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列島, 荒れ地になった首都]
1945年 7月 16日. アメリカロスアラーモールス(Los Alamos)で人類最初のアトミックボム実験が成功裏に終わる.
そして十日後人 7月 26日にはアメリカ, イギリス, 中国, ソ連など 4ヶ国首脳がドイツポツダムで集まって日本の降参条件と日本占領地の処理に関して論議したポツダム宣言(Potsdam Declaration)を発表した.
が席で降参条件は帝国主義的指導勢力の除去, 戦争犯罪者の処罰, 連合国の日本支配, 日本領土制限, 徹底的な民主化などに規定されたが当時日本総理であるSuzukiカンタで(鈴木 貫太
原子爆弾被爆も神さまの祝福?
閲覧数 : 134
KO
0
Member_65530
2,811,753
原文を見る
원자탄 피폭도 신의 축복?
[일본 열도, 황무지 됐을 수도]
1945년 7월 16일. 미국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에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리에 끝난다.
그리고 열흘 후인 7월 26일에는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4개국 수뇌가 독일 포츠담에서 모여 일본의 항복 조건과 일본 점령지의 처리에 관해 논의한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항복 조건은 제국주의적 지도 세력의 제거, 전쟁 범죄자의 처벌, 연합국의 일본 지배, 일본 영토 제한, 철저한 민주화 등으로 규정되었지만 당시 일본 총리인 스즈키 칸타로(鈴木 貫太郎)는 7월 28일의 성명을 통해 포츠담 선언을 묵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 미국에게 원폭 이외에 더 나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원폭을 사용하지 않으면 미국인 수십만명과 일본인 수백만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본토 상륙전을 벌여야 했다.
결국 8월 6일 티니안 섬에 주둔해 있던 제509 혼성항공단 소속 B-29 ‘에놀라 게이’(Enola Gay)호가 폴 티베츠(Paul Tibbets) 대령의 조종으로 비행, 일본 제2군사령부가 위치한 히로시마에 15킬로톤급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투하한다.
히로시마는 완파되었고, 일본의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그들의 반응은 미약했다.
아무도 항복하려 들지 않았고 심지어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저런 무기를 2발 이상 갖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첫 원폭을 맞았음에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결국 8월 9일 나가사키에도 21킬로톤급 원자탄 패트 맨(Fat Man)을 투하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납득한 일본 천황과 대신들은 포츠담 선언의 요구사항을 수락하고,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물론 원자폭탄이 수십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전후 미소간 전면 핵전쟁 위협으로 상징되는 어두운 냉전시대를 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원폭이 사용되지 않았더라면 두 번에 걸친 일본 본토 상륙전과 무차별적으로 전개될 화생방전으로 인해 일본 열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죽어간 일본인 1명은 수백명 이상의 동포 목숨을 구한 셈이 된다.
이런 것이 아마도 역사의 비정한 산술이자 아이러니라고 할 것이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에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리에 끝난다.
그리고 열흘 후인 7월 26일에는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4개국 수뇌가 독일 포츠담에서 모여 일본의 항복 조건과 일본 점령지의 처리에 관해 논의한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항복 조건은 제국주의적 지도 세력의 제거, 전쟁 범죄자의 처벌, 연합국의 일본 지배, 일본 영토 제한, 철저한 민주화 등으로 규정되었지만 당시 일본 총리인 스즈키 칸타로(鈴木 貫太郎)는 7월 28일의 성명을 통해 포츠담 선언을 묵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 미국에게 원폭 이외에 더 나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원폭을 사용하지 않으면 미국인 수십만명과 일본인 수백만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본토 상륙전을 벌여야 했다.
결국 8월 6일 티니안 섬에 주둔해 있던 제509 혼성항공단 소속 B-29 ‘에놀라 게이’(Enola Gay)호가 폴 티베츠(Paul Tibbets) 대령의 조종으로 비행, 일본 제2군사령부가 위치한 히로시마에 15킬로톤급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투하한다.
히로시마는 완파되었고, 일본의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그들의 반응은 미약했다.
아무도 항복하려 들지 않았고 심지어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저런 무기를 2발 이상 갖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첫 원폭을 맞았음에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결국 8월 9일 나가사키에도 21킬로톤급 원자탄 패트 맨(Fat Man)을 투하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납득한 일본 천황과 대신들은 포츠담 선언의 요구사항을 수락하고,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물론 원자폭탄이 수십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전후 미소간 전면 핵전쟁 위협으로 상징되는 어두운 냉전시대를 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원폭이 사용되지 않았더라면 두 번에 걸친 일본 본토 상륙전과 무차별적으로 전개될 화생방전으로 인해 일본 열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죽어간 일본인 1명은 수백명 이상의 동포 목숨을 구한 셈이 된다.
이런 것이 아마도 역사의 비정한 산술이자 아이러니라고 할 것이다.
いいね・コメントにはログインが必要です。
コメント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