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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独島は韓国の地¥"と言う日本の人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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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WC궼땸귡 2005봏 3뙉, 볷{뱡뜧뙢궕 "|뱡궻볷"귩맕믦궢궫렄귖뙸땉됵귩먖귕궲 "벲뱡궕듰뜎궻뭤"궳궇귡궞궴귩뼻귞궔궸궢궲뿀궫. AWC궻궞궻귝궎궶롥뮗궼귔궢귣듰뜎궳뙻궎롥뮗귝귟귖궯궴뼻둴궸`묪궢궲궋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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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쀰럍밒궸뮝멞뭤궳궇귡벲뱡]뚈뼀{궼벲뱡귩 "Matsushima"궴됊궯궲 "|뱡"궴뚁궽귢궫웆쀋뱡궴궴귖궸볫궰궻뱡귩볷{릐궻뱊뛮궴땹뢟궕뗕~궠귢궫뮝멞뭤궳봃렞궢궲궋궫. 뼀{궻뒸멗럚벑궸벲뱡귩딯띦궢궶궔궯궫. 뼻렊맠{귖 1905봏뺂볺귏궳궼벲뱡귩뮝멞뭤궳봃렞궢궲궋궫.
    1869 봏궻뮧뜽궻궫귕궸뮝멞궸봦뙪궠귢궫둖뼮뤙뒸뿻궼궩궻렅봏믯뢯궢궫뺪뜍룕 "]깛긐긞긏긎깈[긘}깑^궳(뮝멞뜎뚴띧럑뼎뭈룕)"궸|뱡(웆쀋뱡)궴Matsushima(벲뱡)궼뮝멞븫뫌궬궴럊궯궫. 1877봏뱰렄궻띍뛼뜎됄@듫궳궇귡묈맠뒸(뫞맠뒸)궕 "볷{궢뢯궢궲|뱡궴궩궻뫜뙽귟뱡귩붎}둖궳뙂귕귡(뒗- |뱡몵궑궫웆쀋뱡, 궩궻둖덇뱡궼벲뱡귩댰뼞궥귡)"궼럚쀟귩돷궛궫. 볫궰궻뱡궼붎}둖(붎둖), 궥궶귦궭볷{쀌뱘궳궼궶궋궴궋궎뚺렜먬뙻궬. 1894봏뼻렊맠{궕뜎됄럷떾궳맶띿궢궫럚벑궕 "묈볷{듖뒐~뭤귖(묈볷{듖뒐빁뭤})"궸뵯뒮궠귢궫궕볫궰궻뱡궼딯띦궢궶궔궯궫. 볷{둇똓궼 "뮝멞릣쁇궬(릣쁇럮)"1894봏붎궴 1899봏붎궸볫궰궻뱡귩딯띦궢궫. 궞귢궼벲뱡궕뮝멞쀌뱘궳봃렞궢궲궋궫궞궴귩뙸귦궥. 1900봏묈듰믧뜎궼뮱쀟41뜂궳웆쀋뱡뢂뺃궸궇귡 "먐뱚(벲뱡)"궕렔뜎뱷렊궻돷궸궇귡궴뙻궯궫. 궞귢궸뫮궢궲뼻렊맠{궼댶뙥궼뢯궠궶궔궯궫. (2)뮝멞륛뼬럛봹롨럑귕궴똰궕귢궫벲뱡뿩묭 @궴궞귣궳 1905봏뼻렊맠{궼볷쁈먰몚궕^궯띍뭷궶렄똓럷{먠뙕먠귩뽞밒궸궥귡궞궴궴벏렄궸듰뜎궸뫮궥귡륚뼬뭤돸맠랉귩똽궢궘릢릋궥귡륉떟궻뭷궳벲뱡귩떗맕궳뿩묭궢궫궻궬. "귺긽깏긇궼띸궘귦궚긯깛귩, 귽긎깏긚궼덙벑귩, 볷{궼뮝멞귩롦귡"궼뷏뎟볷뒮궻믧뜎롥`밒뜃댰귩봶똧궸궢궲 1904봏 2뙉볷{똓궼볷쁈먰몚궸벺볺궥귡궞궴궴벏렄궸릑먯궸뤵뿤궢궫뚣듌뤻귩댊궢궫. 벏뙉듰볷땉믦룕뮧덐귩떗뾴, 5뙉묈듰(뫮듰){먠뛧쀌둻땉뙂믦, 9뙉묉1렅듰볷떐뽵귩뙅귪궬. 깓긘귺둇똓궕볷{뾃몭멏귩뮶귕귡륉떟궻뭷궸 11뙉깓긘귺궳 "깏귺깛긐긏깑뱗"궴뚁궽귢궫벲뱡궸깓긘귺둇똓듒럨뾭]랎뙕먠궕됀궬궴뷈궻뮧뜽궳둴봃궢궫. 뾺봏궻 1905봏 1뙉뼻렊맠{궕 "깏귺깛긐긏깑뱗"귩 "뽏롩궬(뼰롥뭤)"궳뢩귘궔궳쀌뱘뺂볺귩둻땉뙂믦궢궲 "|뱡"궳뼹븊궚궫. 궩궻렄듫똚뜎궳궇귡뮝멞궴궻떐땉귖뒸뺪귩믅궣귡뚺렑귖궶궔궯궫. 궩궻봏 7뙉벲뱡궸]랎귩뭶뛊궢궲 8뙉궔귞듒럨뒋벍귩럑귕궫. 궥궶귦궭, 쁈볷먰몚귩룦궰궫귕궻똓럷{먠뙕먠귩뽞밒궸궢궫벲뱡궻쀌뱘뺂볺귩붼뼤뿠궸떗뛱궢궫궻궬궯궫. 궞귢궼밯렑궶궻귩뿚뾕궸궢궲뫜뜎쀌궶궻귩봃렞궢궶궕귞귖쀌뱘뺂볺귩궫궋궲궋, 귏궠궸믧뜎롥`밒궶쀌뱘둳벦궬궯궫. (댥뤵궻쀰럍떒궴궼뵾뙉뤻 "볷{궻벲뱡뺳딙궴쀌뱘뺂볺" ("뮝볷듫똚럩_뢜, 륷뒮롊, 2003)궸딈궱궋궫.)
    궩궢궲궩귢궼 1905봏 10뙉 "돰뼡뺎뚯륆뽵" 떗맕궸귝귡뮝멞륛뼬럛봹둎럑궴덇룒궸딳궯궫궻궬궯궫.(덙뾭뢎귟)

    궢궔궢, 볷{땉됵맠}궼렔뼬}궔귞떎럀}귏궳덇궰귖럄귞궦 [벲뱡궼볷{쀌뱘]궴롥뮗궢궲궋귡. 뜺봦릛뎑궳귖, 뫝궘궻릐갲궼덭뾻궻롥뮗궳궇귡뼬뫎롥`귩뙔닽궥귡궔귞궔, 쀌뱘뽦묋궳궇귡벲뱡뽦묋궸뫮궢궲뮶뽝귏궫궼궵궯궭궰궔궦궶뫴뱗귩롦궯궲궋귡. 궩궢궲, 볷{뜎뼬궩궻묈븫빁궕벲뱡궕궵궞궸궇귡뭤, 벲뱡귩볷{궕뜞귏궳궵귪궶궸봃렞궢궲궋궫궻궔뜞귖빁궔귞궶궋. 궢궫궕궯궲럡궫궭궼듰뜎뜎뼬궴떗궘쁀뫱궢궲, 궩귢귩딈멳궸궢궲, 볷{맠{궕귘귞궔궢궲궋귡벲뱡궸듫궥귡뼬뫎봱뫜롥`먾벍궸뛕땉궢궲, 궩귢귩귆궭됹궥궞궴궕궳궖귡궚귪궔귩멺륞궥귡. 벏렄궸쀰럍귩둾귪궳, 맫궢궋쀰럍봃렞귩둴뿧궥귡귝궎궸뱖쀍궥귡. 궩궢궲, 볷{뜎뼬멣뫬궕맫궢궋쀰럍봃렞귩렃궯궲, 듰뜎귩럑귏귟궸궢궲귺긙귺뼬뢔궴뜎떕귩뎭궑궲쁀뫱궢궲, 먰몚궴맊둉돸뿬귢귩멽귔^벍궸릋귔귝궎궸귝귟덇몏쀍귩똛궚귡귝궎궸궥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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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말하는 일본 사람들

일본 현지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외치는 일본인들이 있다. 해마다 독도 파장이 있을 때 마다 자국 정부를 규탄하며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는 "아시아공동행동일본연락회의"(AWC·Asian Wide Campaign)가 바로 그들이다.

지난달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오는 2012년부터 실시되는 중학교 사회교과서의 새로운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명기한 것과 관련, AWC는 같은 달 20일 성명을 내고 "일본은 약 100년 전까지는 역사적으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면서 "에도막부도 메이지정부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러일전쟁 와중에 메이지정보가 독도의 군사적 거점으로서 유용성에 주목해, 조선식민지지배의 실질적인 첫해인 1905년에 제 멋대로 자국 영토라고 정하고 빼앗아간 것"이라고 밝혔다.

AWC는 지난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이
  • AWC는 지난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을 때도 현 의회를 비난하며 "독도가 한국땅"임을 밝혀왔다. AWC의 이 같은 주장은 오히려 한국에서 말하는 주장보다 더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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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정부가) 약탈한 것이다. 훔친 것이다. 도둑이다. 제국주의적 범죄행위 그 자체다"라고 서슴지 않으며 자국 정부를 비난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토지를 빼앗긴 한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중이 독도문제에 관해 일본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며 제국주의적 확장주의를 바탕으로 빼앗아간 것은 사죄와 함께 반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AWC는 지난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을 때도 현 의회를 비난하며 "독도가 한국땅"임을 밝혀왔다. AWC의 이 같은 주장은 오히려 한국의 주장보다 더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일본 의회정당은 자민당으로부터 공산당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좌파진영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우익의 주장인 민족주의를 혐오하기 때문인지, 영토문제인 독도문제에 대해서 침묵 또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또한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해서도 AWC는 "일본 우익반동세력이 주축으로 진행하는 군국주의부활 움직임"으로 규정하고 "영토문제를 계기로 삼아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2000만 명의 아시아인들의 생명과 생활, 권리를 짓밟아 강제로 빼앗았던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비참한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달 20일 AWC가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신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기재한 독도에 관한 기재를 규탄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


  • 7월 14일에 문부과학성은 2012년도로부터 완전히 실시되는 중학교 신학습 지도요령 해설서를 공표했다. 문부성은 그 안에 독도(일본명 다케시마)의 영유문제를 다음과 같이 다뤘다. [또한, 우리나라와 한국 간의 독도(상동)을 둘러싸고 주장이 다른 것 등도 다뤄, 북방영토와 같이 우리나라 영토,영역에 대해서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로,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라고 하는 독도에 관한 일본정부의 공식견해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책동이다. 2005년 3월에 시마네현 의회가 저지른 [다케시마의 날] 조례에 잇는 민족배타주의 선동 그 자체다. 또한 [-등]이라고 한 부분은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의 영유를 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일본은 약 100년전까지는 역사적으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에도막부도 메이지정부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러일전쟁 와중에 메이지정보가 독도의 군사적 거점으로서 유용성에 주목해, 조선식민지지배의 실질적인 첫해인 1905년에 제 멋대로 자국 영토라고 정하고 빼앗아간 것이다. 약탈한 것이다. 훔친 것이다. 도둑이다. 제국주의적 범죄행위 그 자체다. 자신들의 토지를 빼앗긴 한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중이 독도문제에 관해 일본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제국주의적 확장주의를 바탕으로 빼앗아간 것은 사죄와 함께 반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우리들은 3년 전 2005년 3월 16일, 시마네현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다케시마의 날] 조제가 제정되었을 때도 항의하여 [독도 = 타케시마 문제에 관한 성명]을 냈다. 독도에 관한 역사적 경과에 관한 부분을 아래 인용한다.

    (1) 역사적으로 조선 땅인 독도 에도 막부는 독도를 "마츠시마"로 부르고 "다케시마"로 불린 울릉도와 함께 두 섬을 일본인의 도항과 거주가 금지된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막부의 관선지도에 독도를 기재되지 않았다. 메이지 정부도 1905년 편입까지는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869 년 조사를 위해 조선에 파견된 외무성 관료는 그 다음 해 제출한 보고서 "조선국교제시말탐서(朝鮮國交際始末探書)"에 타케시마(울릉도)와 마츠시마(독도)는 조선 부속이라고 썼다. 1877년 당시의 최고 국가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일본해 내 다케시마와 기타 한 섬을 판도 외로 정한다(주- 다케시마 는 울릉도, 그 외 한 섬은 독도를 뜻함)"는 지령을 내렸다. 두 섬은 판도 외(版外), 즉 일본 영토가 아니다는 공식 선언이다. 1894년 메이지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제작한 지도가 "대일본관할분지도(大日本管轄分地圖)"로 발간되었는데 두 섬은 기재되지 않았다. 일본 해군은 "조선수로지(水路誌)"1894년판과 1899년판에 두 섬을 기재했다. 이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던 것을 나타낸다.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41호에서 울릉도 주변에 있는 "석도(독도)"가 자국 통치하에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메이지 정부는 이견은 내지 않았다. (2)조선 식민지배 시작과 연결된 독도 약탈  그런데 1905년 메이지 정부는 러일 전쟁이 한창인 때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격렬하게 추진하는 상황 속에서 독도를 강제로 약탈한 것이다. "미국은 필리 핀을, 영국은 인도를, 일본은 조선을 취한다"는 미영일간의 제국주의적 합의를 배경으로 하여 1904년 2월 일본군은 러일 전쟁에 돌입함과 동시에 인천에 상륙한 후 한성을 제압했다. 같은 달 한일의정서 조인을 강요, 5월 대한(對韓)시설강령 각의 결정, 9월 제1차 한일협약을 맺었다. 러시아 해군이 일본 수송선을 가라 앉히는 상황 속에 11월 러시아에서 "리앙쿠르 도"로 불리던 독도에 러시아 해군 감시용 망루 건설이 가능하다고 예비 조사로 확인했다. 다음해인 1905년 1월 메이지 정부가 "리앙쿠르 도"를 "무주지(無主地)"로 단정하여 영토 편입을 각의결정해서 "다케시마"로 명명했다. 그 때 관계국인 조선과의 협의도 관보를 통한 공시도 없었다. 그 해 7월 독도에 망루를 착공하고 8월부터 감시 활동을 시작했다. 즉, 러일전쟁을 이기기 위한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한 독도의 영토 편입을 비밀리에 강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시임을 이유로 하여 타국령임을 인식하면서도 영토 편입을 한, 그야말로 제국주의적인 영토 획득이었다. (이상의 역사 경과는 반월성 "일본의 독도 포기와 영토 편입" ("조일관계사논집, 신간사, 2003)에 의거했음.)
    그리고 그것은 1905년 10월 "을사보호조약" 강제로 인한 조선 식민지배 개시와 같이 벌어진 것이었다.(인용 끝)

    그러나, 일본 의회정당은 자민당으로부터 공산당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좌파진영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우익의 주장인 민족주의를 혐오하기 때문인지, 영토문제인 독도문제에 대해서 침묵 또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국민 그 대부분이 독도가 어디에 있는 지, 독도를 일본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지금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들은 한국국민과 강하게 연대하여,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일본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독도에 관한 민족배타주의선동에 항의하여, 그것을 깨부술 수 있는 싸움을 조직한다. 동시에 역사를 배우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일본국민 전체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한국을 시작으로 하여 아시아 민중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전쟁과 세계화 흐름을 막는 운동에 전진할 수 있도록 더욱더 힘을 쏟도록 한다.

    우리들은 다음 사항을 일본정부, 문부과학성에 요구한다.

    1.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 한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임을 일본정부는 인정하라
    2.일본정부,문부과학성은, 중학교 신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기재한 독도에 관한 기재를 당장 철회하라
    3.일본정부,문부과학성은 독도 및 북방제도,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일본영토라고 하는 기술을 당장 삭제하라
    4.일제의 아시아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의해 살해당한, 또는 피해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시작으로 하는 아시아민중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일본정부는 당장 행하라.

    일본의 노동자, 민중 여러분 일제 민족배타주의선동을 저지하자. 역사왜곡교과서에 반대하자.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허용 말라. 미군과 자위대의 일체화를 저지하자. 미군재편을 반대하자. 한일민중들은 연대하자 .

    2008년 7월 20일
    미.일 제국주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 공동행동(AWC) 일본 연락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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