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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中には負けても、韓国だけには負けない」ネトウヨを突き動かす情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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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ネトウヨ」はどのようにして生まれたのか。憲政史家の倉山満氏は「ソ連が健在だった時代には『保守』は反撃の手段が無きに等しかった。しかし、インターネットの普及とともに武器を得た。そこに民主党政権の失態という“神風”が吹いた」という――。

※本稿は、倉山満『保守とネトウヨの近現代史』(扶桑社新書)の一部を再編集したものです。


■「ネットでウヨクっぽい言動を撒き散らす輩」

「保守」が期待をかけた第1次安倍政権は、1年であっさりと退陣に追い込まれた。最後は多くの「保守」言論人が、安倍政権に批判的となった。


政権は1年で交代し、福田康夫内閣を経て麻生太郎が総理の座に就く。麻生は、リーマンショックの不手際や、「踏襲」のような初歩的な漢字の読み間違えやカップラーメンの値段を「400円」と頓珍漢な金額を答えるなどの醜態が祟り、マスコミの好餌となった。


こうした中、「保守」の一部が「俺たちの麻生」と麻生擁護の論陣を張る。すなわち、「麻生内閣は、麻生首相が愛国者だったからこそマスコミの偏向報道により潰されたのであり、ネットで真実を知った草の根の我々が応援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の主張である。


マスコミは嘘つきであり、敵である。敵であるマスコミが麻生を叩いた。ということは、麻生は我々の味方である。こうした意見はインターネットで急速に拡散されていく。


こうした論理を主張する人々は、いつしか蔑みを込めて「ネトウヨ」と呼ばれた。「インターネットでウヨクっぽい言動を撒き散らす輩」の略称である。



■“神風”となった民主党政権の失態

ただし、ここまでの歴史を追えばわかるように、「ネトウヨ」は必ずしもサイバー空間だけに生息しているのではない。


チャンネル桜自体が初めからインターネット放送を行っていたのではなく、社会状況を見て手を伸ばしただけである。また、チャンネル桜の主活動の一つがデモや街宣、その他のリアルでの活動である。


ここで注目すべきは、「ネトウヨ」と呼ばれた人たちは、自分たちを社会の多数派とは思ってはいない。むしろ昭和以来の少数派の意識を引きずり、多数派であるマスコミへの憎悪を駆り立てた。「ネトウヨ」はマスコミに対し、「マスゴミ」とレッテルを貼り返す。


ソ連が健在だった時代、テレビ・新聞・雑誌・書籍の各メディアで「保守」は反撃の手段が無きに等しかったが、インターネットの普及とともに武器を得た。


そこに“神風”が吹いた。


民主党政権の失態である。圧倒的多数の国民の期待を背負って成立した鳩山由紀夫内閣には、政権担当能力が欠如していた。そもそも民主党は、「政権交代」だけを旗印に結集した野合政党である。


特にその後のビジョンも無く、官僚機構の協力も得られないまま迷走した。景気対策でも明確な成果を出せなかった。そして「外国人地方参政権」を言い出す。


ここに民主党に投票した普通の人が、「保守」「ネトウヨ」に大量流入した。民主党が主張した外国人地方参政権の主な対象は、在日韓国人である。


ソ連崩壊後も、「保守」はアメリカや中国に複雑な思い(コンプレックス)を抱き続けてきたが、解消する方法を自分では見つけられなかった。だが、民主党批判はバブルの如く膨れ上がる。そこに韓国批判が加わった。


■くすぶり続けた韓国への怨念

底流は、あった。


戦後日本の言論空間で、韓国は軍国主義の象徴の如く扱われていた。朴正煕(1961~79年)と全斗煥(1980~88年)の軍事政権が長く続いたからだった。北朝鮮が「地上の楽園」と賞賛されたのと対である。


それが冷戦終結で「民主化」が進むにつれ、対決姿勢は薄れ韓国自体が容北と化していく。韓国の容北と歩を一にするように、韓流ブームが発生する。そして、2002年に金正日が拉致を認めてからは、さすがに北朝鮮賛美の言論は影を潜めた。


2004(平成16)年にNHKが韓流ドラマ『冬のソナタ』を放映、ブームを起こす。冬ソナに代表される韓流ブームは、韓国のコンテンツ・ダンピングによって起こった。日本のテレビ局は自前で作るより安上がりな韓国ドラマを安く買って放送していた頃だ。この頃になると朝日新聞の韓国批判など、完全に過去の遺物と忘れられていた。



一方で、普通の人も含めて日本人には韓国への怨念はくすぶり続けていた。


明確な契機は、日韓共催FIFAワールドカップだ。共催の決定は1996年、2002年に開催された。サッカーファンは、「スポーツナショナリスト」「4年に一度の愛国者」などと自嘲するのが普通だが、日韓共催はその普通の人をも怒らせた。


■嫌韓本とチャンネル桜

そもそも日本単独開催で本決まりであったし、実際に開催された際の韓国のマナーの悪さも反感に拍車をかけた。だが受け皿はなく、反韓は明確な勢力にはなっていない。


それでも、単発的な動きは存在した。


例として、韓国生まれの日本学者である著者による、呉善花『私はいかにして「日本信徒」となったか』(PHP研究所、1999年)や、全4巻を数え、32万部の大ベストセラーとなった山野車輪『マンガ嫌韓流』(晋遊舎、2005年)などが挙げられる。


呉は「PHP文化人」の傾向が強く「保守」とは言い難いが、韓国出身者の韓国批判本を書いたことで、「保守」「ネトウヨ」からも尊敬を受けている。『マンガ 嫌韓流』は一大ブームを起こしたが、山野はプロとしての活動が活発ではなく、「保守」「ネトウヨ」のメインストリームとは言い難い。


朝日新聞が親韓に傾斜するにつれ、「保守」の側で韓国への反感が強まる。そうした潮流が爆発し、受け皿となったのがチャンネル桜である。


水島は韓流ドラマを放送するフジテレビを左翼だとして敵視し、2011年には突然としてフジテレビにデモを仕掛けた。言うまでもなく、フジテレビは「保守」にとっては味方のはずである。だが、「保守」は論理で生きているのではない。情緒で動くのだ。


これでチャンネル桜は支持者を増やしたのだから、商売として成功との評価もできる。


■ノイジーマイノリティー、変質した「ネトウヨ」

21世紀になっても「保守」は単なるサイレントマイノリティーだったが、今や平成の「ネトウヨ」はノイジーマイノリティーにまで成長した。そして、かつての昭和の「保守」とは明らかに変質する。


長らく「保守」は、朝日新聞に代表されるマスコミに弾圧されてきた。少なくとも、彼らの被害者意識は強い。そこに民主党政権が外国人参政権、つまり在日韓国人に特権を与えようとしていると感じた。これは「在日特権」と呼ばれる。


結果、「ネトウヨ」の3大標的となったのが、朝日新聞と民主党と韓国である。


一時期、嫌韓本ブームが発生した。「韓国の悪口さえ書けば何でも売れる」という時代である。出版超不況に、「超」がいくつ付くかわからないほどの慢性的な不況と化した出版界は、飛びついた。売れた理由は、コンプレックスに訴えかけたからである。



敗戦以来の「保守」は、いくつかの外国に対するコンプレックスにさいなまれた。


第1が、アメリカコンプレックスである。自分たちを戦争で負かし占領し、原爆のような非人道兵器で虐殺までされた。ところが、そのアメリカに国を守ってもらっている。


第2が、ソ連コンプレックスである。これはソ連本国が消えてくれたことで、解消した。


第3が、中国コンプレックスである。アメリカは憎いが、中国につく訳にもいかない。


■「他の誰に負けても、貴様だけには負けない」

ところで米ソ中の共通点は、戦後日本よりも大国なことだ。米中に対しては色々な思いがあるが、現実には大国だからあきらめる。しかし、韓国だけは格下の小国だとの思いが強い。そんな韓国にまで足蹴にされるのは許せない。


「他の誰に負けても、貴様だけには負けない」との情念が嫌韓本ブームの原動力だ。その種の本では、いかに口汚く韓国を罵るかが競われているかのようだが、こうした長く積もった怨念がニーズなのだから、多くの著者は売るためにそれに応えようとしただけだ。


事実関係にこだわらないのも、昭和の「保守」には見られなかった、「ネトウヨ」の特徴だ。「ネトウヨ」は敵対する人物、特に政治家を「在日」認定する。この時代から今に至るまで「韓国人」は罵倒語である。「韓国人のような奴だ」「韓国に奉仕する売国奴だ」の意味に留まらず、本当に「あいつは韓国人だ」と言い出す。


集会で、「民主党の幹部は全員が在日韓国人」と書かれたビラがまかれるのも、日常茶飯事だった。こうした中傷に業を煮やした土井たか子や福島瑞穂は裁判に訴え、それぞれ2009年と2019年に名誉毀損の裁判に完全勝利している。


だが、それくらいでひるむようでは「保守」「ネトウヨ」ではない。


東京都知事選では、対立候補となった細川護熙を「在日」呼ばわりした。さすがに、細川はたいていの日本人より名門であるので「保守」「ネトウヨ」も、細川が在日ではないと認めたが、そうなると自分が細川を在日認定した事実を忘れるだけである。



■民主党政権を養分にした「ネトウヨ」

鳩山由紀夫内閣は、外国人参政権法案を通せなかった。それどころか、内閣は与党内の権力闘争で自壊する。内閣を継いだ菅直人は参議院選挙で完敗し、ねじれ国会で苦しめられ何もできない。そうしたところに東日本大震災が重なり、惨状と化した。


「史上最悪の民主党政権」の記憶を、多くの日本人に残した。


チャンネル桜は、ほぼ毎日、民主党への罵倒を続けた。『正論』『WiLL』のような、「保守」系雑誌も同一論調である。『正論』『WiLL』の執筆者がチャンネル桜に出演するようになり、業界全体が勢いづいた。


何のことはない。あまりにも無能な民主党政権が、チャンネル桜に代表される「ネトウヨ」を生み出したの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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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에는 져도, 한국에만은 지지 않는다」네트우요를 자극을 주는 정념


「네트우요」는 어떻게 해 태어났는가.헌정 역사가 창산 미츠루씨는 「소련이 건재했던 시대에는 「보수」는 반격의 수단이 없는 것에 동일했다.그러나,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무기를 얻었다.거기에 민주당 정권의 실태라고 하는“카미카제”가 불었다」라고 한다--.

※본고는, 창산만 「보수와 네트우요의 근현대사」(후요사 신서)의 일부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넷에서 우요크 같은 언동을 마구 뿌리는 배」

「보수」가 기대를 건 제1차 아베 정권은, 1년에 시원스럽게 퇴진에 몰렸다.최후는 많은 「보수」언론인이, 아베 정권에 비판적이 되었다.


정권은 1년에 교대해, 후쿠다 야스오 내각을 거쳐 아소우 타로가 총리의 자리에 든다.아자부는, 리만손크의 서툰 솜씨나, 「답습」과 같은 초보적인 한자의 잘못 읽어 나 컵라면의 가격을 「400엔」이라고 종잡을 수 없는 금액을 대답하는 등의 추태수, 매스컴의 좋은 미끼가 되었다.


이러한 중, 「보수」의 일부가 「우리들 아자부」라고 아자부 옹호의 논진을 친다.즉, 「아자부 내각은, 아소우 수상이 애국자?`세로부터야말로 매스컴의 편향 보도에 의해 잡아진 것이어, 넷에서 진실을 안 풀뿌리의 우리가 응원해야 한다」라는 주장이다.


매스컴은 거짓말쟁이이며, 적이다.적인 매스컴이 아자부를 두드렸다.그 말은, 아자부는 우리의 아군이다.이러한 의견은 인터넷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간다.


이러한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느덧 업신여김을 담아 「네트우요」라고 불렸다.「인터넷으로 우요크 같은 언동을 마구 뿌리는 배」의 약칭이다.



■“카미카제”가 된 민주당 정권의 실태

다만, 여기까지의 역사를 쫓으면 알도록(듯이), 「네트우요」는 반드시 사이버 공간에만 생식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채널벚꽃 자체가 처음부터 인터넷 방송을 실시하고 있던 것은 아니고, 사회 상황을 보고 손을 뻗은 것만으로 있다.또, 채널벚꽃의 주활동의 하나가 데모나 가선, 그 외의 리얼하고의 활동이다.


여기서 주목 해야 할 것은, 「네트우요」라고 불린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회의 다수파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오히려 쇼와 이래의 소수파의 의식을 질질 끌어, 다수파에서 ?`역}스코미에의 증오를 몰아냈다.「네트우요」는 매스컴에 대해, 「매스 쓰레기」라고 평가를 받아 돌려준다.


소련이 건재했던 시대, 텔레비전·신문·잡지·서적의 각 미디어로 「보수」는 반격의 수단이 없는 것에 동일했지만,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무기를 얻었다.


거기에“카미카제”가 불었다.


민주당 정권의 실태이다.압도적 다수의 국민의 기대를 짊어져 성립한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는, 정권 담당 능력이 결여 하고 있었다.원래 민주당은, 「정권 교대」만을 기치에 결집한 야합 정당이다.


특히 그 후의 비전도 없고, 관료 기구의 협력도 얻을 수 없는 채 미주했다.경기대책에서도 명확한 성과를 낼 수 없었다.그리고 「외국인 지방 참정권」을 말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민주당에 투표한 보통 사람이, 「보수」 「네트우요」에 대량 유입했다.민주당이 주장한 외국인 지방 참정권의 주된 대상은, 재일 한국인이다.


소련 붕괴 후도, 「보수」는 미국이나 중국에 복잡한 생각(컴플렉스)을 계속 안아 왔지만, 해소하는 방법을 스스로는 찾아낼 수 없었다.하지만, 민주당 비판은 버블 (와) 같이 부풀어 오른다.?`아에 한국 비판이 더해졌다.


■계속 피어오른 한국에의 원한

저류는, 있었다.


전후 일본의 언론 공간에서, 한국은 군국주의의 상징 (와) 같이 다루어지고 있었다.박정희(1961~79해)와 전두환(1980~88해)의 군사 정권이 길게 계속 되었기 때문이었다.북한이 「지상의 낙원」이라고 칭찬된 것과 대이다.


그것이 냉전 종결로 「민주화」가 진행되는 것에 따라, 대결 자세는 희박해짐 한국 자체가 용북화해 간다.한국의 용북과 보를 1으로 하도록(듯이), 한류붐이 발생한다.그리고, 2002년에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하고 나서는, 과연 북한 찬미의 언론은 그림자를 감추었다.


2004(헤세이 16) 년에 NHK가 한류드라마 「 겨울의 소나타」를 방영, 붐을 일으킨다.동 소나로 대표되는 한류붐은, 한국의 컨텐츠·덤핑에 의해서 일어났다.일본의 텔레비전국은 자기 부담으로 만드는 것보다 싸게 든 한국 드라마를 싸게 사 방송하고 있었을 무렵이다.요즘이 된다고 아사히 신문의 한국 비판 등, 완전하게 과거의 유물과 잊을 수 있고 있었다.



한편, 보통 사람도 포함해 일본인에게는 한국에의 원한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명확한 계기는, 일한 공동개최 FIFA 워르드카 프다.공동개최의 결정은 1996년, 2002년에 개최되었다.축구 팬은, 「스포츠 내셔널리스트」 「 4년에 한번 있는 애국자」등과 자조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한 공동개최는 그 보통 사람도 화나게 했다.


■혐한본과 채널벚꽃

원래 일본 단독 개최로 결정이었고, 실제로 개최되었을 때의 한국의 매너의 나쁨도 반감에 박차를 가했다.하지만 인수태세는 없고, 반한은 명확한 세력으로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단발적인 움직임은 존재했다.


예로서 한국 태생의 일본 학자인 저자에 의한, 오선화 「 나는 어떻게 「일본 신도」가 되었는지」(PHP 연구소, 1999년)이나, 전4권을 세어 32만부의 대베스트셀러가 된 야마노 차바퀴 「만화혐한류」(진유사, 2005년)등을 들 수 있다.


오는 「PHP 문화인」의 경향이 강하고 「보수」란 말하기 어렵지만, 한국 출신자의 한국 비판책을 쓴 것으로, 「보수」 「네트우요」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다.「만화혐한류」는 일대 붐을 일으켰지만, 야마노는 프로로서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고, 「보수」 「네트우요」의 메인 스트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아사히 신문이 친한국에 경사하는?`노 따라 「보수」의 옆에서 한국에의 반감이 강해진다.그러한 조류가 폭발해, 인수태세가 된 것이 채널벚꽃이다.


미즈시마는 한류드라마를 방송하는 후지텔레비를 좌익이라고 해 적대시해, 2011년에는 갑자기 후지텔레비에 데모를 걸었다.말할 필요도 없이, 후지텔레비는 「보수」에 있어서는 아군일 것이다.하지만, 「보수」는 논리로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정서로 움직인다.


이것으로 채널벚꽃은 지지자를 늘렸으니까, 장사로서 성공이라는 평가도 할 수 있다.


■의견을 달리하는 집단, 변질한 「네트우요」

21 세기가 되어도 「보수」는 단순한 사일런트 마이노리티였지만, 지금 헤세이의 「네트우요」는 의견을 달리하는 집단에게까지 성장했다.그리고, 한 때의 쇼와의 「보수」란 분명하게 변질한다.


오랫동안 「보수」는, 아사히 신문으로 대표되는 매스컴에 탄압되어 왔다.적어도, 그들의 피해자 의식은 강하다.거기에 민주당 정권이 외국인 참정권, 즉 재일 한국인에 특권을 주려 하고 있다고 느꼈다.이것은 「재일 특권」이라고 불린다.


결과, 「네트우요」의 3대표적이 된 것이, 아사히 신문과 모`주당과 한국이다.


한시기, 혐한본붐이 발생했다.「한국의 욕만 쓰면 뭐든지 팔린다」라고 하는 시대이다.출판초불황에, 「초」가 몇 개 붙을지 모를 만큼의 만성적인 불황화한 출판계는, 달려들었다.팔린 이유는, 컴플렉스에 호소했기 때문에이다.



패전 이래의 「보수」는, 몇개의 외국에 대한 컴플렉스에 괴롭혀졌다.


제1이, 미국 컴플렉스이다.스스로를 전쟁으로 이겨 점령해, 원폭과 같은 사람축에 들지 못한 사람도 병기로 학살까지 되었다.그런데 , 그 미국에 나라를 지켜 주고 있다.


제2가, 소련 컴플렉스이다.이것은 소련 본국이 사라져 준 것으로, 해소했다.


제3이, 중국 컴플렉스이다.미국은 밉지만, 중국에 도착하는 것도 없다.


■「다른 누구에게 져도, 당신에게만은 지지 않는다」

곳에서 미소중의 공통점은, 전후 일본보다 대국인 일이다.미 중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이 있다가, 현실에는 대국이니까 포기한다.그러나, 한국만은 격하의 오구니라는 생각이 강하다.그런 한국에까지 발길질로 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다른 누구에게 져도, 당신에게만은 지지 않는다」라는 정념이 혐한본붐의 원동력이다.그 종의 책에서는, 얼마나 입이 더럽게 한국을 매도할지가 겨루어지고 있을까의 같지만, 이러한 길게 쌓인 원한이 요구이기 때문에, 많은 저자는 팔기 위해서 거기에 응하려고 했을 뿐이다.


사실 관계를 고집하지 않는 것도, 쇼와의 「보수」에는 볼 수 없었다, 「네트우요」의 특징이다.「네트우요」는 적대하는 인물, 특히 정치가를 「재일」인정한다.이 시대부터 곧 도달할 때까지 「한국인」은 매도어이다.「한국인과 같은 놈이다」 「한국에 봉사하는 매국노다」의 의미에 머물지 않고, 정말로 「저녀석은 한국인이다」라고 하기 시작한다.


집회에서, 「민주당의 간부는 전원이 재일 한국인」이라고 쓰여진 빌라가 뿌려지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이러한 중상에 화가 치민 도이 타카코나 후쿠시마 미즈호는 재판에 호소해 각각 2009년과 2019년에 명예 훼손의 재판에 완전 승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같은 것은 「보수」 「네트우요」는 아니다.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는, 대립 후보가 된 호소카와호희를 「재일」불렀다.과연, 호소카와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보다 명문이므로 「보수」 「네트우요」도, 호소카와가 재일은 아니라고 인정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호소카와를 재일 인정한 사실을 잊는 것만으로 있다.



■민주당 정권을 양분으로 한 「네트우요」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외국인 참정권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었다.그 뿐만 아니라, 내각은 여당내의 권력 투쟁으로 자괴 한다.내각을 이은 칸 나오토는 참의원 선거로 완패해, 뒤틀림 국회에서 괴롭힘을 당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그러한 곳에 동일본 대지진이 겹쳐, 참상화했다.


「사상 최악의 민주당 정권」의 기억을, 많은 일본인에 남겼다.


채널벚꽃은, 거의 매일, 민주당에의 매도를 계속했다.「정론」 「WiLL」와 같은, 「보수」계 잡지도 동일 논조이다.「정론」 「WiLL」의 집필자가 채널벚꽃에 출연하게 되어, 업계 전체가 힘이 났다.


무슨 것은 없다.너무 무능한 민주당 정권이, 채널벚꽃으로 대표되는 「네트우요」를 낳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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