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는 한국의 三寶寺刹 중에 하나이다. 삼보라 함은 佛, 法, 僧을 말하는 것인데 통도사는 이 중에 부처님의 몸인 佛을 모시고 있다. 7세기 초반 당나라에 갔다온 자장율사는 부처님의 眞骨 사리와 유품을 가져와 646년 이곳에 절을 세워 金剛戒壇에 봉안하였다.
당시 신라는 중앙 왕권이 강력하지 않았고 지방 토착세력의 힘이 강하였기 때문에 여러 변방에 절을 세워 중앙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였다.

통도사는 영축산 남쪽 기슭 평탄한 곳에 위치하고 터가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길며 남쪽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계곡이 있다.
처음 절이 만들어졌을 때는 서쪽 金剛戒壇과 대웅전 영역을 중심으로 고대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배치였겠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필요에 따라 절의 배치도 변하고 확장하게 되었다.
남쪽으로는 자리가 없으므로 확장은 동쪽으로 이루어졌다. 일본과의 전쟁 때 모두 불탄 후 17세기 초반부터 재건이 된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확장과 증축은 계속 이루어져 현대까지도 이어진다.
(사진 좌측 대웅전-우측 청색 대형건물 현대에 지어진 박물관)
통도사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절의 진입은 서쪽을 향해 이루어지고 차례대로 下爐殿-中爐殿-上爐殿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爐殿이란 절을 관리하는 스님이 머무르는 곳으로 3개의 작은 절이 모여 50여동의 건물의 복합체로 큰 절이 이루어진다.
이 세 영역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절로 진입하는 一柱門-天王門-不二門으로 세속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진입하며 동쪽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이어진다.
(천왕문에서 본 불이문, 오른쪽으로 돌면 하로전)

下爐殿은 3면에 건물이 배치되고 남쪽에 누각이 있어 가운데 마당을 형성하는 한국의 산지사찰에 흔한 中庭形 배치로 북쪽에는 靈山殿, 동쪽 極樂寶殿, 서쪽 藥師殿, 남쪽 萬歲樓로 이루어지며 마당에는 9세기의 석탑이 위치한다.
不二門에 서면 절의 중심인 대웅전이 정면의 가운데 위치하는데 진입의 최후의 지향점은 대웅전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오른쪽으로는 中爐殿 영역이 있다.
不二門은 진리는 둘이 아니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말로 설화적인 형태의 코끼리와 호랑이가 지붕을 받치고 있다.
中爐殿은 중심축을 중심으로 북쪽부터 大光明殿-龍華殿-觀音殿 3개의 건물이 일렬로 배열된 구조로 처음 세워진 시기가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 순으로 뒤의 건물을 의식한 듯 앞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고 폭이 좁아진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국가지배 이념으로 불교가 상당히 위축되었지만 전쟁 후 조선 후기에 가면 상당히 완화되어 서민, 상인, 부녀자를 중심으로 신앙이 이루어져 왔다.
벽화나 조각들도 이런 요소들이 많이 나타나고 山神이라든지 민간신앙의 신을 모시는 건물이 절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며 불교 종파도 희미해져 다양한 사상의 佛殿이 만들어져 병을 고쳐주는 약사불이나 소원을 들어주는 관음불이 민중에게 인기를 얻기도 하며 다양한 종합불교의 성격을 띄게 된다.
(龍華殿 서쪽 상단 벽화)
문으로 계속 진입하면 시각의 종착점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上爐殿 영역이 위치하며 북쪽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金剛戒壇이 있다.
(대웅전 동쪽 문살)
대웅전은 주요 입구는 동쪽에 있고 참배의 대상은 북쪽에 있으므로 다양한 주요방향을 가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대웅전의 지붕을 동,남,서쪽을 측면으로 만들어 반대로 모든 방향이 정면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각 방향에서도 현판에 쓰여진 이름이 북-寂滅寶宮, 동-大雄殿, 남-金剛戒壇, 서-大方廣殿으로 모두 다르지만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참배의 대상이 북쪽의 야외에 있는 금강계단이기 때문에 내부에는 불상이 없다.
이 곳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가져온 부처님의 진골 사리를 모신 金剛戒壇으로 돌로 난간을 만들어 장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