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インへ

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日本は韓国を近代化させなかった!!

閲覧数 : 234
KO 255 HiphopLee 2,811,753
植民地を近代化させたのか?
¥"人口増加率¥" 経済成長率¥"¥"文明の低下¥" 虚構

日本の人々は ¥"日帝時代日本人たちが悪いこともしたが朝鮮を近代化シキヌンゴッに貢献した¥" は言葉をたくさんする. いわゆる植民地近代化論がすぐこれだ. ところで経済史を研究する学者たち中このような植民地近代化論に賛同する人々がいる. もっとこんな理論に同調する若者たちもかなり多くあることで分かっている.
植民地近代化論を支持するとか ,植民地近代化論に同調しないが日製の減点が韓国の近代化に良い影響を及ぼしたと言う人々は日帝強制占領期間に至って朝鮮人の文明率が低下されて, 出生率も増加したし高等教育を受ける人々と学校の数価増加経済成長率などの統計資料を根拠で日帝強制占領期間を無条件的な収奪の時代ではなかったし日帝強制占領期間を収奪の連続上に見てはいけないと指摘する.

日本人たちが近代化の証拠で日製の選定の兆候で立てる最大のことが三種類があるのに [人口増加では][経済成長率]そして[文明率の低下]などである.

日本学者溝口によれば 1909年から 1938年までの平均経済成長率は朝鮮が 2.20% 台湾が 2.17%だったと言う. 日本人たちそして植民地近代化論に同調する韓国人たちは ¥"¥"日本本土が成長率が 2.2%だったし同じ植民地である台湾は日本本土より成長率の低いのに朝鮮人が高くないか?¥"¥"と言いながら日本が韓国近代化の原動力になったと言う.

植民地経済を分析する時よく出る理論が¥"¥"収斂化仮説¥"¥"だ.収斂化仮説と言う(のは)植民地と侵略国は一つの国家一つの経済になったので差別がなくて正常な国家運営をしたら両国の経済格差が解消される方向に作用するというのだ.日本の強点以前朝鮮と倭国の所得格差はおおよそ 3倍の差があったと言う. もし収斂化仮説とおりなら朝鮮の成長率は日本の 3‾4倍はなるのが正確だ. しかし実際はそうではない.

が 説の問題点はソビザツルミョンを見れば確実になる. やっぱり日本学者テラサキによれば 1912年から 1938年までソビツルは朝鮮が 0.97で日本が 1.50 台だけが 1.12だと言う.
生産は朝鮮が一番高いのに消費は日本の半分をやっと過ぎるほどに過ぎない. イゲバで収奪経済ではなければ何と言うなのか? 労動力を搾取して大量で生産するようにして消費は全然できなくするの!

もっと穀物などの消費は朝鮮の地に日本人たちも含ま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忘れてはいけない. 分配構造などで見て日本人たちがおびただしい部分を占めているので実際朝鮮人の経済事情は数字以上に劣悪したことが明らかだ.

なんで消費がそんなに劣悪だったのか? 増えた賃金推移を見れば卵数がある.美爪グッチによれば日帝時代製造業の賃金は 1920年以後持続的に下がったと言う.1920年代と 1930年代の賃金が 1910年代の賃金を下回ったという非常識的なことが起こった.

次は人口増加論を見よう.

植民地近代化論者たちの論理によれば庚戌国恥当時朝鮮の人口が 1300万であったが以前当時の人口は 2700万なので二倍になったから搾取にあってどんなに人口が倍増しするのか?と言う.

日本人たちが初めて信頼可能な人口統計を出したことが 1925年だ.その以前日本人たちは朝鮮の人口に対して発表するのを 1910年に 1300万名と言ってから 1915年頃には 1700万名でありなさいと発表した. わずか 5年の間に人口が 400万名であるか増えるか?
これは 1910年にもう 1700万名はあったがまともに統計が取れられなくて実際は 1700万名だった人口が 40年後に 2700万名になったことが間違いない.

植民地近代化論支持者たちはこんな話をするでしょう.日本が朝鮮に工場 , 施設たちを作ってくれたから韓国がそれを土台で急速な経済成長率を成した.だから日帝強制占領期間をあまり収奪抵抗の側面でボザマルだと言葉だ. もちろん日本が韓国の多くの工場で基幹施設を立ててくれたことは事実だ , しかし近代化に必要な工場, 基幹施設は大部分北に位した. 南側にあった工場で基幹施設は北に比べればほとんどなかったことで分かっている. それさえも 6.25 戦争で廃墟になった.

どんな人は日本の土地調査事業を示して近代的土地所有権樹立を通じて朝鮮資本主義発達にどうなったといっても少しは寄与したことだと言う. ところがなるほどそんなに単純に見ることだろう? 近代的土地所有権確立に寄与したことは事実だったが , それが韓国人たちに恩恵が与えられたのか? 日帝強制占領期間土地調査事業は韓国人たちのためではない日本人のためのことだ.これが朝鮮の資本主義発達に寄与したのか分からなくてもこれらは日本人たちをサルチウは政策だった.土地調査事業によって地を失った朝鮮の農民たちが大きい被害を受けたし朝鮮農家経済家破綻された. これがどうして韓国近代化に寄与したと言えるか?

産米増殖計画みたいな場合にも収奪的な性格はあるが沒落した農民, すなわち朝鮮の過剰人口が都市で進出して都市工業化に寄与した側面 →これも一つだけ分かって二つは分からない. 沒落した農民たちが都市で進出して工業化に進出したことは事実だがその工業化が私たちのための工業化だったのか? 日本のための工業化だった. 時代が経つほど労動者の賃金が下落したことは何だろう? これが果して近代化の過程だと見られるか? そういう工業化は日本の経済 , 日本の呼ぶ太ったの , 韓国の経済はサルチウだなかった. むしろ植民地である韓国の資源, 労動力を搾取することで日本と朝鮮の経済的格差は徐徐に大きくなった. 単純数字上に朝鮮が多い経済成長 , 工業化を成したのかは分からなくてもその実利は日本が取りそらえた. 言わば中が空いている感情のような状態だった. これがどうして近代化に寄与した側面と言えるか?

1997年後半に裂けた IMF 国家危機不渡り事態当時この危機を日本政府が韓国を手伝ってくれて脱したとうわごとをした人々が思い出す. 日本人たちの言葉もならない論理に同調する韓国人たち... これらがいるからいまだに朝鮮が解放されてから
60年が経ったが日製の残在を清算す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ではないか?

植民地近代化論に同調する韓国人たち彼らは脳も ,胆嚢も, 胸もない人形みたいな存在ではなくてムオッインカ?
終りにアジア経済の権威者と言うポキンス教授の言葉を引用しながら二万文を終えようとする.

※日帝下の朝鮮の経済成長はただ一つ例外的な事実を除けば , その例外と言う(のは)その成長の恩恵をこうむった朝鮮人がほとんどいないということ, そして大多数の朝鮮人は生活水準の低下を経験したというのだ. 朝鮮の成長の水害者はチープな朝鮮の米を消費した日本の消費者でその朝鮮の鉄道産業労動力を利用した日本の軍部だ.
原文を見る

日本は韓國を近代化させなかった!!

식민지를 근대화 시켰는가?
"인구증가율" 경제성장률""문명의 저하" 허구

일본 사람들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나쁜 짓도 했지만 조선을 근대화 시키는것에 공헌했다" 는 말을 많이 한다.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중 이와 같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 이런 이론에 동조하는 젊은층들도 꽤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거나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일제의 감점이 한국의 근대화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조선인의 문명률이 저하되고, 출생률도 증가했으며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과 학교의 수가 증가 경제성장률 등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일제강점기를 무조건적인 수탈의 시대는 아니었고 일제강점기를 수탈의 연속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일본인들이 근대화의 증거이며 일제의 선정의 징표로 내세우는 가장 큰 것이 세가지가 있는데 [인구증가론][경제성장률]그리고[문명률의 저하]등 이다.

일본학자 미조구치에 의하면 1909년부터 1938년까지의 평균경제성장률은 조선이 2.20% 대만이 2.17%였다고 한다. 일본인들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한국인들은 ""일본본토가 성장률이 2.2%였고 같은 식민지인 대만은 일본본토보다 성장률이 낮은데 조선인이 높지 않은가?""라고 말하면서 일본이 한국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식민지경제를 분석할때 흔히 나오는 이론이""수렴화 가설""이다.수렴화 가설이란 식민지와 침략국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경제가 되었으므로 차별이 없고 정상적인 국가운영을 했다면 양국의 경제격차가 해소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일본의 강점 이전 조선과 왜국의 소득격차는 대략 3배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만약 수렴화 가설대로라면 조선의 성장률은 일본의 3~4배는 되는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說의 문제점은 소비자출면을 보면 확연해진다. 역시 일본학자 테라사끼에 의하면 1912년부터 1938년까지 소비출은 조선이 0.97이고 일본이 1.50 대만이 1.12라고 한다.
생산은 조선이 가장 높은데 소비는 일본의 반을 겨우 넘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바로 수탈경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노동력을 착취하며 대량으로 생산하게 만들고 소비는 전혀 하지 못하게 하는것!

더욱 곡물 등의 소비는 조선의 땅에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분배구조 등으로 보아 일본인들이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실제 조선인의 경제사정은 숫자 이상으로 열악했음이 분명하다.

なんで소비가 그렇게 열악했는가? 는 임금추이를 보면 알 수가있다.미조구찌에 의하면 일제시대 제조업의 임금은 1920년 이후 지속적으로 내려갔다고 한다.1920년대와 1930년대의 임금이 1910년대의 임금을 하회했다는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났었다.

다음은 인구 증가론을 보자.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논리에 의하면 경술국치 당시 조선의 인구가 1300만 이었는데 종전당시의 인구는 2700만이므로 두 배가 되었으니 착취를 당하고 어떻게 인구가 배증하느냐?라고 말한다.

일본인들이 처음으로 신뢰가능한 인구통계를 낸 것이 1925년이다.그 이전 일본인들은 조선의 인구에 대해 발표하기를 1910년에 1300만명 이라고 했다가 1915년 경에는 1700만명 이라고 발표했다. 불과 5년 사이에 인구가 400만명 이나 늘어나는가?
이는 1910년에 이미 1700만명은 있었는데 제대로 통계가 잡혀지지 않아서 실상은 1700만명이던 인구가 40년 후에 2700만명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식민지 근대화론 지지자들은 이런말을 할것이다.일본이 조선에 공장 , 시설들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한국이 그것을 토대로 급속한 경제성장률을 이루었다.그러니 일제강점기를 너무 수탈 저항의 측면으로 보자말라고 말이다. 물론 일본이 한국의 많은 공장이며 기간시설을 세워준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근대화에 필요한 공장, 기간시설은 대부분 북쪽에 위치했다. 남쪽에 있었던 공장이며 기간시설은 북쪽에 비하면 거의 없었던 걸로 알고있다. 그나마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을 가리켜 근대적 토지소유권 수립을 통해서 조선 자본주의 발달에 어떻게 됐든 조금은 기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보는 것일까? 근대적 토지소유권 확립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 그것이 한국인들에게 혜택이 주어졌는가?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은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 아닌 일본인을 위한 것이다.이것이 조선의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했을지 몰라도 이들은 일본인들을 살찌우는 정책이었다.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땅을 잃은 조선의 농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고 조선 농가 경제가 파탄되었다. 이것이 어째서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산미증식계획 같은 경우에도 수탈적인 성격은 있으나 몰락한 농민, 즉 조선의 과잉인구가 도시로 진출해서 도시공업화에 기여한 측면 →이것 역시 한가지만 알고 두가지는 모른다. 몰락한 농민들이 도시로 진출하여 공업화에 진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공업화가 우리를 위한 공업화였는가? 일본을 위한 공업화였다. 시대가 지날수록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한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과연 근대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한 공업화는 일본의 경제 , 일본의 부를 살찌웠지 , 한국의 경제는 살찌우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지인 한국의 자원,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일본과 조선의 경제적 격차는 점차 커졌다. 단순 수치상으로 조선이 많은 경제성장 , 공업화를 이루었을지는 몰라도 그 실속은 일본이 챙겼다. 말하자면 속이 비어있는 감정과 같은 상태였다. 이것이 어째서 근대화에 기여한 측면 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97년 후반에 터진 IMF 국가위기 부도사태 당시 이 위기를 일본정부가 한국을 도와줘서 벗어났다고 헛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일본인들의 말도 되지않는 논리에 동조하는 한국인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조선이 해방된지
60년이 지났지만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한국인들 그들은 뇌도 ,쓸개도, 가슴도 없는 인형같은 존재가 아니고 무엇인까?
끝으로 아시아경제의 권위자라고 하는 퍼킨스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일제하의 조선의 경제성장은 단 한가지 예외적인 사실을 제외하면 , 그 예외란 그 성장의 은혜를 입은 조선인이 거의 없다는것, 그리고 대다수의 조선인은 생활수준의 저하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성장의 수해자는 저렴한 조선의 쌀을 소비한 일본의 소비자이며 그 조선의 철도 산업 노동력을 이용한 일본의 군부이다.

いいね・コメントにはログインが必要です。

コメント ( 6 )

投稿一覧

2,811,753

  1. KO 255 propertyOfJapan
  2. KO 20 Jumong8
  3. KO 255 morort
  4. KO 255 morort
  5. KO 255 morort
  6. JA 255 竹島先住民
  7. KO 255 propertyOfJapan
  8. KO 255 morort
  9. JA 255 竹島先住民
  10. KO 255 amateras16
  11. 閲覧数 : 79
    KO 255 avenger
  12. KO 255 jap6cmwarotaZ
  13. 閲覧数 : 109
    JA 255 milet
  14. KO 255 cris1717
  15. KO 255 amateras16
  16. 5 閲覧数 : 109
    JA 255 dom1domko
  17. 閲覧数 : 89
    JA 255 sonhee123
  18. JA 255 bluebluebluu
  19. KO 255 avenger
  20. KO 255 jap6cmwarot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