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1934년
경북 영천 지방에서 牛의 이력서를 자세히 정리한 [畜産牛文書]가 발견 되었다
책으로 묶인 6권과 낱장 14장 이어 붙인 1건 모두 1100건으로 내용이 담겨 있다

내용은
괴연동 이석근의 암컷 黑牛는 1926년산 1932년 수컷 黃牛를 낳고 그것을 백안동에 사는
李氏에게 半養으로 주었으며 1933년 가을 다시 새끼를 가져 암컷 黃牛를 낳았다
牛의 뿔 모양 색깔 까지 구체적으로 기록
적갈색[붉은 브라운 ]흑갈색 [블랙 브라운 ] 黑牛 갈색[브라운 ]
칡牛 갈색[브라운] 白半牛 黑색白半牛
1937년 ~1945년 군용馬를 대체하는 방법으로 韓牛선택
1921년 韓牛의 개량 시책
1900년대 韓牛는 일본 큐슈 [九州]에 반출 그 중 일부 시코쿠 지방 코우지 유입
韓牛를 이용한 일본牛개량 시도
韓牛는 거친 사료에 강하고 온순하고 영리해 환경 적응이 좋다고 평가 되었다
구마모토현에서 갈모 계통을 사육함으로서 구분을 위해
갈모 일본牛는 독자적인 심사기준으로
뿔 귀 코 꼬리 눈 주변이 黑색으로 나타나도록 유도 하였다
1938년 전통 韓牛는 黃색으로 통일 한다고 규정 하였는데 이유는 가죽의 질이 좋다는 것
이 규정에 의해 전통의 黑牛 칡牛는 멸종 위기를 맞았다

위 칡牛 아래 黑牛입니다
한국인 이라면 모두 아는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牛]도 얼룩소 .....하는 동요의 牛는 칡牛랍니다

가장 흔하게 보는 黃牛입니다
가죽의 질이 좋은 이유로 조선에서 도살 되고 가죽은 일본으로 유출 됩니다
1892년 에서 1942년 동안 가죽 270만 톤이 반출
韓牛1마리에 피혁 45kg생산
도살 되고 가죽으로 일본으로 나간 牛600만 마리
1900년 ~1942년
살아 있는 牛로 일본으로 나간 牛150만 마리
총 750만 마리의 牛가 반출
특히 1933년 ~40년은 연간 6~7만 마리의 牛가 일본으로 반출 되었는데
군수물자로 사용 되었다
가죽 피복 군화 배낭 혁대 밸트 등 군수 물자로 조선의 牛는
희생 되고 있었다
농촌 진흥청의 노력으로 현재 500 마리의 黑牛 칡牛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