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개의 기원
노리개의 기원은 삼국시대 요패(요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요패는 上衣에 허리띠를 두르고 그 허리띠에 여러 종류의 장식을 다는 것이다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上衣의 저고리 길이가 짧아져 삼국시대에는 허리에 묶았던 것을
조선시대에는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 허리에서 묶게 되었다

이 노리개는 고려시대 노리개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의하면 고려시대 귀부인들은 허리띠에 금탁(金鐸) 금향낭 (金香囊)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름다운 오방색과 바느질의 흔적이 남아있는 바늘집 노리개이다
18개의 직물이 조각 조각 엮여 있고 직물에는 금실(金絲)의 자수(刺繡)무늬가 새겨져 있다
충남 청양 장곡사(長谷寺)의 불상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배 속에서 발견되었다
노리개가 발견된 불상 (금동약사여래좌상)은 14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노리개
한복의 저고리 고름(上衣 옷 자락을 고정시키기 위해 묶는 끈)에 매달거나 치마허리에 묶었던 장식품이다
單作 노리개는 1개의 노리개를 말하는 것이고 ,노리개를 3개 묶어 장식한 것은 三作노리개, 5개를 묶어 장식한 것은 五作 노리개 라고 한다
노리개는 짝수로 엮어 장식하지 않고 홀수로 엮어 장식한다
노리개는 실용적 목적의 노리개가 있고 장식용이 목적인 노리개가 있다
1..실용적 노리개
실용적 노리개에는 <장도(粧刀)노리개> ,<침통(鍼筒)노리개>, <바늘 집 노리개> ,<향갑 노리개>등이 있다

숙명여대 박물관 장도(粧刀) 노리개
1) 장도(粧刀)노리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작은 칼인데 몸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용으로 이용되었다
장도(粧刀)노리개는 가격이 비싸 상류층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숙명 여자 대학교 박물관 . 장도(粧刀)노리개 . 조선시대
2) 침통(鍼筒)노리개 :←鍼을 넣어 다니는 것으로 응급시애 사용되었다

국립 민속 박물관 .바늘집 刺繡 노리개
3) 바늘집 노리개 :←바늘집은 바늘을 보관하기 위한 용구이다 옷감으로 만든 주머니에 바늘을 넣어 보관하는데
바늘이 녹슬지 않도록 분가루를 넣기도 한다
여성들이 바늘을 찾기 쉽고 휴대하기 편리하도록 노리개로 만들었다
바늘집 노리개는 장식용으로 되고 실용적으로도 되는 노리개

1815년 제작된 평양 기생 계월향 [桂月香]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장수 고니시 히 [小西飛]를 참수 하는데 공을 세우고 자결 했다고 한다
저고리 고름에 달린 노리개는 香匣노리개라고 한다
4) 향갑(香匣)노리개 ← 향갑은 향을 담은 匣이다 향은 사향 옥추단 목향 등을 사용했다
향기가 있는 사향 등을 약초와 섞어 반죽하여 만든 한충향(漢沖香)을 금실로 엮고 흰 말총으로 만든 집에 넣어
노리개로 만들어 휴대하기에 편리하게 하였다 향갑 노리개는 향기가 나오는 기능도 되고 응급시에 구급약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향갑의 형태는 표면이 딱딱하고 네모 반듯한 상자 형태 또는 둥근 형태의 원형이 있다
문양은 나비 박쥐 매미 석류 천도 투호(投壺), 화준(花罇), 서각(犀角 )등의 형태가 있다
2..장식용 노리개
장식용 노리개에는 ,<방아 다리 노리개>, <刺繡노리개><호랑이 발톱 노리개> <삼천주 노리개><투호 노리개>등이 있다
1) 방아다리 노리개 :←여성 소유의 농기구 방아를 노리개에 옮긴 것인데 노리개처럼 일을 사랑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2) 자수(刺繡)노리개 ←주로 서민층에서 애용되었다
어머니들의 바느질 솜씨로 옷감에 刺繡를 놓아 장식하였다
3) 호랑이 발톱 노리개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용과 함께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예리한 발톱은 나쁜 일을 막아 주고 악귀를 쫓아 준다고 믿었다
실제로 호랑이 발톱은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銀 등 재료를 사용해 호랑이 발톱 모양을 만들어 노리개의 주체로 사용하였다
4) 투호 노리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항아리를 놓고 그 항아리 안에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다
이 놀이는 궁중의 왕족이나 궁녀들도 즐겼다 항아리 안에 액(厄)을 담아 쫓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국립중앙 박물관 삼천주 (三千珠)노리개
5) 삼천주 (三千珠)노리개 :← 큰 진주로 만든 3개의 구슬을 꿰어 큰 술에 다는 노리개이다
진주는 불교에서 거대한 우주 즉 삼천대천세계를 말한다
삼천주 노리개는 왕비만 착용할 수 있는 것인데 기생들도 은밀히 사용했다고 한다

18세기 화가 신윤복 [申潤福]의 미인도
노리개를 만지고 있다 이 그림의 노리개는 조선시대 왕비만 착용할 수 있었던 삼천주(三千珠) 노리개로 짐작된다고 한다
삼천주 노리개는 왕비만 착용할 수 있는 것인데 기녀들도 은밀하게 착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기녀
오른쪽 여성 삼작 노리개를 착용하고 있다
이 사진은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취재를 위해 조선에 왔던 미국의 작가 (잭 런던)이 찍었다고 한다
참고로 신분이 높은 양반이나 궁중 여인들은 치마를 묶어 올리지 않는다
당시 조선에 왔던 서양 선교사나 기자 작가들이 찍은 여성 사진은 대부분 서민이거나 기녀 사진이다
양반 부인들은 외출을 잘 하지 않았고 .또 외국인 남자들을 보면 도망을 가거나 피했기 때문에 말을 걸거나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고 한다
드믈게 양반집 부인들을 만나도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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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
노리개 패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머리에 화관을 쓰고 노리개를 착용한 여성2명은 기녀라고 한다

1912년`1913년 평안북도 자성군의 여성들

엘리자베스키스의 그림 조선의 공주

대한제국 ,영친왕비 단작(單作)노리개
왼쪽부터 1 ,<밀화불수노리개> 2. <백옥 雙나비 노리개 > 3 <산호 노리개>
영친왕비 단작(單作)노리개
왼쪽부터 1. <밀화 불수 (蜜花 佛手) 노리개> . 2 <백옥 雙나비 노리개 > 3. <산호 노리개>
1. 蜜花 佛手 노리개
佛手가 주체가 되는 단작 노리개
밀화(蜜花)를 사용하여 佛手 형태로 만들고 그 불수(佛手)위에 모란과 박쥐 2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상부에는 도금된
은을 망사 기법으로 만들고 뚜껑 처럼 덮었다
뚜껑 부위에는 양쪽면에 매화 2개씩 잎사귀를 표현하였다
매화는 여러 겹으로 표현했는데 아래 표현된 매화는 금속판을 만들고 그 위를 비취모(翡翠毛 : 물총새의 털 )로 장식하였다
위에 표현된 매화는 망사 기법으로 처리한 후 중앙에 작은 산호를 붙였다
밀화(蜜花) 밀쪽으로 퍼진 잎새에는 비취모(翡翠毛)로 장식하였다 띠돈에는 백옥판(白玉板)에 정면을 향한 용을 투조하여 넣었다.
매듭은 궁중에서 주로 쓰이는 끈목노리개로서 두록색 끈으로 양생쪽 매듭. 도래 매듭 , 생쪽 매듭 ,양생쪽 달린 가지 방석 매듭을 넣었다
매듭의 끝은 금사(金絲)를 돌린 가락지로 마무리 지었다. 매화 중앙에 붙여 있던 산호 1개는 결실된 상태이다.
2,,白玉 雙나비 노리개
나비 형태가 투각된 백옥판(白玉板) 2개를 上下로 연결하여 만든 노리개이다
위에 얇은 금속판을 투조 등 기법으로 나비의 몸체와 날개를 1개를 만들어 붙였다
나비의 몸은 공작석(孔雀石)과 산호를 영지(靈芝)형태로의 난집으로 감입하고
그 사이는 금속의 화형(花形)장식을 붙이고 비취모(翡翠毛 : 물총새의 털 )로 장식하였다
가슴 위 아래로 靈芝 형태를 만들고 작은 진주로 눈을 박았다 양쪽 날개 끝으로 퍼져나간 5조 선에 翡翠毛로 장식하였다
몸체 윗부분의 눈은 아주 작은 진주 2개를 부착하여 표현하였다
날개의 네 모서리에 천연의 큰 진주 2개와 작은 진주 2개를 부착하여 장식하였다
매듭은 궁중에서 주로 쓰이는 끈목 노리개로서 백옥 쌍용문 노리개와 같이
양생쪽 매듭 ,도래 매듭, 생쪽 매듭, 양생쪽 달린 가지 방석 매듭을 넣었다.
매듭의 끝은 금사를 돌린 가락지로 마무리를 지었다
3.산호 노리개
가지가 이중으로 되어있는 천연 산호의 모양을 이용하여 만든 단작 노리개이다
산호에는 개화 이전 매화나무를 양각하였고, 산호의 윗부분은 은을 두들겨서 용 머리를 만들어 씌우고
그 끝을 매듭 술(流消)에 연결시켰다.
띠돈 (帶金)에는 커다란 진주를 끼워 장식하였다.
매듭은 궁중에서 주로 쓰이는 끈목노리개로서 두록색 끈으로
양생쪽 매듭, 도래매듭, 생쪽 매듭, 양생쪽 달린 가지 방석 매듭을 넣었다. 매듭의 끝은 금사를 돌린 가락지로 마무리 지었다

영친왕비 大三作노리개
三作노리개는 크기에 따라 大三作 노리개 中三作노리개 少三作노리개로 구분한다

국가 무형 문화재 제22호 매듭 匠人 정봉섭의 작품 銀연화 三作노리개
매듭은 실이나 끈을 엮고 맺고 짜고 끝에 술(여러 가닥의 실을 늘어뜨리는 것)을 장식하는 전통 수예품이다
이런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매듭匠 이라고 한다
매듭은 염색하는 것 부터 시작된다
여러 가닥의 실을 꼬아 만든 끈을 <끈목>이라고 하는데 이 끈목을 짜려면 명주실이 끈 틀에 앉혀지기 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먼저 生絲를 비눗물에 삶아 깨끗이 헹구고 견고질을 빼내고 그늘에 말린다 이 과정을 정련(精練)이라고 한다
정련한 한 비단실을 염색하는데 잇꽃 지치 쪽 꼭두서니 치자 칡 명아주 蘇方木 대추나무 金錢花 팥 등
여러 꽃이나 뿌리 잎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한다
견고질이 빠지면 물레로 조심스럽게 풀어 각양각색으로 염색한다
염색을 마친 실은 식초에 담가 색이 변질되지 않게 한다 그 다음 엉킨 실을 풀어낸다

매듭 만들기
풀린 명주실을 머리카락을 땋는 듯 손으로 하나 하나 겹쳐 올리면 끈목이 된다
매듭은 하나의 끈으로 세마디 이상 교차점을 이루며 반복 형태로 맺는 것으로 격답 또는 결자(結子)라고 한다
여러가지 색실로 만든 끈목으로 매듭을 맺고 그 끝에 술(여러 가닥의 실을 늘어뜨리는 것)을 장식하는 流蘇가 있다
여러 가닥의 실을 꼬거나 짠 끈목은 매듭의 가장 기본 재료이다
폭이 넓고 납작한 것은 <廣多繪>라고 하고 끈의 모양이 둥근 것은 <圓多繪>라고 한다
多繪라고 하는 것은 매듭에 사용되는 다양한 線이 합사되어 매듭의 재료가 되는 것으로한자를 풀이하면 많은 실이 모여 그림을 이룬다는 뜻이다
廣多繪는 날줄에다 씨줄로 무늬를 놓아 직조하는데 끈 보다 띠로 이용된다 매듭은 한 올의 끈목을 반으로 나누어 그 중심을 잡아 두 가닥으로 얽어 놓는다
끝이 날카롭지 않은 송곳으로 질서있게 조이고 쓰이는 용도에 따라 오색 영롱하게 엮어간다매듭은 옷을 여미는 단추, 도포 끈,주머니 끈. 등을 만드는 의복용과 가마 수레 악기 상여 깃발 띠 책상보 옷 따위에 다는 장식용으로 나누어진다 매듭에는 명주실 모시絲. 닥나무絲, 삼베絲.등이 쓰이고 이 끈애 색 굵기 맺는 방법에 따라 33종이 있다
조선시대 궁중에는 매듭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匠人을 두었는데大典會通 공전편(工典編)을 보면 매듭을 하는 匠人을 每緝匠이라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每緝匠은 京工匠에 속해 있었고 工曺 京工匠에 매듭匠을 2명 尙衣院에 매듭 匠을 4명 총6명을 두었다
국가 무형 문화재 제22호 매듭匠 기능 보유자 (정봉섭)선생은 초대 매듭匠 보유자이고 그의 부친 (정연수)선생과 모친 (최은순)선생으로 부터 매듭 일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매듭匠 정봉섭의 작품 .銀三作 비취 노리개
예전에는 매듭匠 중에 남성들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가마 연 깃발 상여 등에 장식하는 유소(流蘇)는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어서 여성들에게는 힘든 일이였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가느다란 실 가닥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힘든 일이고 아주 꼼꼼하게 해야 하는 힘든 일이 매듭을 만드는 일이다
길이가 20cm정도 한복의 노리개를 만드는데 약 10일에서 15일 정도 날짜가 걸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