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インへ

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満州族と韓民族は事実上みたいな根

閲覧数 : 410
KO 255 찰리신 2,811,753
[世界日報] 2010年 05月 21日(金) 午後 05:24 | 共有すること が  街| 電子メール| プリント 満州族, 渤海基盤で金・清国建設
金太祖新羅である… 清詩調白頭山と連関
中 ‘東北公正’に対応することができる論理


“高句麗悠長テゾヨンが建国した海東盛国渤海が高句麗の後裔というのは皆が分かる事実です. ところで満州族が立てた禁果清国が渤海を基盤としていて結局満州族と私たちの韓民族は同じ根という事実が 18世紀後半青衣 6台高宗(ゴンリュングゼ)が発行した四書に明確に記録されています. 高麗と朝鮮が禁果請いから侵略された事実は恥辱だけで把握することではなく同じ民族政治支配集団の間の争うことで再照明されるべきです. まるで古代三国の定立と今の南・北が対立することと同じ概念ですね.”
欽定満洲源流で/ナムズソング力著/李ビョンジュ甘受/グルモアツルパン/3万9000ウォン

ナムズソング力著/李ビョンジュ甘受/グルモアツルパン/3万9000ウォンこれくらいなら国内情事学界では ‘詭弁’と寄せつけることもできる. 特に ‘東北公正’という歴史歪曲作業で高句麗と渤海を唐依支配を受ける地方政権で遁甲させた中国史学係では一顧の価値もない ‘でたらめ学説’と捐下するでしょう. しかし 220余年の前中国を平定した青衣皇帝が発行した四書にはこんな内容が確かに適時されている. 禁果清がどんな国か. うちの先祖たちが馬鹿にした蛮夷たちだ. 蛮夷と言う(のは) 漢族(漢族)が周辺国たちを軽んじて無視する用語で, 中華思想に濡れた朝鮮朝士大夫たちがそのまま書き取った低級な言葉だ. 中国の古代四書たちが私たちの韓民族を東夷族蛮夷で指摘することとようだ.

古代史を研究する現職公務員であるナムズソングシ(監査院特別調査課長)がこんな内容を記した ‘欽定満洲源流で(欽定満洲源流考)を解釈, 原文と注釈をつけることは力著書を発行した. ‘欽定’は皇帝が直接編纂したという意味だ. この暮してはゴンリュングゼが自分の先祖である満州族の根を定立して漢族を圧するために翰林院学者 30人余りを動員して, 詐欺, 後漢書, 三国志, 旧唐書, 新党でなど中国の情事と使臣たちの記録, 地理誌などを抜粹して 2年余の検証作業を通して編纂したのだ.

◇この指導は力著者が四書を参照して再構成したことで, 高句麗興盛期と高句麗滅亡以後の国家間境界が確かに仕分けされている.
グルモアツルパンサ提供翻訳に 2年がかかったと言ったナムシは “特に高句麗と渤海を漢族の地方政権で遁甲させた中国の学者たちに歴史的事実たちを体系的に立証させれば減らず口主張ができないだろう. 現在中国側学者たちはこの四書の存在を骨切って無視している. 私たち情事学界も満州族を研究した記録たちが不実なわけで中国の東北公正にまともに対応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指摘した. この暮しては中国のグックゴングネゾン当時 張介石 政権が台湾に敗退しながら搬出して台湾タイベイ古宮博物館に保管中の ‘ムンヨンガックボン四庫全書’の一つで, ナムシはこの四書の影印本を手に入れて上・下券二冊で翻訳した.

が力著書を甘受した中国史学会名誉会長 李ビョンジュ 博士( 75・ 嶺南大教授)は “満洲政権が作ったこの暮しては高句麗百済新羅渤海など私たち古代史を研究するのに非常に有用な四書だが, その間うちの先輩史学者たちは日本殖民史学者たちから教育受けた影響で満州族の自主意識を鼓吹しているこの四書を疎かに扱って来た”と明らかにした. その縁由に対してこの教授は “歴史的事実たちを歪曲して記録した中国四書たちが長年の期間我が学界で古代史研究の基本史料になって来た. 現満洲地域は 17世紀初まで漢族支配ヤングトバックの地域で, 漢族が高句麗, 渤海金, 清などとの対決で失敗を繰り返えした地だ. 中国が自国と係わる部分は儒・吹くわけ定規で裁断と歪曲させたが, 私たち史学係はこれを土台としている. 例えば後漢書には付与と高句麗を低級な卑劣な言葉で表記しておいたし, 旧唐書と新党書では当太宗二世民がANSI城主梁マンチュンがうった矢先の毒で死亡したのではなく風邪で命を失ったと歪曲しておいている”と言った.

◇18世紀中原を制覇した清の領土を現わした ‘テチョン光でも(大清広与図)’. 青衣ガングフィ(康煕)私のの時学者採訪病(蔡方炳)がグリーン原図に 1785年日本のナがクボセキスイ(長久保赤水・1717〜1801)が校正した中国前途だ. 欽定満洲源流高は請いゴンリュングゼの人で 1777年翰林院で満洲を中心に明滅した多くの不足の歴史, 彊域, 山河, 風俗などを集大成したし, この指導は当時の歴史的事実を証拠している. 右側上端が搖れ半島でその下側が山東地域だ.
グルモアツルパン提供本には渤海と金に係わる記録たちが一番多く言及されている. 高句麗滅亡以後勃興した渤海はテゾヨンと高句麗流民, 旺歪族などが建国したが, 旺歪族も高句麗の一不足だ. 旺歪は当太宗が攻め寄せた時高句麗・旺歪連合軍 15万名余を動員してANSI性を助けた事実も出る. 梁マンチュンは性内で, 高句麗長寿故研修は性外で唐軍と対抗した. ナムシは “四書では渤海太祖テゾヨンがどんなに建国したのかと渤海と錦衣関連性を言及しておいている. 渤海が錦衣先祖だからだ. したがって高麗と金, 朝鮮と清が対立したことは高句麗と百済新羅が同じ民族ながら対立したことと同じ脈絡で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 言い換えれば政治支配集団間の対立で把握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った. 特に金太祖が新羅出身貴族金韓宝という内容(商圏 266ページ)が記録されたことは初めてだ. 引き続き金が モンゴル 侵略で亡びた以後搖り返し族が請いを建国したし搖り返し族の根も旺歪人だ. 本では青太組ヌルハチは鴨緑江近所遼寧省シンビンヒョンの建株であられた不足場出身なのに, ヌルハチの先祖は白頭山池で天使が下ってくれた果物を食べて生まれたという白頭山神話を書いている. 清の発源地代白頭山というのは韓民族のような系統という意味だ.

ナムシは “今も中国史学者たちは請いに対する反発心が非常に強くて金, 清と私たちの韓民族間の歴史的な淵源を否定している”と “もし満州族と韓民族が同じ種族で確認されたら, 今の東北の方地方に民族意識が芽ぐみながら中国が分裂される結果をもたらすこともできて, 中国政府が東北公正という歴史歪曲作業を進行させている”と言った. 今中国の行動は過去日本侵略者たちが日本を中心に東アジアが一国家で団結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いわゆる ‘大東亜共栄圏’と言う(のは)侵略論理のようだとナムシは指摘する. 彼は満洲を支配した日本もこんな理由にこの四書を骨切ってそっぽを向いたことと言いながら, この際満州族研究と係わって史学係の真摯な論議が必要だと言った.

ゾングスングウック先任記者 jswook@segye.com
原文を見る

만주족과 한민족은 사실상 같은 뿌리

[세계일보] 2010년 05월 21일(금) 오후 05:24 | 공유하기 가  가| 이메일| 프린트 만주족, 발해 기반으로 금·청국 건설
금 태조 신라인… 청 시조 백두산과 연관
中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논리


“고구려 유장 대조영이 건국한 해동성국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만주족이 세운 금과 청국이 발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결국 만주족과 우리 한민족은 같은 뿌리라는 사실이 18세기 후반 청의 6대 고종(건륭제)이 펴낸 사서에 명확히 기록돼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이 금과 청으로부터 침략당한 사실은 치욕으로만 파악할게 아니라 같은 민족 정치지배 집단 간의 다툼으로 재조명돼야 마땅합니다. 마치 고대 삼국의 정립과 지금의 남·북이 대립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지요.”
흠정만주원류고/남주성 역저/이병주 감수/글모아출판/3만9000원

남주성 역저/이병주 감수/글모아출판/3만9000원이쯤되면 국내 정사학계에서는 ‘궤변’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다. 특히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왜곡 작업으로 고구려와 발해를 당의 지배를 받는 지방 정권으로 둔갑시킨 중국 사학계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엉터리 학설’이라고 폄하할 것이다. 그러나 220여년 전 중국을 평정한 청의 황제가 펴낸 사서에는 이런 내용들이 분명히 적시돼 있다. 금과 청이 어떤 나라인가. 우리 선조들이 업신여겼던 오랑캐들이다. 오랑캐란 漢族(한족)이 주변국들을 얕보고 무시하는 용어로, 중화 사상에 젖었던 조선조 사대부들이 그대로 받아쓴 저급한 말이다. 중국의 고대 사서들이 우리 한민족을 동이족 오랑캐로 적시하는 것과 같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현직 공무원인 남주성씨(감사원 특별조사과장)가 이런 내용을 담은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를 해석, 원문과 주석을 담은 역저서를 펴냈다. ‘흠정’은 황제가 직접 편찬했다는 의미다. 이 사서는 건륭제가 자신의 조상인 만주족의 뿌리를 정립하고 한족을 제압하기 위해 한림원 학자 30여명을 동원해, 사기, 후한서, 삼국지, 구당서, 신당서 등 중국의 정사와 사신들의 기록, 지리지 등을 발췌해 2년 여의 검증 작업을 거쳐 편찬한 것이다.

◇이 지도는 역저자가 사서를 참조해 재구성한 것으로, 고구려 흥성기와 고구려 멸망 이후의 국가간 경계가 분명히 구분돼 있다.
글모아출판사 제공번역에 2년이 걸렸다고 말한 남씨는 “특히 고구려와 발해를 한족의 지방정권으로 둔갑시킨 중국의 학자들에게 역사적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입증해보이면 억지 주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중국쪽 학자들은 이 사서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우리 정사학계도 만주족을 연구한 기록들이 부실한 까닭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서는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 장제스 정권이 대만으로 패퇴하면서 반출해 대만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인 ‘문연각본 사고전서’의 하나로, 남씨는 이 사서의 영인본을 입수해 상·하권 두권으로 번역했다.

이 역저서를 감수한 중국사학회 명예회장 이병주 박사( 75· 영남대 교수)는 “만주 정권이 만든 이 사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유용한 사서이지만, 그간 우리 선배 사학자들은 일본 식민사학자들로부터 교육받은 영향으로 만주족의 자주 의식을 고취하고 있는 이 사서를 소홀히 다뤄왔다”고 밝혔다. 그 연유에 대해 이 교수는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해 기록한 중국 사서들이 오랜 기간 우리 학계에서 고대사 연구의 기본 사료가 되어왔다. 현 만주지역은 17세기 초까지 한족 지배 영토밖의 지역으로, 한족이 고구려, 발해 금, 청 등과의 대결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땅이다. 중국이 자국과 관련된 부분은 유·불리 잣대로 재단하고 왜곡시켰는데, 우리 사학계는 이를 토대로 하고 있다. 예컨대 후한서에는 부여와 고구려를 저급한 막말로 표기해놓았으며, 구당서와 신당서에서는 당태종 이세민이 안시성주 양만춘이 쏜 화살촉의 독으로 사망한게 아니라 감기로 목숨을 잃었다고 왜곡해놓고 있다”고 했다.

◇18세기 중원을 재패한 청의 영토를 나타낸 ‘대청광여도(大淸廣與圖)’. 청의 강희(康熙)제 때 학자 채방병(蔡方炳)이 그린 원도에 1785년 일본의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1717∼1801)가 교정한 중국 전도이다. 흠정만주원류고는 청 건륭제의 명으로 1777년 한림원에서 만주를 중심으로 명멸한 여러 부족의 역사, 강역, 산천, 풍속 등을 집대성했으며, 이 지도는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증빙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이 요동반도이고 그 아래쪽이 산동지역이다.
글모아출판 제공책에는 발해와 금에 관련된 기록들이 가장 많이 언급돼있다. 고구려 멸망 이후 발흥한 발해는 대조영과 고구려 유민, 말갈족 등이 건국했는데, 말갈족도 고구려의 한 부족이다. 말갈은 당태종이 쳐들어왔을 때 고구려·말갈 연합군 15만여명을 동원해 안시성을 도운 사실도 나온다. 양만춘은 성 내에서, 고구려 장수 고연수는 성 밖에서 당군과 대항했다. 남씨는 “사서에서는 발해 태조 대조영이 어떻게 건국했는지와 발해와 금의 관련성을 언급해놓고 있다. 발해가 금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와 금, 조선과 청이 대립했던 것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같은 민족이면서 대립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한다. 다시 말해 정치 지배 집단간의 대립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금 태조가 신라 출신 귀족 김한보라는 내용(상권 266쪽)이 기록된 것은 처음이다. 이어 금이 몽골 침략으로 망한 이후 여진족이 청을 건국했으며 여진족의 뿌리도 말갈인이다. 책에서는 청태조 누루하치는 압록강 부근 요령성 신빈현의 건주 여진 부족장 출신인데, 누루하치의 선조는 백두산 연못에서 천사가 내려다준 과일을 먹고 태어났다는 백두산 신화를 적고 있다. 청의 발원지가 백두산이라는 것은 한민족과 같은 계통이라는 의미다.

남씨는 “지금도 중국 사학자들은 청에 대한 반발심이 매우 강하며 금, 청과 우리 한민족간의 역사적인 연원을 부정하고 있다”면서 “만일 만주족과 한민족이 같은 종족으로 확인된다면, 지금의 동북쪽 지방에 민족의식이 싹트면서 중국이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왜곡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중국의 행태는 과거 일본 침략자들이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가 한 국가로 뭉쳐야한다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란 침략 논리와 같다고 남씨는 지적한다. 그는 만주를 지배했던 일본도 이런 이유로 이 사서를 애써 외면했던 것이라며, 차제에 만주족 연구와 관련해 사학계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いいね・コメントにはログインが必要です。

コメント ( 4 )

投稿一覧

2,811,753

  1. KO 255 propertyOfJapan
  2. KO 20 Jumong8
  3. KO 255 morort
  4. KO 255 morort
  5. KO 255 morort
  6. JA 255 竹島先住民
  7. KO 255 propertyOfJapan
  8. KO 255 morort
  9. JA 255 竹島先住民
  10. KO 255 amateras16
  11. 閲覧数 : 79
    KO 255 avenger
  12. KO 255 jap6cmwarotaZ
  13. 閲覧数 : 109
    JA 255 milet
  14. KO 255 cris1717
  15. KO 255 amateras16
  16. 5 閲覧数 : 109
    JA 255 dom1domko
  17. 閲覧数 : 89
    JA 255 sonhee123
  18. JA 255 bluebluebluu
  19. KO 255 avenger
  20. KO 255 jap6cmwarot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