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재 후쿠오카 한국 영사관 앞"베트남 반전상"설치에 관한 한국을 향한 성명
여러분들이 한국 내 일본 대사관·영사관 앞에 이른바"종군 위안부상(従軍慰安婦像)"을 설치하고 있는 것을 염두에, 우리는 2017년 8월 15일, 우리가 사는 지역(후쿠오카시)에 있는 한국 영사관 앞 길에 "베트남 반전상"을 설치하는 것을 시도합니다(일본에는 언론 자유가 없으므로 실제로는 설치할 수 없다고 예상하고 있지만).
이 시도는 여러분들의 "종군 위안부상(従軍 慰安婦像)"에 대항(対抗)하고나 항의(抗議)할려는 의도는(전혀 없진 않지만)희박(稀薄)하고, 진정한 의도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융성하고 있는" 반한(反韓), 혐한(嫌韓)"의 단체·운동 상황에 대해서는 꽤 상세하게 알려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 국내의 이른바"자학 사관(自虐 史観)"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여러분들에게 알려지고 있습니까?
"자학 사관(自虐 史観)"은 일본의 역사학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자국의 역사를 비굴한까지 비판적으로 그리는 성향"에 대해서, "반한(反韓)"과 "반중(反中)"을 내세우는 일본의 자칭(自称)"애국자"들이 붙인 꼬리표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인상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오히려 이"자학 사관(自虐 史観)"파가 압도적으로 주류이었고, 이에 대항하는 형태로 90년대 후반 이후, "반한(反韓)·반중(反中)"을 내세우는 소수파(少数派) 여러 운동들이 표면적으로 눈에 띄게 되어, 눈에 띄기 때문에 소수파(少数派)인데도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학 사관(自虐 史観)"에서는 당연히 근대에서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인근 국가(近隣 国家)에 대해서 이룬 일련의 침략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비판적으로 묘사됩니다만, 사실 일본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역사 교육에서도 이런"자학 사관(自虐 史観)"적인 것이 주류(主流)이고, 학교 교육에서 사용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반한(反韓)·반중(反中)"을 내세우는 자칭(自称)"애국자" 들이 90년대 후반 이후 "비(非) 자학 사관(自虐 史観)"의 "애국적"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하려고 하고있습니다. 그 일은 여러분들에게도 잘 전해지고있습니다만, 그들의 교과서의 학교 현장 채용율(採用率)은 현재도 몇%정도입니다.
"자학 사관(自虐 史観)"는 일본 특유한 것이 아니고, 선진국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경향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도 60년대 말 이후, 그동안 미국이 원주민과 흑인에 얼마나 심한 행동을 거듭했는가를 반성적으로 검증하는 역사관이 주류가 되어 왔고, 그것은 근대사에서 비(非) 유럽 지역을 침략·수탈하고 온 과거를 가진 유럽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들 선진국의 "자학 사관(自虐 史観)"은 바로 60년대 후반의 "베트남 반전(反戦)"운동을 계기로 등장하고, 확산되며, 이윽고 정착(定着)한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베트남 반전(反戦)" 예전의 일본인 반전(反戦) 운동은 지배자의 제멋대로인 사정으로 비참한 전쟁에 다시 휘말리는 것은 싫다는 "피해자 시점"에서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부정의(不正義)한 전쟁에 협력하는 일본은 베트남에 대해서는 가해자(加害者)가 아니냐"는 문제 의식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반전(反戦) 운동은 "가해자의 자기 비판(自己 批判)"의 측면을 강하게 갖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延長線上)에 곧 원래 제2차 대전에서 일본은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인근 국가(近隣 国家)에 대해서는 가해자였지 않은가, 특히 조선에 대해서는 메이지 유신(明治 維新) 이후 계속 가해자로서 존재하지 않았는가, 더 뒤돌아보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출병(朝鮮出兵)도 고대의 백강 전투(白江戰鬪)도 침략이고, 조선에 대해서뿐 아니라 류큐(琉球)와 아이누(アイヌ)라는 일본 열도 내의 이민족에 대해서도……이러한 본격적(本格的)이고 종합적(総合的)인 "자학 사관(自虐 史観)"가 빠르게 형성되면서 적어도 아카데미즘(academism) 세계에서는 주류가 되어, 당연히 아카데미샨(academician)들이 주도하는 학교 교육에도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이제"자학 사관(自虐 史観)"은 선진국 공통의 일종의 "기호"가 되고 있습니다.
나부끼고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적어도 일본에 전해지는 범위에서는 여러분에게는 아직"자학 사관(自虐 史観)"의 "소양"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항상"피해자"이고, 나쁜 것은 일본이다, 중국이다, 러시아다,,라고 하는 자국 중심주의 사관(自国中心主義史観), 즉 "자존 사관(自尊史観)"은 발전 도상(発展途上)의 후진국(後進国)에 어울린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탈피(脱却)하지 않은 데는 여러분의 나라는 언제까지나 진정한 선진국(先進国)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 같은 2류 선진국에서도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죠.
이번에, 한국 영사관(韓国領事館) 앞에 "베트남 반전상(反戦像)"의 설치를 시도하는 우리 그룹은 " 반한(反韓)·혐한(嫌韓)"을 내세우는 사람들과도 약간의 친분(親交)은 가지면서, 다양한 부분에서 거리를 두고 활동하는 일파(一派)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한국 내 일본 대사관(日本大使館)·영사관(領事館) 앞 등에 "종군 위안부 동상(従軍慰安婦像)"을 설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불쾌감(不快感)을 가지고 있는데(외교적으로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여전히"피해자 사관(被害者 史観)"를 벗어나지 못한 후진 국민(後進国民)인 현실을 과시되고, 연민(憐憫)의 감정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일의 책임은, 조선의 근대화를 저해하고 온(일본의 자칭"애국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본의 독특(独特)한 식민지 정책은 오히려 조선 반도의 근대화를 도운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즉 여러분 자신의 노력에 의한 자주적(自主的), 자립적(自立的)인 근대화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것입니다)우리 일본인에게도 있는 것은 아닌지,,이렇게 선진 국민(先進国民)이기 때문에 자학적(自虐的)으로 스스로를 몹시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진국(先進国) 선배(先輩)로서의 책임감부터(혹은 여러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는 "정직한 근대화"를 막은 것에 대한 죄악감(罪悪感)에서)여러분들에게 빨리 선진국민(先進国民) 다운"자학 사관(自虐史観)"의 소양을 가질 수 있도록, 그 일조(一助)로서 "베트남 반전상(反戦像)"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한국은 근대에서 항상 "피해자(被害者)" 이었어요? 한국은 베트남에서 "종군 위안부(従軍慰安婦)"에 비슷한 종류의 어리석은 짓을 행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물론 우리는 과거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인근 국가(近隣国家)에 대해서 행한 일련의 침략 행위(侵略行為)를 정당화(正当化)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소의 "말하고 싶은것", 혹은"여러분에도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은 있습니다. 원래의 원흉(元凶)은, 우리의 동(東) 아시아를 포함한 비(非)유럽 지역을 잇달아 식민지화(植民地化)한 구미 열강(欧米 列強)에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이나 중국이나 조선도 이에 맞서야 했던 것은 자명(自明)하죠. 원래 우리는 한마음으로 구미 열강(欧米 列強)의 침략에 대항해야 할 떼에, 당시의 각각의 국정에서, 대항에 치고 나가려는 타이밍이 비뚤어지고, 원래 중국 문화권의 최후진국(最後進国)이었던 일본이 왠지 선두에 서게 되고, 낯선 것으로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여러분에도 필설(筆舌)로 다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 일은 부정(否定)하지 않았구요, 저희는 저희들 모여 잘(자주) 반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으로, "그럼 왜 자신들이 솔선(率先)해서 구미 열강(欧米 列強)의 침략에 맞서기를 시작하지 못할까" "일본이 나쁘다로 마쳐서 좋은 것인가", 또 말하면, 만약 만일 여러분이 중국이나 일본에 앞서서 근대화(近代化)에 성공했다면, 여러분이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 "일본이 중국과 조선에 대해서 행한 것과 같은 것", 혹은 "더 지독한 일을 벌인 가능성은 없는지", 요컨대 그럼 "본래 중국·조선·일본은 그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등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에 "베트남 반전상(反戦像)"이 그 계기의 하나가 되길 바라고 있는 바입니다.
2017년 8월 15일
큐슈 파시스트(fascist) 당〈와레와레 당〉(九州ファシスト党〈我々団〉)
총통: 토야마 코이치 (総統・外山恒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