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人と日本人,初めには ¥"白人¥"と呼ば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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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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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アジアである, 初めには ¥"白人¥"と呼ばれたことで現われて
交流超には東洋の文化,力圧倒的だから東アジア人たちを白人たちだと殖やした
しかし西欧の力大きくなろう ¥"白色¥" 概念変えて
18世紀以後から東アジア人を ¥"黄色肌¥"で分類
黄人種の誕生: マイケルキボック作
東アジア人はどうに ‘黄人種’になったか
ひとときは ‘白人’だった東アジア人たちがどうに, なぜ ‘黄色人’で分類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か
その淵源と来歴をしつこく暴く.
マイケルキボック教授
東アジア人たちの顔に ‘黄色’ かさぶたを付けた始めて ‘容疑者’では
あの有名な刀フォンリンネ(1707‾78)が指目される.
彼は東アジア人の色を暗いという意味のラテン語 ‘プスクス’(fuscus)で表現してから 1758‾9年刊行された <自然の体系> 第10枚では
‘ルリドス’(luridus・ヨンファングセック, 青白い)に具体化した.
リンネが塗っておいた色を越して ‘モンゴル性’(mongolianness)という全然違った次元の烙印を取ったこれはヨハネフリードリヒブルルメンバフ(1752‾1840)だ.
何の事が起ったのだろう. 西欧と東アジアが初めて会った時には西欧の経済力や軍事力, 文化力が東洋を圧倒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むしろ西欧人たちは東アジアの合理的で效率的な官僚制を羨んだ.
商人・宣教師・探険家など西欧の訪問者たちが見るのに東アジアは物産が豊かで文化と慣習が粹な故障だった.
彼らは交流を望んだし東アジアがキリスト教で改宗するのを期待した.
西欧が東アジアを先に進み始めながら考えがそろそろ変わった.
17世紀から西欧人たちは白色を自分たち肌に局限させ始めた.
時間がちょっとかかった.
18‾19世紀から西欧人たちは東アジア人たちに ‘黄色’という色を付与した.
スウェーデン博物学者・植物学者刀フォンリンネ(1707‾78), ビクトリア時代科学者, 人類学者たちが ‘決定’した色が黄色だった.
ヨーロッパに人種主義が根付きながら東アジア人の色は ‘黄色’で固められた.
著者の言葉のように “白色は 20世紀初からただ西欧人にだけ許容された概念”になった
.驚くべきことに ‘黄色’という肌アイデンティティは東アジア人たちが自ら選択したのではなかった.黄人種だと殖やし始めよう
日本の田口ウキチ(田口卯吉・1855‾1905) みたいな学者は
日本人たちは ‘不十分に黄色い’と主張して西洋に反撥した
大韓帝国のシン・チェホは著書 『朝鮮上古史』で歴史を
‘あ(我)と非我(非我)の闘い’で定義した.
‘あ(我)’は民族になることもできて ‘階級’や ‘人種’になることもできる.
大韓帝国の親日勢力は白人種に対抗して
日本を中心に黄人種どうし団結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民族を裏切った.
原文を見る
한국인과 일본인,처음엔 "백인"으로 불리었다
동아시아인, 처음엔 "백인"으로 불린 것으로 드러나
교류 초엔 동양의 문화,힘 압도적이라 동아시아인들을 백인들이라고 불리었다
하지만 서구의 힘 커지자 "백색" 개념 바꿔
18세기 이후부터 동아시아인을 "황색 피부"로 분류
황인종의 탄생: 마이클 키벅 지음
동아시아인은 어떻게 ‘황인종’이 되었나
한때는 ‘백인’이던 동아시아인들이 어떻게, 왜 ‘황인’으로 분류되게 되었는지
그 연원과 내력을 끈질기게 파헤친다.
마이클 키벅 교수
동아시아인들의 얼굴에 ‘노란색’ 딱지를 붙인 첫 ‘용의자’로는
저 유명한 칼 폰 린네(1707~78)가 지목된다.
그는 동아시아인의 피부색을 어둡다는 뜻의 라틴어 ‘푸스쿠스’(fuscus)로 표현했다가 1758~9년 간행된 <자연의 체계> 제10판에서는
‘루리두스’(luridus·연황색, 창백한)로 구체화했다.
린네가 칠해놓은 색깔을 넘어 ‘몽고성’(mongolianness)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낙인을 찍은 이는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1752~1840)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서구와 동아시아가 처음 만났을 때에는 서구의 경제력이나 군사력, 문화력이 동양을 압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서구인들은 동아시아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관료제를 부러워했다.
상인·선교사·탐험가 등 서구의 방문자들이 보기에 동아시아는 물산이 풍부하고 문화와 관습이 세련된 고장이었다.
그들은 교류를 바랐고 동아시아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를 기대했다.
서구가 동아시아를 앞서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슬슬 바뀌었다.
17세기부터 서구인들은 백색을 자신들 피부에 국한시키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걸렸다.
18~19세기부터 서구인들은 동아시아인들에게 ‘황색’이라는 피부색을 부여했다.
스웨덴 박물학자·식물학자 칼 폰 린네(1707~78), 빅토리아 시대 과학자, 인류학자들이 ‘결정’한 색이 황색이었다.
유럽에 인종주의가 뿌리내리면서 동아시아인의 피부색은 ‘황색’으로 굳혀졌다.
저자의 말처럼 “백색은 20세기 초부터 오직 서구인에게만 허용된 개념”이 됐다
.놀랍게도 ‘황색’이라는 피부 정체성은 동아시아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었다.황인종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자
일본의 다구치 우키치(田口卯吉·1855~1905) 같은 학자는
일본인들은 ‘덜 노랗다’고 주장하며 서양에 반발했다
대한제국의 신채호는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정의했다.
‘아(我)’는 민족이 될 수도 있고 ‘계급’이나 ‘인종’이 될 수도 있다.
대한제국의 친일 세력은 백인종에 대항해
일본을 중심으로 황인종끼리 뭉쳐야 한다며 민족을 배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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