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震とスナミの直接被害を受けた宮城(宮城)現, 岩手(岩手)現果私たちは他の喧嘩をする. 放射能のため一日一日思い焦がれる戦争の中だ.”
福島(福島) 原典で 25
6日ぶりとどまっても 1年分被爆 ‘酷い放射能’ … あちこちには幽霊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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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만 머물러도 1년치 피폭 ‘지독한 방사능’ … 곳곳엔 유령마을
“지진과 쓰나미의 직접 피해를 본 미야기(宮城)현, 이와테(岩手)현과 우리는 다른 싸움을 한다. 방사능 때문에 하루하루 피 말리는 전쟁 중이다.”
후쿠시마(福島) 원전에서 25㎞ 떨어진 후쿠시마현 이타테무라(飯<8218>村)의 간노(管野) 촌장은 비장했다. 이곳 주민은 4월 20일 중앙정부로부터 한 달 내로 떠나라는 소개령(疏開令)을 받고 90%가 빠져나갔다. 현재 남은 사람은 단 500명. 사고 한 달 후 방사능 공포는 낙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이 마을을 강타했다. 정보 공개에 꾸물대던 중앙정부가 할 수 없이 공식 명령을 내려보냈다.
지진 100여 일 뒤인 지난 18일 오전 8시. 후쿠시마로 가는 길은 뜻밖에 붐볐다. 일본 전역으로 떠나는 신칸센이 출발하는 도쿄역. 방사능 공포로 후쿠시마행은 텅 빌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지진 피해가 심한 도호쿠 지방으로 북상하는 대부분의 신칸센도 만석이었다. 동행한 후지TV의 가모시타(鴨下) 기자와 산케이신문의 구보다(久保田) 기자도 뜻밖이라는 반응이었다.
1시간50분 뒤 후쿠시마역에 도착했다. 원전에서 60㎞쯤 떨어진 곳. 차분하다. 도요타 4인승 RV 차량으로 마중 나온 아카쓰카(赤塚)는 전직 고교 교장. 양 손목에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있다. 하나는 그냥 시계고 다른 하나는 방사능 수치를 실시간 알려 주는 선량계다. 시간당 3마이크로시버트(μSv/h)가 넘을 때 알람이 울린다. 선량계는 이미 후쿠시마 시내에도 0.7μSv를 넘나들었다. 말 그대로 ‘홋토 스포토(hot spot의 일본어 발음)’였다.
편의점 차량으로 만든 이동식 판매 매대.(왼쪽) 센다이 해안의 나무들이 바닷물을 맞고 죽어 변색됐다. 후쿠시마역에서 해안가 원전으로 이어지는 길은 여러 갈래다. 인구 5000~2만 명 사이의 중소 마을들이 산기슭을 따라 숲길로 이어지며 연결돼 있다. 원전에 접근하려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그런 것은 받지 않았다. 일단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기로 했다. 역에서 동남쪽으로 40여㎞ 떨어진 이타테무라로 방향을 잡았다. 시내를 벗어나니 갑자기 텅 빈 느낌이다. 양 차로를 오가는 차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인적은 찾을 수 없었다. 길 옆 집들은 모두 비어 있다. 빈집엔 며칠 굶어 보이는 야윈 고양이들이 멍하니 차들을 보고 있었다. 방치된 논밭은 무성한 잡목투성이다.
그런데 차가 숲길로 들어서자 선량계가 삑삑 울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3μSv를 넘었다. 구비구비 산길을 지나는 동안 8까지 올라갔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성인의 연간 피폭 허용치는 1밀리시버트(mSv,1000μSv). 시간당 8μSv라면 하루 192μSv, 6일이면 허용치를 넘는다. 지독한 방사능 오염이다. 다들 숨이 턱 막혀 오는 기분이 들었다. 알람 소리와 차량 소음만 유달리 크게 들리는 듯했다. 산길을 벗어나는 10여 분이 길게 느껴졌다. 평지로 나오니 수치는 1.7μSv로 확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연간 누적 피폭량이 20mSv가 넘는 지역을 피난구역으로 지정했다.
사고 원전에서 반경 25㎞까지는 강제철수 지역이다. 간노 촌장은 인구 50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 유령마을이 안 되게 온몸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10년 전 도쿄 주변 미야케지마(三宅島) 화산이 폭발했을 때 주민들이 다 육지로 철수했다 3~4년 뒤 60% 정도가 되돌아왔지만 이타테무라는 어떨지 알 수 없다”며 깊은 한숨이다. 후쿠시마 지역은 쇠고기도 유명한데 땅이 오염됐으니 풀을 소에 먹일 수도, 우유도 짤 수 없다. 소를 경매로 내놓는 농가가 대부분이다.
길을 더 가 봤다. 산길로 진입할 때마다 알람이 울리며 4~5μSv로 올라갔다. 그런데 경찰 버스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원전 20㎞ 지점. 허가가 있어야 더 간다. 차를 돌렸다. 하루 2교대 하는 경찰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버스 안에 머문다. 전국에서 차출된 경찰들로 경비대가 구성됐다고 한다.
그날 오후 8시쯤,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규모 4의 지진이 2~3분 지속됐다. 이 정도는 일상이 돼 놀랍지도 않을 것 같은데 ‘띠룽~’ 하는 경보가 텔레비전을 통해 울리면 소용없다. 가슴이 철렁한다. 생각과 달리 몸이 먼저 반응한다. 노이로제다. 그래도 달리 할 게 없다. 그냥 무심한 듯 견딜 뿐이다.
그날 오후 내내 후쿠시마에서는 가랑비가 내렸다. 후쿠시마에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으라는 충고가 떠올랐지만 정작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은 비에 큰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센다이로 출발했다. 후쿠시마에서 북쪽으로 100㎞쯤 가야 한다. 센다이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그곳을 쓰나미가 덮쳤다. 고속도로가 센다이로 접어들자 들판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더미부터 눈에 들어왔다. 해안에서 좀 떨어진 산등성 아래 나무들은 빨갛게 죽어 있었다. 바닷물 때문이었다.
외곽을 돌아 미나미산리쿠(南三陸)에 들어서자 바다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맑은 물이 찰랑거렸다. 그러나 주변은 거대한 쓰레기 종말처리장처럼 돼 있었다. 뭘 어디서, 어떻게 손댈 수 있을까. 사방이 똑같았다. 찌그러진 채 뒤엉킨 차들, 폭탄 맞은 듯 흉측한 몇몇 건물…. 거대한 쓰레기 벌판에 뜨거운 태양이 불을 뿜었다. 차를 댈 만한 가장자리에 편의점 차가 이동식 판매 서비스를 했다. 5t 트럭에 생필품을 싣고 공터에 매대를 펼쳐 놓은 모습은 개성 같은 북한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상품 매대와 비슷했다.
차를 더 달려 이시노마키(石卷)로 갔다. 너무 심했다. 1분도 못 견디고 차에 다시 올라타야 했다. 생선 썩는 듯한 역겨운 냄새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 지역에 생선 가공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휩쓸려 갔는데 왜 냄새는 사라지지 않은 걸까, 아니면 새롭게 생긴 걸까. 지독한 냄새의 진원지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후쿠시마(福島) 원전에서 25㎞ 떨어진 후쿠시마현 이타테무라(飯<8218>村)의 간노(管野) 촌장은 비장했다. 이곳 주민은 4월 20일 중앙정부로부터 한 달 내로 떠나라는 소개령(疏開令)을 받고 90%가 빠져나갔다. 현재 남은 사람은 단 500명. 사고 한 달 후 방사능 공포는 낙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이 마을을 강타했다. 정보 공개에 꾸물대던 중앙정부가 할 수 없이 공식 명령을 내려보냈다.
지진 100여 일 뒤인 지난 18일 오전 8시. 후쿠시마로 가는 길은 뜻밖에 붐볐다. 일본 전역으로 떠나는 신칸센이 출발하는 도쿄역. 방사능 공포로 후쿠시마행은 텅 빌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지진 피해가 심한 도호쿠 지방으로 북상하는 대부분의 신칸센도 만석이었다. 동행한 후지TV의 가모시타(鴨下) 기자와 산케이신문의 구보다(久保田) 기자도 뜻밖이라는 반응이었다.
1시간50분 뒤 후쿠시마역에 도착했다. 원전에서 60㎞쯤 떨어진 곳. 차분하다. 도요타 4인승 RV 차량으로 마중 나온 아카쓰카(赤塚)는 전직 고교 교장. 양 손목에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있다. 하나는 그냥 시계고 다른 하나는 방사능 수치를 실시간 알려 주는 선량계다. 시간당 3마이크로시버트(μSv/h)가 넘을 때 알람이 울린다. 선량계는 이미 후쿠시마 시내에도 0.7μSv를 넘나들었다. 말 그대로 ‘홋토 스포토(hot spot의 일본어 발음)’였다.
편의점 차량으로 만든 이동식 판매 매대.(왼쪽) 센다이 해안의 나무들이 바닷물을 맞고 죽어 변색됐다. 후쿠시마역에서 해안가 원전으로 이어지는 길은 여러 갈래다. 인구 5000~2만 명 사이의 중소 마을들이 산기슭을 따라 숲길로 이어지며 연결돼 있다. 원전에 접근하려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그런 것은 받지 않았다. 일단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기로 했다. 역에서 동남쪽으로 40여㎞ 떨어진 이타테무라로 방향을 잡았다. 시내를 벗어나니 갑자기 텅 빈 느낌이다. 양 차로를 오가는 차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인적은 찾을 수 없었다. 길 옆 집들은 모두 비어 있다. 빈집엔 며칠 굶어 보이는 야윈 고양이들이 멍하니 차들을 보고 있었다. 방치된 논밭은 무성한 잡목투성이다.그런데 차가 숲길로 들어서자 선량계가 삑삑 울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3μSv를 넘었다. 구비구비 산길을 지나는 동안 8까지 올라갔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성인의 연간 피폭 허용치는 1밀리시버트(mSv,1000μSv). 시간당 8μSv라면 하루 192μSv, 6일이면 허용치를 넘는다. 지독한 방사능 오염이다. 다들 숨이 턱 막혀 오는 기분이 들었다. 알람 소리와 차량 소음만 유달리 크게 들리는 듯했다. 산길을 벗어나는 10여 분이 길게 느껴졌다. 평지로 나오니 수치는 1.7μSv로 확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연간 누적 피폭량이 20mSv가 넘는 지역을 피난구역으로 지정했다.
사고 원전에서 반경 25㎞까지는 강제철수 지역이다. 간노 촌장은 인구 50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 유령마을이 안 되게 온몸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10년 전 도쿄 주변 미야케지마(三宅島) 화산이 폭발했을 때 주민들이 다 육지로 철수했다 3~4년 뒤 60% 정도가 되돌아왔지만 이타테무라는 어떨지 알 수 없다”며 깊은 한숨이다. 후쿠시마 지역은 쇠고기도 유명한데 땅이 오염됐으니 풀을 소에 먹일 수도, 우유도 짤 수 없다. 소를 경매로 내놓는 농가가 대부분이다.
길을 더 가 봤다. 산길로 진입할 때마다 알람이 울리며 4~5μSv로 올라갔다. 그런데 경찰 버스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원전 20㎞ 지점. 허가가 있어야 더 간다. 차를 돌렸다. 하루 2교대 하는 경찰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버스 안에 머문다. 전국에서 차출된 경찰들로 경비대가 구성됐다고 한다.
그날 오후 8시쯤,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규모 4의 지진이 2~3분 지속됐다. 이 정도는 일상이 돼 놀랍지도 않을 것 같은데 ‘띠룽~’ 하는 경보가 텔레비전을 통해 울리면 소용없다. 가슴이 철렁한다. 생각과 달리 몸이 먼저 반응한다. 노이로제다. 그래도 달리 할 게 없다. 그냥 무심한 듯 견딜 뿐이다.
그날 오후 내내 후쿠시마에서는 가랑비가 내렸다. 후쿠시마에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으라는 충고가 떠올랐지만 정작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은 비에 큰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센다이로 출발했다. 후쿠시마에서 북쪽으로 100㎞쯤 가야 한다. 센다이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그곳을 쓰나미가 덮쳤다. 고속도로가 센다이로 접어들자 들판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더미부터 눈에 들어왔다. 해안에서 좀 떨어진 산등성 아래 나무들은 빨갛게 죽어 있었다. 바닷물 때문이었다.
외곽을 돌아 미나미산리쿠(南三陸)에 들어서자 바다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맑은 물이 찰랑거렸다. 그러나 주변은 거대한 쓰레기 종말처리장처럼 돼 있었다. 뭘 어디서, 어떻게 손댈 수 있을까. 사방이 똑같았다. 찌그러진 채 뒤엉킨 차들, 폭탄 맞은 듯 흉측한 몇몇 건물…. 거대한 쓰레기 벌판에 뜨거운 태양이 불을 뿜었다. 차를 댈 만한 가장자리에 편의점 차가 이동식 판매 서비스를 했다. 5t 트럭에 생필품을 싣고 공터에 매대를 펼쳐 놓은 모습은 개성 같은 북한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상품 매대와 비슷했다.
차를 더 달려 이시노마키(石卷)로 갔다. 너무 심했다. 1분도 못 견디고 차에 다시 올라타야 했다. 생선 썩는 듯한 역겨운 냄새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 지역에 생선 가공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휩쓸려 갔는데 왜 냄새는 사라지지 않은 걸까, 아니면 새롭게 생긴 걸까. 지독한 냄새의 진원지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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