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shakalala와 논쟁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물론 저는 아직 학생이고, 잘 알지 못하지만,
단순히 제 의견을 적어봅니다...
조선시대가 유교를 풍습으로써 이용하고, 종교적인 의미를 뛰어 넘어서, 생활모습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다만, 한국(고대국가 포함)은 전통적으로 깊은 샤머니즘의 국가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옳은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옛날부터 샤머니즘이 강한 국가였습니다...고구려, 백제, 신라도 샤머니즘의 국가였고, 그 위에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전파받아, 샤머니즘의 민간풍습의 위에 처음에는 귀족의 중심으로 불교가 대표적인 종교로서 되었고, 나중에는 불교의 문화 또한 한국인의 생활모습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물론, 샤머니즘이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이 때에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 장승, 솟대 (하늘과 땅을 이어줘서 인간과 하늘을 서로 소통하게 해준다고 믿어서 만든 새 모양의 높은 장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장승도 포함->악귀를 물리쳐 준다고 믿어 마을의 입구에 세워 놓았던 무서운 얼굴을 한 표지판 비슷한 것), 굿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서 악귀를 물리치게 하는 춤)이 겉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조선시대까지도 유지되었어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대표적인 불교국가들 중 하나였던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을 사용하였는데,, 이 때, 유교풍습이 샤머니즘의 것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굳이 말하자면,, 유교는 조선시대에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제일 많이 사용되었고 (신분제, 남성중심, 경로효친 사상 등..), 샤머니즘과 상통하는 부분들도 많아 이것 또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샤머니즘의 일부는 유교와 섞여져서 유교풍습의 형태로 이어지게 되었고, 다른 샤머니즘의 풍습은 그대로 유교와는 다르게 이어져 내려온 것이지요..
다만, 일부 일본인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물론 국가적으로는 불교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하지만, 불교는 이미 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인들의 생활과 정신 속에 스며들어서 없앨 수가 없었고,, 일부의 귀족이나 왕들은 불교를 숭배하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조선초기에 불교를 심하게 억압하자, 비교적으로 관대한 전라도, 경상도나 산이 많고 환경이 좋아 마음을 비우기 좋은 강원도의 곳곳에 절들이 이주하거나, 보존, 유지되었습니다..
결론은, 한국인(조상들 포함)의 근본종교는 샤머니즘에서 유래되었습니다..하지만 중간에, 중국으로부터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였고, 불교는 불교 나름대로, 유교는 조선시대의 사회 질서와 샤머니즘의 일부와 섞여진 상태로 혼합되어 종교와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그리고 일부는 샤머니즘이 그대로 내려와 굿, 장승, 솟대, 하늘에 제사 (단군에 제사하는 풍습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등의 형태로 남게 되었지요..다만,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유교를 장려하여, 유교의 기본 논리, 성리학 등의 것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중에는 성리학을 발전시켰다는 평가까지 받게 되고, 성리학의 학문에 있어서, 조선의 연구와 유명한 성리학자들의 집필의 일부는 필수요소가 됩니다.
굳이, 오랫동안 믿었던 종교와 대표적인 종교를 말하자면 불교이고, 근본이 되는 뿌리의 요소는 고대부터 내려져 왔던 샤머니즘이며, 현재 이루고 있는 생활풍습에 제일 영향력이 많은 것은 유교풍습과 일부 샤머니즘의 풍습이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솟대
장승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