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가야 토기의 범위는 영남지역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신라 서쪽은 가야로 분류된다
신라와 가야 토기는 회갈색 경질토기 [灰褐色 硬質 土器 ]와 적갈색 연질 토기 [赤褐色 軟質 土器 ]
가 있고 대표적으로 굽다리 접시와 그릇 받침 [器臺 ]이 있다
신라는 辰韓12개국의 小國의 하나 사로국 [斯盧國]이 중심이 되어 주변국을 병합 하면서
성장했고 가야가 멸망할 때 까지 신라의 지배 세력이 확장되는 지역으로 토기가 신라 양식으로
통일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가야 토기는 4세기를 기준으로 1~3세기를 前期 4~6세기를 후기 라고 나누었을 때
前期는 웅천 [熊川 ] 조개무지의 토기가 중심이 되어 熊川期 라고 하며
적갈색의 연질 토기 [赤褐色軟質土器 ]와 와질 [瓦質 ]토기가 만들어졌다
4세기에 이르러 와질계 [瓦質系 ] 토기가 쇠퇴하고 회갈색의 경질 토기 [灰褐色硬質土器 ]로
대체되는데 굽다리 접시 항아리 등 다양한 토기가 제작된다
가야 토기는 일반적으로
4세기 이후에 새로운 제도술에 의해 섭씨 1000도 이상 온도에서 구워낸 단단한 질의
도질토기 [陶質土器 ]를 말한다
가야는 독립된 여러 왕국으로 발전한 나라인데 금관가야는 가야의 중심을 담당했고 영역은
김해[金海] 부산 창원까지 추정한다
금관 가야는 영남권 지역과 다른 독특한 토기 문화권을 형성 하는데
대표적 토기는 화로形 토기이다
금관가야 화로형 토기 바리 부분에 손잡이가 달려 있고 표면에 다양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시대와 지역을 잘 반영하고 있는 굽다리 접시도 금관가야는 다른 가야 지역과 다른 양식을
보인다

경남 함안 아라가야 [阿羅伽耶 ]
불꽃 무늬 굽다리 접시

아라가야 [阿羅伽耶 ]원통형 그릇 받침
신라와 가야 토기의 차이점은
우선 가야 토기는 화로형 그릇의 받침 둥근 항아리에 높은 대[臺]가 달려 있고 항아리의
굽이나 입은 각각 위 아래로 벌어지고 몸체는 납작한 곡선을 이루는데
신라는 직선을 이룬다
또한 대에 뚫린 구멍 투창 [透窓]은 가야는 세로 방향의 일직선 이지만
신라는 투창 구멍이 上下 어긋나 있다

가야 굽다리 접시


上下 투창 구멍이 어긋나 있고 뚜껑에 토우가 장식되고 있는 전형적 신라양식의 굽다리 접시
신라 토기와 가야 토기는 서로 비슷한 모양으로 발전 하지만
4세기말 5세기초가 되면 가야式 토기 신라式 토기의 각각 특색이 나타난다
가야는 신라에서 흔하지 않은 동물 모양 오리 등 수레바퀴 등잔 신발 모양 등 상형 토기와
기마 인물형 토기 뿔잔 토기 등 무덤 부장품 용도의 토기 등 종류가 다양하다
용도에 따라 토기 색깔이 달랐는데



아라가야 [阿羅伽耶 ]굽다리 잔[盞 ]

금관가야 굽다리 접시
실생활에 사용하는 것으로 항아리형 바리 시루 등 음식을 끓이는데 사용하는 토기는
적갈색 [赤褐色 ]연질 토기가 사용되고
음식을 저장하는 용도의 굽다리 접시는 회갈색 [灰褐色 ]경질토기 [硬質土器 ]가
사용된다
또한 공헌용의 소형 항아리나 잔은 적갈색이 많다
가야는 지역에 따라 그릇 모양 무늬 등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이면서 발전하였다
손잡이 잔 등 다양하고 실용적이고 세련된 가야 토기는
5세기에 전성기 라고 할 수 있는데 5세기말 신라세력의 확장으로 점점 신라양식의
토기로 흡수 되었다
이러한 가야 토기는 원삼국시대의 회갈색 경질토기 [灰褐色硬質土器 ]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 쓰에키 [須惠器]토기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