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를 보는 日지식인의 양심선언
2011-05-19 by 남원상 기자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1호기 원자로의 멜트다운 확인 소식을 전하는 일본 뉴스 화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오염 사태가 개선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사고에 대한 관심이 조금 잠잠해진 틈을 타서 일본 정부는 뒤늦게 원자로의 멜트다운을 인정했는데요. 사실상 최악의 상황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데도 일본의 정보 은폐는 아직 진행형입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히라타 오리자 내각관방참여가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바다 방출은 미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히자 일본에선 ‘내부 정보를 한국에 알렸다’며 비난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철회했지만 일본 여론은 여전히 들끓는 중입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 측에 오염수 방출 과정을 알린 사실이 아니라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서 향후 한국에 어떤 피해를 끼칠 것인지 여부인데 말이죠.
이처럼 방사능 오염을 처리하는 일본의 이기적인 태도에 대해서 자국 내부에서도 점차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우에스기 타카시 씨가 19일 시사주간지 다이아몬드 인터넷판에 기고한 칼럼을 보면 양심적인 지식인의 고민이 잘 드러납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1호기와 3호기의 폭발 모습. 멜트다운이 진행된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방사능 오염 물질이 폭발과 함께 쏟아져 나왔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칼럼의 제목은 ‘정보 은폐로 세계의 고아가 되고 있는 일본. 벌써 체르노빌 당시 소련보다 못할지도 모른다’입니다. 그는 이 글에서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가 일본의 ‘적(敵)’이 됐다는 강한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우에스기 씨는 일본에서 방출된 방사능 오염 물질이 지구 전체로 확산됐다고 적었습니다. 미국 하와이에선 기준치의 43배나 되는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고 미국 본토, 유럽, 남반구에서도 방사능 비가 내린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와중에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와 개입을 두 달이 넘도록 거부해 왔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본이 17일 IAEA 조사단을 뒤늦게 수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멜트다운 등 심각한 상황은 이미 한참 진행된 이후였습니다.
그는 3월 22일 후쿠시마 일대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IAEA가 주민들에게 피난 권고를 할 것을 전했는데도 일본 정부는 “정보를 정밀조사 중”이라며 궤변만 늘어놓았던 것에도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사실상 IAEA의 권고를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입니다.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발생 이후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내부를 덮친 장면.
우에스기 씨는 또 세계보건기구(WHO)가 IAEA와 함께 지난 3월 후쿠시마현 이타테무라(飯舘村)에 지형적 특성상 방사능 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던 당시 일본 정부의 처사에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WHO와 IAEA가 유아와 임신부만이라도 우선 대피시킬 것을 권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무시로 일관했다는 지적입니다.
일본 정부의 이런 오만한 태도에 대해서 그는 IAEA의 핵사찰을 거부해 국제 문제를 일으킨 북한, 리비아, 이란과 흡사하다고 비교했습니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이런 나라들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또 일본 정부가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해양조사를 방해한 문제도 지적했는데요. 그린피스의 보고서는 유엔에서도 중요하게 검토된다며 적어도 일본 정부가 자국에 유리하게끔 조작한 조사 자료보다 더 믿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린피스의 조사를 방해한 일본 정부가 해양 방사능 오염에 직접 나서겠다며 그 대상에서 어류의 대가리, 내장, 뼈는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행태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묘한 조사 방법을 ‘안전하다’며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방사능 오염수로 가득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2호기 내부의 모습. 이 오염수가 바다 등 외부로 방출된다면?
우에스기 씨는 사고 이후 일본 정부와 언론이 하나가 돼 정보 은폐를 반복했다며 제 역할을 방기한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습니다. 일본의 원전 사고 정보 체계를 ‘철의 장막’이라고 표현한 뒤 그 실태가 냉전시대 옛 소련보다 더 심하다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와 언론의 이 같은 은폐가 일본에 대한 전 세계의 불신감 표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독일 구호단체가 이재민 지원 활동을 중단하고 조기 귀국한 이유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실 은폐와 축소 때문”이라며 “체르노빌 사태를 연상케 한다”고 밝혔던 내용도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일본 정부가 두 달이 넘도록 IAEA, WHO, 그린피스 등 공신력 높은 국제기관과 단체를 계속 무시한 처사는 다른 나라에서 볼 때 ‘정보 은폐’라는 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이 전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아이가 된 현실을 정부, 언론, 국민이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옛 소련이 체르노빌 사태로 인해 세계적인 비웃음거리가 됐지만 그래도 지금 일본의 상황보다는 나은 편이라는 얘기도 했는데요. 적어도 옛 소련 정부는 사고 발생 한 달 뒤엔 주민을 강제로 모두 이주시켰고 국제기관의 사찰도 수용했다는 것이죠.
멜트다운이 확인된 1호기 내부의 모습. 일본 정부가 멜트다운 사실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적절한 대피 조치를 취했다면 피폭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본의 정보 공개 수준이 냉전시대 공산국가들보다 더 심할지도 모른다고 개탄했습니다. 우에스기 씨의 이 글은 원전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한 채 ‘지진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힌 일본에서 큰 용기를 갖고 적은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선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일본 내부에서조차도 ‘불순세력’이 아닌 안목 있는 사람들은 일본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중입니다. 인접국인 한국 정부가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만 철석같이 믿고 더 이상 국민을 방사능 오염에 노출시켜서는 안 될 시점인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