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赤峰市]에 인접한 산의 이름을 몽골인들은 우란하따 라고 부르는데
붉은 산을 의미한다
이 붉은산 인근에 학계를 놀라게 했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거대한 신전 제단 적석총 [積石塚]
즉 돌무지 무덤 등 신석기 후기 문화가 발견된 것이다
연대는 기원전 4700~2900년으로 추정하며 채도와 세석기 [細石器]의 특징을 가진
이 문화는 紅山後를 기념해 1954년 紅山문화라고 명명되었다
細石器 -살촉으로 사용하며 몇개를 맞추어 나무 뿔 뼈 따위 자루에 끼워 연장으로 사용했다
채도 -진흙으로 만들고 붓으로 그림을 그린 토기
홍산문명은 한민족의 시조 [始祖]문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한국과 중국 학자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는 가운데
홍산문화를 통해 본 동북아시아 민족기원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중국측
타라아 내몽골 자치구 고고학 연구소장이 우하량 [牛河梁]유적의 발견과 고고학적 가치에 대해
텐광린 랴오닝 [遙寧]사범대 역사 학원장이 홍산문화와 중국 용신 [龍神]에 대한 숭배를
쉐즈차앙 大連대학 교수가 흥룡와 [興龍窪]문화와 홍산문화와 관계를 설명했다
용을 본떠 만든 비취 구슬로 부터 현재 중국에 연결되는 문화와 종교적 존재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측
국학학술원 김호일 원장은 홍산문화의 옥기[玉器]와 적석총 [積石塚] 비파형 동검 [琵琶形銅檢 ]
등 예를들어 동이문화권으로 설명
권태원 교수가 중국동북지방과 고대 한민족의 동이족 문화권 문제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통해
중국 동북지방의 만주 대평원에서 발원하고 태양을 숭배하여 큰 규묘의 石塚문화권을 형성한
고대 한민족은 고조선 및 부여[夫餘]를 비롯해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고대 일본까지
동일계 민족에 의해 동일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적석총[積石塚]-지면에 구덩이를 파거나 구덩이 없이 시체를 놓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묘역으로
만든 무덤
고구려는 건국초기부터 적석총 무덤을 조성했는데
압록강 [鴨錄江]지류 혼강 [渾江]유역의 요령성 [遙寧省] 환인현[桓仁縣]지방
압록강 남안 독로강 [禿魯江]유역의 時中郡 자성군 [慈城郡] 위원군 [渭原郡]등 에 군집되고 있다
한강유역의 백제초기의 적석총은 고구려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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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비파형 동검 중앙 세형[細形]동검 오른쪽 중국식 동검
비파형 동검과 세형동검은 칼 몸체와 손잡이가 분리되어 별도로 제작되어 조합하는
것이고 중국식 동검은 칼 몸체와 손잡이가 하나로 제작되고 있다
비파형 동검은 비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요령식 [遙寧式]동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작 연대는 기원전 10~9세기 정도로 보는데 고조선 사회와 관련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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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에서 발견된 비파형 동검 제작연도 기원전 10~9세기로 추정한다
중국 동북지방의 요하 [遙河]를 중심으로 요령 [遙寧]지방과 한반도에 걸치는 청동기
문화권과 일치하며 중국 서남부 황하 문명과 다른 한민족인 예맥족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세형[細形]동검은 주로 한반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 동검 [琵琶形銅劍]이 변화한 것으로 본다
다만 요서 [遙西]일대에 보이는 북방 및 중국 청동기 문화의 지리적 종족적 구분은 이후 많은
자료의 축적과 함께 검토가 요구되지만
최근 한반도에서 80점 가량의 많은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고 있고 이것이 또한 청동 도끼의 거푸집과 함께 세트를 이루어 출토됨에 따라 한반도에서 직접 비파형 동검이 제작되었던 것이
입증되었다
홍산문화의 주된 유적은 요하 [遙河] 상류의 지류[支流]인 한수 [漢水]및 토하 [土河]유역에
퍼져있고 발견된 석기는 대부분 농기구로 농경사회가 바탕이었던 것 같다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되고 있어 단군신화 속 곰 토템을 지닌 고조선이
자리했던 곳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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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견된 玉으로 만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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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곡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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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금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