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インへ

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在日詩人キムさん(86)の回想

閲覧数 : 473
JA 255 ひょうたんでしょう 2,811,753
在日詩人キムさん(86)が回想録
韓国で数万人が虐殺される中
密航船で大阪へ逃げた


イメージ



在日詩人・金時鐘さんが回想録 
2015年04月10日 08時01分 
自分を整理 
「四・三事件」記す 

 『猪飼野(いかいの)詩集』などで知られる在日の詩人・金時鐘(キムシジョン)さん(86)=写真=が、 回想録『朝鮮と日本に生きる』(岩波新書)を刊行し、
韓国・済州島(チェジュド)で1948年に起きた 「四・三事件」との関わりをつづった。 

 「苦難の故郷を見捨てて逃げを打ったことは一生の負い目」と長く沈黙してきたが、その体験は金さんの 紛れもない“詩のありか”でもある。 

 四・三事件は、同年4月3日の反体制派弾圧事件。南北分断の固定化につながる南朝鮮の単独選挙を阻止しようと、民衆が武装蜂起し、軍や警察の鎮圧部隊に数万人が殺された。

19歳の金さんは、 武装隊を率いた南朝鮮労働党の一員だった。襲撃先の郵便局では、同志が目の前でカービン銃で撃たれ、自らも追われる身となった。翌年5月、日本行きの密航船に乗り込み、大阪・生野のコリアンタウンに行き着いた。 


 〈春は 喪の季節です。/甦(よみがえ)る花は きつと/野山に 黒いことでしよう。(略)//私は一本の つつじの花を/胸にかざるつもりで います。/砲弾の くぼみに咲いた 黒い花です。〉 55年に出した第1詩集『地平線』で焦土と化した故郷を悼んだが、自らの関与には触れていない。 「軍事政権下の韓国に強制送還されれば、事件の残党ということでまず命はなかったやろうから」。 
日本に来た理由は「よんどころない事情」としたままだったが、ゆるぎない詩人の言葉で「在日」を生きる意味をとらえてきた。「そうでないと、民族意識に目覚めたことも、事件に関わったことも、 自分にとって何のよすがでもないことになる。空虚だよ。知った者が、知らない形は取れないのよ」 

早く母国に帰れwww5: <丶`∀´>(´・ω・`)(`ハ´  )さん@\(^o^)/ 2015/04/10(金) 20:18:19.34 ID:Y1fZPoDi.netそして助けてくれた日本に強制連行されたと主張 
クズの中のクズ
167: <丶`∀´>(´・ω・`)(`ハ´  )さん@\(^o^)/ 2015/04/10(金) 20:52:06.42 ID:OWvjFhtw.net>>5 
ほんとにね。 
正直に生きてれば在日には別の未来が 
あったかも知れないのに。
39: <丶`∀´>(´・ω・`)(`ハ´  )さん@\(^o^)/ 2015/04/10(金) 20:28:51.02 ID:/hWw6U5t.net>>5 

これ。 
済州島出身の在日は南チョン政府の虐殺から逃れて日本に来たのに、 
強制連行されたとか嘘ついて日本に居座り、 
反日しまくりの恩を仇で返すクズ共。



45: <丶`∀´>(´・ω・`)(`ハ´  )さん@\(^o^)/ 2015/04/10(金) 20:30:31.40 ID:qeiztcYt.netこれ保導連盟事件で怖くなったから日本に密入国してきたって事?
55: <丶`∀´>(´・ω・`)(`ハ´  )さん@\(^o^)/ 2015/04/10(金) 20:32:43.46 ID:ONHvqU20.net>>45 
×怖くなったから 
○武装ゲリラの一員として当たり前に当時の政府に殺されかけたから 

>武装隊を率いた南朝鮮労働党の一員だった


済州島四・三事件

イメージ


翻訳を見る

재일 시인 김씨(86)의 회상

재일 시인 김씨(86)가 회상록
한국에서 수만인이 학살되는 중
밀항선으로 오사카에 도망쳤다


이미지



재일 시인·긴토키종씨가 회상록
2015년 04월 10일 08시 01분
자신을 정리 
「4·3 사건」적는다

 「이카이노(있어 보람의) 시집」등에서 알려진 재일의 시인·긴토키종(킴시젼)씨(86)=사진=가, 회상록 「조선과 일본에 산다」(이와나미 신서)을 간행해,
한국·제주도(제주도)에서 1948년에 일어난 「4·3 사건」이라는 관계를 엮었다.

 「고난의 고향을버려 도망친 것은 일생의 빚」이라고 길게 침묵해 왔지만, 그 체험은 김씨의 요행도 없는“시의 있는 곳”이기도 하다.

 4·3 사건은, 동년 4월 3일의 반체제파 탄압 사건.남북 분단의 고정화로 연결되는 남조선의 단독 선거를 저지하려고, 민중이 무장 봉기 해, 군이나 경찰의 진압 부대에 수만인이 살해당했다.

19세의 김씨는, 무장대를 인솔한 남조선노동당의 일원이었다.습격처의 우체국에서는, 동지가 눈앞에서 카빈총으로 총격당해 스스로도 쫓기는 몸이 되었다.다음 해 5월, 일본행의 밀항선에 탑승해, 오사카·이쿠노의 코리안 타운에 도착했다.


 〈봄은 상의 계절입니다./소(봐가 ) 꽃은 나무개로/야산에 검은 일로 하자.(략)/나는 한 개의 진달래의 꽃을/가슴에 장식할 생각으로 있습니다./포탄의 움푹한 곳에 핀 검은 꽃입니다.〉 55년에 낸 제1 시집 「지평선」에서 초토화한 고향을 애도했지만,스스로의 관여에는 접하지 않았다.「군사 정권하의 한국에 강제송환 되면, 사건의 잔당이라고 하는 것으로 우선 생명은 없었다 할까들 」.
일본에 온 이유는 「부득이한 사정」이라고 한 채로였지만, 없는 시인의 말로 「재일」을 사는 의미를 파악해 왔다.「그렇지 않으면 민족 의식에 눈을 뜬 것도, 사건에 관련된 것도, 자신에게 있어서 무슨 연고도 아니게 된다.공허해.안 사람이, 모르는 형태는 잡히지 않아」

빨리 모국에 돌아가라 www5: <주`∀′>(′·ω·`)(`하′  )씨@\(^o^)/ 2015/04/10(금) 20:18:19.34 ID:Y1fZPoDi.net그리고 도와 준 일본에 강제 연행되었다고 주장
쓰레기안의 쓰레기
167: <주`∀′>(′·ω·`)(`하′  )씨@\(^o^)/ 2015/04/10(금) 20:52:06.42 ID:OWvjFhtw.net>>5
정말.
정직하게 살아 있으면 재일에는 다른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39: <주`∀′>(′·ω·`)(`하′  )씨@\(^o^)/ 2015/04/10(금) 20:28:51.02 ID:/hWw6U5t.net>>5

이것.
제주도 출신의 재일은 남정 정부의 학살로부터 피하고 일본에 왔는데,
강제 연행되었다든가 거짓말 하고 일본에 눌러 앉아,
반일 섬쿠리노은혜를 원수로 돌려주는 쓰레기모두.



45: <주`∀′>(′·ω·`)(`하′  )씨@\(^o^)/ 2015/04/10(금) 20:30:31.40 ID:qeiztcYt.net이것보도연맹 사건으로 무서워졌기 때문에 일본에 밀입국해 와도 일?
55: <주`∀′>(′·ω·`)(`하′  )씨@\(^o^)/ 2015/04/10(금) 20:32:43.46 ID:ONHvqU20.net>>45
×무서워졌기 때문에
○무장 게릴라의 일원으로서 당연하게 당시의 정부에 살해당해 걸쳤기 때문에

>무장대를 인솔한 남조선노동당의 일원이었던


제주도4·3 사건

이미지


いいね・コメントにはログインが必要です。

コメント ( 2 )

投稿一覧

2,811,753

  1. KO 255 gomtangi
  2. 1 閲覧数 : 405
    JA 255 千鳥足96
  3. JA 255 peacebridge
  4. JA 255 bluebluebluu
  5. KO 255 pplive1234
  6. JA 255 あかさたなはまやら
  7. JA 255 wipe02
  8. JA 255 uenomuxo
  9. JA 255 saki23
  10. JA 255 uenomuxo
  11. JA 255 ミミ7
  12. JA 255 あかさたなはまやら
  13. KO 255 gomtangi
  14. 閲覧数 : 133
    KO 255 gomtangi
  15. 閲覧数 : 145
    KO 255 Member_55611
  16. KO 255 잽랜드倭박멸
  17. KO 255 gomtangi
  18. KO 255 Member_55611
  19. JA 255 ドンガ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