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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国大和はゴジッマルと捏造をやめ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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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国大和が嫌いで北朝鮮が良くて北朝鮮の

男が好きで懐かしくて大和を脱出したことであるだけ

倭人たちはゴジッマルと捏造をやめてください^^*

息子飯塚Koichiで, 早ければ来週金賢姫さん会って

1978年拉北 ‘金賢姫日本語先生’ 田口さん息子 ‘涙の思母曲’

《“二十一歳になってからこそ実の母が誰なのか分かるようになりました. 今も北朝鮮に住んでいるはずと信じます. 金賢姫さんに会えばママがどんな人だったか直接聞きたいです.”

日本人拉致被害者田口ヤエコ(田口八重子・北朝鮮人李恩恵) さんの息子飯塚Koichiで(飯塚耕一郎・32) さんはママの話が出ると目頭を赤くした.

早ければ来週韓国で金さんに会うことと知られた彼を 4日日本東京の一コーヒーショップで会った. 大韓航空機爆破社でも犯人で死刑判決を受けた金さんは北朝鮮で田口さんに日本語を学びながら姉妹のように親しく過ごした.》

“‘君のママは別にいる’お父さんに分かった母方のおじ21歳の時真実知らせてくれ / ママの憶えるがないが 31年前褪せた家族写真常に胸の中に抱いて暮して / 死んだという 北主張信じなく韓国行って 金さん会えばママの話思う存分聞きたくて”


最後の家族写真と帽子手帳
田口ヤエコさんが拉致される前の 1978年ある日東京自宅で隣りとともに撮った家族写真(左側). 左側が田口さん, 正面の中縞模様上着を着た子供が娘(当時 3歳), 抱かれている子供が息子飯塚Koichiでさん(当時 1歳). 他人はモザイク処理した. 田口さんと息子飯塚さんの名前が書かれている(赤いほくろでは中) 帽子健康手帳. 飯塚さんは来週金賢姫さんに会う時この手帳を持って行く計画だ. 写真提供飯塚Shigeoさん



離婚後一人で二人のお子さんを育てた田口さんが足跡を隠したことは 1978年 6月. 飯塚種と二つの歳偉人彼のお姉さんは急に孤児になった. 彼の年一歳の時だった. 飯塚さんは母方のおじ飯塚Shigeo(飯塚繁雄・現在拉致被害者家族回代表) さんの養子に入籍されたし, お姉さんは叔母(田口さんのお姉さん)が引き受けた.

母方のおじは彼が養子という事実を隠した. 幼い年令に衝撃を受けることを気づかってからだった. お婆さんお爺さん母方のおじ外叔母叔母いとこなど全家族が緘口した. おおよそ 20年間.

お姉さんは朧気な記憶が残っていて実の母が別にあるという事実を少し早く分かったが, お姉さんさえ彼に一言半句もなかった.

真実は二十一歳秋に急に尋ねて来た. 1998年アメリカ出張のためにパスポートを作る過程で戸籍謄本に ‘養子’という字が被せていたこと.

“衝撃でした.”

その直後母方のおじは “実ははいママは別にいる. 北朝鮮に拉致された田口ヤエコがチンオムごとに”と言ってくれた. もう一度の衝撃だった.

彼が世の中を向けて “私が田口さんの親子です. 拉致問題に関心を持ってください”と叫ぶまではそれから 6年の歳月がもっと必要だった. その間他人が分からない涙を流して悲しみを和らげてまた和らげた.

実は彼はママに対する記憶が一つもない. 写真や金賢姫さんの本を通じてママを接したのが全部. それで金さんとの出会いをすごく期待している. ママが彼を腹の中に抱いていた時に作った帽子健康手帳とへその緒も一緒に持って行くと言った. 自分とママを連結する唯一の紐だからだ.

別れた歳月を補償受けようとするように彼はママが拉致される数ヶ月の前に一緒に撮った褪せた家族写真を常に解くに抱いている.

彼はママが 1986年交通事故で死んだという北朝鮮の主張を信じない. “北朝鮮が提示した交通事故調査書にはママ名前もいなくて半分が真黒く消されていた. 帰国した拉致被害者の中には 1986年以後ママを見た人もいる”と言うのがその理由だ.

2004年には ‘ママの息子’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のに対して彼は “6者会談で拉致問題が進捗がならない状況で, 国際社会に早速な解決を促すためだ”と言った. この時から彼は拉致問題解決のための公開活動に積極出た.

その年金賢姫さんに会いたいという手紙を日本外務省を通じて送ったりした. しかし手紙が金さんに伝達しなかったようだと彼は信じている.

彼は “別れて暮さなければならない拉致被害者家族の哀歓に聞き入ってドル”と韓国国民の関心を促した.

東京=ユンゾンググ特派員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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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 야마토는 거짖말과 날조를 그만두어라....

섬나라 야마토가 싫고 북한이 좋아서 북한의

남자가 좋고 그리워서 야마토를 탈출한 것일 뿐

왜인들은 거짖말과 날조를 그만두어 주세요^^*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 이르면 다음주 김현희 씨 만나

1978년 납북 ‘김현희 일본어선생’ 다구치 씨 아들 ‘눈물의 사모곡’

《“스물한 살이 돼서야 친엄마가 누구인지 알게 됐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살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김현희 씨를 만나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직접 듣고 싶습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북한명 이은혜) 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 씨는 엄마 얘기가 나오자 눈시울을 붉혔다.

이르면 다음 주 한국에서 김 씨를 만날 것으로 알려진 그를 4일 일본 도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범인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던 김 씨는 북한에서 다구치 씨에게 일본어를 배우면서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

“‘네 엄마는 따로 있다’아버지로 알았던 외삼촌 스물한살 때 진실 알려줘 / 엄마의 기억 하나 없지만 31년전 빛바랜 가족사진 늘 가슴속에 품고 살아 / 숨졌다는 北주장 안믿어 한국 가서 金씨 만나면 엄마 얘기 실컷 듣고 싶어”


마지막 가족사진과 모자 수첩
다구치 야에코 씨가 납치되기 전인 1978년 어느 날 도쿄 자택에서 이웃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왼쪽). 왼쪽이 다구치 씨, 정면 가운데 줄무늬 상의를 입은 아이가 딸(당시 3세), 안겨 있는 아이가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 씨(당시 1세). 다른 사람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다구치 씨와 아들 이즈카 씨의 이름이 적혀 있는(빨간 점선 안) 모자건강수첩. 이즈카 씨는 다음 주 김현희 씨를 만날 때 이 수첩을 가져갈 계획이다. 사진 제공 이즈카 시게오 씨



이혼 후 혼자 두 자녀를 키우던 다구치 씨가 종적을 감춘 것은 1978년 6월. 이즈카 씨와 두 살 위인 그의 누나는 졸지에 고아가 됐다. 그의 나이 한 살 때였다. 이즈카 씨는 외삼촌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현재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 씨의 양자로 입적됐고, 누나는 이모(다구치 씨의 언니)가 맡았다.

외삼촌은 그가 양자라는 사실을 숨겼다.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해서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 외숙모 고모 사촌 등 온 식구가 함구했다. 무려 20년 동안.

누나는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 있어 친엄마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지만, 누나조차 그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다.

진실은 스물한 살 가을에 갑자기 찾아왔다. 1998년 미국 출장을 위해 여권을 만드는 과정에서 호적등본에 ‘양자’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던 것.

“충격이었습니다.”

그 직후 외삼촌은 “사실 네 엄마는 따로 있다. 북한에 납치된 다구치 야에코가 친엄마다”라고 말해줬다.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그가 세상을 향해 “내가 다구치 씨의 친아들입니다. 납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라고 외치기까지는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그동안 남모를 눈물을 흘리며 설움을 삭이고 또 삭였다.

사실 그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사진이나 김현희 씨의 책을 통해 엄마를 접한 게 전부다. 그래서 김 씨와의 만남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 엄마가 그를 뱃속에 품고 있던 때에 만들었던 모자 건강수첩과 탯줄도 함께 갖고 가겠다고 했다. 자신과 엄마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이다.

헤어진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 그는 엄마가 납치되기 수개월 전에 함께 찍었던 빛바랜 가족사진을 늘 품에 안고 있다.

그는 엄마가 1986년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북한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북한이 제시한 교통사고 조사서에는 엄마 이름도 없고 절반이 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귀국한 납치 피해자 중에는 1986년 이후 엄마를 본 사람도 있다”는 게 그 이유다.

2004년에야 ‘엄마의 아들’임을 밝힌 데 대해 그는 “6자회담에서 납치 문제가 진척이 안 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이때부터 그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개 활동에 적극 나섰다.

그해 김현희 씨를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일본 외무성을 통해 부치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가 김 씨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그는 믿고 있다.

그는 “헤어져 살아야 하는 납치 피해자 가족의 애환에 귀 기울여 달라”며 한국 국민의 관심을 촉구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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