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1966년 남산에서 쌀나라 군사가
촬영했던 사진을 알기 쉽게 붙였습니다.
서대문의 안산을 시작으로 인왕산 북악산 낙산의 순서입니다.
빨간 圓內 명동 성당이 확인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사용해야 할 사진이지만 일단 미리 올려 놓습니다.
물론 아직 코멘트는 하지 않습니다.
일본측의 반증을 봐야 알겠지만 영원히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하시는 몇 분께 정중하게 여쭙니다.
각자 생각하고 주장하시는 위치에서 오른쪽의 건축물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저는 명동 성당설을 주장하는 입장이라 내 맘대로 해석해도 괜찮겠죠?
물론 틀릴 경우에 맴매를 하시면 궁뎅이를 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와 각별했던 왜란중 민정.군정의 최고 관직을 지냈던
유성룡 역시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유성룡의 외증손 윤유기(尹悠期)라는 분이 계십니다.
관찰사를 지내신 분으로 정철·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인 윤선도의 백부이자 양부입니다.
윤선도는 워낙 유명해서 그냥 넘어갑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윤선도의 집터를 알고 계십니까?
서울 명동성당 입구 바로 아래쪽에 ‘윤선도 집터’라고 적힌 표지석이 서 있는데 그곳에 가사문학의 대가 윤선도가 여덟 살 때 양자로 들어가 살았던 숙부의 집이 있었다. <동국여지비고>에 ‘윤선도의 집은 명례방 종현(鐘峴)에 있다. 주춧돌에 먹으로 쓴 ‘여산부동(如山不動)’이라는 네 글자가 있어, 바람과 비에 씻기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비고는 집터가 ‘연소형(제비집 형국)’이라 기록하며 풍수지리상 명당이었음도 함께 전하고 있다. 명례방이란 지금의 서울 명동이고, 종현은 명동성당 고갯길을 말한다. 한 분 더 소개합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십니다. 선생의 집안은 엄청난 벼슬가 입니다. 또한 엄청난 재산가 입니다. 우당의 六형제가 함께 살았던 집터가 윤선도의 집터와 바로 붙어 있습니다. 뭐 심심해서 만든 자료입니다만 신경쓰지 마시고 time kill 의미로 읽어 주세요.
이것은 분명 놀이 입니다. 여러분도 놀이를
즐기는 마음으로 웃으며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솔직히 겨우 이만큼 만들고 귀찮아 졌습니다..
일단 확인을 눌러 thread를 종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