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수 애기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북청 물장수얘기이다. 옛날 수돗물이 공급되기 전에는 왕궁, 사대부집이나 상류층에서는 우물물을 사용하였으나 일반 서민층은 도시주변의 냇물을 주로 이용했다. 1415년(조선조 태종15년) 조정에서는 생활용수 해결을 위하여 5호마다 한 개씩의 우물을 팔 것을 명령할 정도로 물 문제가 심각하였으며 가뭄이 심할 때에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것이 북청 물장수이다. 북청 물장수가 나타남으로 물이 상품화되었고, 물이 공짜라는 생각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다.1686년 함경남도 북청군의 김서근 이란 청년이 과거보러 한성에 가는 고향선비들의 짐꾼으로 상경하여 돈화문 앞 어느 집에 세 들어 그들의 시중을 들던 중 삼청공원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다 쓰는데 이웃집의 요청으로 돈을 받고 길어다 준 것이 그 시초로 전해진다.
그는 물장수로 돈을 벌기도 하였지만 어깨너머 공부로 문과초시에 합격하여 고향에 돌아가 서당의 훈장을 하다가 다시 상경해서 북청에서 상경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물 상점을 열었다. 북청 물장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유는 일본 강점기에 북청 출신 물장수인 이 귀영의 아들이 경성제대에 합격한 것이 지상에 보도되면서였다. 그들의 물 상점은 수상조합으로 발전하여 1인당10~20호에 물을 공급하기도 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여 특설공동상수도전 220전에 대한 영업권을 조합이 받기도 하였지만 1908년 서울의 상수도가 준공되자 경영난을 겪다가 1914년에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여 북청 물장수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김홍도 우물가
김홍도
똥장군과 퍼는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