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고려시대 무용은 신라의 전통적인 무용을 이어 받았다
신라 이래 八關會와 불교의식 燃燈會가 고려의 중요한 국가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어
이것에 따르는 각종 百戱歌舞의 풍습이 고려의 춤 문화로 형성되었다
또한 고려시대는 宋니리로 부터 새로운 형태의 춤이 들어와 고려시대의 춤으로 정착하게 되면서
궁중 중심의 무용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즉 고려시대는 文宗때 (1073년)에 처음으로 宋나라의 무용을 전해받아
이 宋나라의 무용을 八關會와 燃燈會 같은 국가 의식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고려시대 이전 시대 부터 전승되어 왔던 전통적인 춤과 宋나라로 부터 전래한 춤을 구분하는
개념이 생겼다
이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려의 전통적인 음악은 鄕樂이라고 하였고 중국계 음악은 唐樂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의 여러 춤 중에 제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춤은
고려시대 鄕樂組에서 소개한 전통적인 춤과 唐樂組에서 소개한 宋나라에서 전래한 춤이고
八關會와 燃燈會에서 演行된 百戱歌舞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은 조선시대 19세기말에 활동해던 金俊根의 작품 기녀들의 舞鼓이다
고려시대 鄕樂調에 소개되어 있는데 조선시대의 鄕樂呈才로 전승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지방 敎坊 등 민간에서 演行되고 있었다
고려사 樂志에 의하면 舞鼓는 蟠龍을 그린 북을 두드리며 井邑詞를 노래하는 화려한 춤이다
라고 하였다
고려시대 대표적 鄕樂으로는 舞鼓 動動 무애 (無舞)이다
動動은 象牙로 만든 작은 拍을 두 손에 하나씩 들고 소리를 내며 추는 춤으로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
牙拍舞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었다
조선시대 1848년 戊申進饌圖屛 그림 일부
위에는 劍器舞이고 아래는 牙拍舞이다
무애(無舞)는 신라의 元曉大師가 불교의 민중 포교를 위해 불렀다는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고려에서 불교가 융성했던 만큼 무애(無舞)는 아주 성행하였다
이 외에 八關會 燃燈會와 나례의식에서 연출된 百戱歌舞는 (솟대장이) (꼭두각시 놀음 ) (동물 춤) 등 있다
고려사 樂志에서 소개된 唐樂調에는
獻仙桃 抛毬樂 蓮花大 등 있다 이 唐樂도 조선시대 唐樂呈才로 전승된다
고려의 唐樂舞과 鄕樂舞를 비교하면
鄕樂舞의 특징은
첫째 敎坊 기녀를 무대로 인도하는 竹竿子가 없고
둘째 呈才 공연의 시작과 끝에 노래 부르는 한문 가사의 치어와 구호가 없다
셋째 공연 중에 기녀들이 부르는 창사의 가사가 한문이 아니고 국문이다
이것이 고려시대의 향악과 唐樂의 차이점이고 동시에 향악정재의 특징이 잘 지켜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1848년 戊申進饌圖屛의 그림 일부
오른쪽으로 抛毬樂이 공연되고 있다
抛毬樂은 고려시대 樂志의 唐樂調에 소개되고 있는 무용이다
조선시대 唐樂呈才로 전승된다
고려시대에 宋나라로 부터 唐樂呈才가 전래된 후 고려의 鄕樂呈才가 형성되었는데
이것은 宋나라의 唐樂呈才의 형식을 참작하여 고려의 전통 무용을 주제로 하는
고려 형식의 鄕樂呈才가 새롭게 탄생되고 있었던 시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신라 이래 고려로 전승되고 있었던 處容舞 劍舞 등 고려의 전통 무용이 고려의 鄕樂調에
소개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즉 신라 起源의 處容舞는 고려의 八關會 등 나례의식에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던
춤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鄕樂呈才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唐樂呈才의 獻仙逃이다
좌우 무용수가 들고 있는 깃이 竹竿子이다
竹竿子는 唐樂呈才의 특징이다
1848년 戊申進饌圖屛 오른쪽 위는 處容舞이고 아래는 舞鼓이다
舞鼓는 1902년 壬寅進宴圖屛의 舞鼓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1848년 戊申進饌圖屛의 일부분 處容舞
舞鼓
舞鼓는 고려사 樂志에 의하면 고려 忠烈王(재위 1274년~1308년)에
李混이라는 者가 좌천되어 寧海에 갔을 때 바다 위에서 뗏목을 얻었는데 그 뗏목으로 큰 북을 만들어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크고 웅장하였는데 그 鼓의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舞鼓는 고려시대 부터 전해오는 鄕樂의 하나다
춤의 형식은
북채를 손에 들고 북을 치는 사람 (元舞)와 元舞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는 사람 挾舞로 나눈다
元舞가 북채를 손에 들고 시종 북을 에워싸며 마치 꽃봉오리 위에 날아 오르는 나비 처럼 어르고
두드리며 돌고 있는 동안 挾舞는 三枝花를 두 손에 들고 그 둘레에서 춤을 춘다
원래 2명이 추는 춤이었는데 조선시대 樂學軌範에 의하면 2명 4명 8명 그때 그때 鼓의 숫자와 舞員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하였다
舞鼓는 井邑詞의 노래에 맞추어 추는 화려한 춤이다 라고 전하고 있는데
井邑詞는 백제 때 부터 口傳되어 민간에 전승된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 백제가요 )이다
고려시대 樂志 (三國俗樂條)의 百濟俗樂條에 井邑詞에 관한 기록이 있고
1493년 조선시대에 편찬된 樂學軌範 권 5 時用鄕樂呈才條에 井邑詞는 動動 處容歌와 함께 고려가요에 실리고 있다
處容舞
高麗史節要권 16
1236년 2월 15일 (음력)
壬寅 內殿에서 소연 (曲宴)을 열었는데 承宣 蔡松年이 아뢰기를
僕射 宋景仁이 평소 處容戱를 잘합니다 라고 하였다
宋景仁이 술에 취해 處容戱를 했는데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處容舞는 고려시대에 까지 1인이 추는 춤이었으나
조선시대 世宗 때에 와서 5인이 춤을 추는 형태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