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적(李彦迪, 1491~1553)은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중에 한 사람으로 1000원 지폐모델인 이황에 의해 그의 학문이 계승되어 영남학파를 이루었다.
그는 1491년에 慶州 양동마을에 있는 위의 집에서 태어났고 부친이 일찍 돌아가신 관계로 외가에서 자라면서 외삼촌에게 글을 배웠다.
1514년에 관직생활을 시작하였고 40세에 權臣의 복귀에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마을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위의 집에서 머물렀다. 다시 복귀하여 관직생활을 하였지만 이후 누명을 쓰고 북방에 귀양을 가서 그 곳에서 죽는다.
그가 죽은 후 20년 정도 지나서 慶州의 지방관리와 그의 후손들에 의해 그가 머물렀던 집 근처에 서원이 설립된다.
옥산서원은 이언적을 사당에 모시고 있으며 1574년 국가가 인정하는 사액서원이 되었다. 서원은 학문과 정신을 수양하는 교육기능과 위대한 유학자를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교기능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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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설은 북쪽에 강당, 동서로 동재와 서재, 남쪽의 누각으로 이루어져 폐쇄된 공간을 이룬다. 講堂에서 정기적으로 講會가 열린다.
동재와 서재는 지금의 기숙사로 동쪽이 위계가 높은 상급생이, 서쪽에 하급생이 머무른다.
크게 공간이 3개로 나뉘는데 교육시설과 종교시설(사당), 관리시설로 나뉜다. 이 외에도 부속건물은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과 책과 인쇄를 위한 목판을 보관하는 건물 등이 있는데 역사서인 삼국사기도 여기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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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은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로 모시는 인물이 서원마다 다양한데 공립학교인 향교는 주로 공자를 모시지만 사립인 서원은 조선의 인물들을 모셨고 중앙정부로부터 그 인물을 인정받기 위해 서원끼리경쟁이 심한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