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일본은 위안부 제도에 대해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사죄의 마음을 표현한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래서 설립한 것이 아시아 여성 기금이었다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으로 위안부 문제는 이미 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해 왔던
일본 정부가
1995년 7월 19일 위안부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사업으로 아시아 여성 기금을 설립했던 것이다
문제점 1
사죄를 표현하는 방식이 일본 정부 차원의 보상이 아니라
국민 기금으로 마련한 위로금 이라는 것인데
국민 기금에 의한 위로금은 국가적 배상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문제점 2
아시아 여성 기금의 위로금의 지급 방식은
국민 기금에 의한 위로금 총리의 사죄 편지 의료 복지 지원 ←이것 3가지이다
이 3가지는 위안부 피해자 모두에게 가지 않고 위로금을 받은 사람에게만 전달되어
위로금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죄에서도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2009년 필리핀 위안부에 대한 시위
1991년 한국에서 최초로 위안부 실체를 고발한 김학순氏는 1997년 사망할 때 까지
아시아 여성 기금의 위로금을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氏는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일본정부가 국민에게 넘기는 것이다
국민에게 돈을 모아 나누어 주는 것은 이상하다 라고 말했다
문제점 3

1996년 3월 2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 회의
피해자와 단체 참가자들이 우리는 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반대하는가 토론이 있었다
문제점 3
아시아 여성 기금 단체는
위안부에 대해
부모가 딸을 팔았다거나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거나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다 등
일본 정치권의 망언에도 침묵하였다
일본 정부의 의도는 분명해졌다
국민으로 부터 모금을 하여 마련한 기금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위로금 형식으로 주는 것은
일본 정부의 책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처음 부터 위안부를 매춘부로 대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