구나 독일도 자칫 극우세력의 성지화를 우려해 나치 무장친위대 출신으로 "아르데아티네 동굴의 백정"으로 불렸던 에리히 프리프케의 장지 문제에 대해 독일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해 고국으로 쉽게 돌아가기 어려운 신세가 됐다. 프리프케가 50년 동안 살았던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고향에서도 그의 주검을 받아들이길 거부한 상황이다. 

이에 앞서 애초 나치 전범 프리프케를 위한 장례식은 15일 로마 인근 알바노시(市)에 있는 극우 세력의 신학교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수 백명의 항의 시위대가 몰리면서 무산됐다.

알바노의 니콜라 마리니 시장은 알바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본거지라는 이유를 들어 로마 시내에서 출발한 장례행렬의 알바노 진입을 금지했으나 로마 주가 이를 무효처리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장례행렬이 신학교 인근에 도착하면서 양측의 충돌이 본격화됐다. 몇몇 사람은 운구행렬을 향해 "암살자!", "시신을 쓰레기장에 버려라" 등의 욕을 했고, "프리프케 교수집행인"이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도 보였다.

이에 맞서 30여명의 우익 세력은 나치식 경례를 하는가 하면 파시스트 노래를 불렀고 "그는 영웅이었다"고 외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장례식 찬반 세력이 충돌하는 가운데 경찰은 500여명의 반대세력을 저지하다 결국에는 최루탄까지 발사했다.

프리프케 측은 이날 오후 장례식을 일단 연기됐다가 여건이 호전되지 않자 아예 취소한다고 밝혔다.

검은색 밴 차량에 실린 프리프케 유해는 이어 로마 인근 군 비행장 근처로 옮겨져 독일로 가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아 오갈곳이 없는 신세가 됐다. 

독일 연방정부 외교부 마르틴 섀퍼 대변인은 "독일 정부가 이 문제를 책임질 이유가 없고 이탈리아 정부도 공식요청을 해오지 않았다"며 "독일인이 독일에 묻힐 수 있지만 가족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역시 16일이 나치가 로마 유대인 지역을 공격한 지 70주년이어서 장례식의 추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는 프리프케의 시신을 화장해 지중해에 뿌리는 것이 적절한 해결방법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프리프케는 1944년 3월 로마 외곽의 아르데아티네 동굴에서 대규모 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1998년 이탈리아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나치 친위대에 대한 게릴라들의 공격을 "10배로 되갚겠다"면서 계획된 이 학살에서 레지스탕스 대원, 유대인, 어린이 등 335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리프케는 판결 이후 고령과 건강문제 때문에 수감되지 않았고 자기 변호사의 로마 자택에 연금되는 형태로 형을 살았다. 그는 생전 범행을 사과하지 않은 채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당시 세계 여러 곳에서 민간인이 숨졌다"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프리프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 남부의 관광명소인 바릴로체로 도망쳐 40년 이상 호텔지배인으로 살다 1995년에야 이탈리아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생활 당시 프리프케는 태연히 실명을 쓰면서 지역 유지로 행세했고 독일 여권을 갖고 독일, 미국,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도 했다. 바릴로체는 많은 나치 전범이 평온한 삶을 누리는 도피처로 악명이 높았다.


일본과는 다르군요.
인간이 지켜야할 도덕적 가치관을 
동양인보다 서양인이 더 잘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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