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신라 구원전의 남하 루트를 군사전략의 관점에서 새롭게 추정을 해보았다.
임나는 전라도 지역에 존재했던 倭이며, 가라는 경상도 남해안 지역에 존재했던 국가이다. 임나가 출현을 하여 가라를 합병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신라가 포위를 당한 것으로 해석이 되어지면 바람직하다. 신라 내물왕이 이때 고구려로부터 구원을 요청을 한 것이며,
광개토 대왕이 이 요청을 받고 남하하여 신라를 구원하고 임나의 본거지인 종발성까지 추격을 해서 倭를 궤멸을 시켰다고 보면 가장 바람직하다.
광개토 대왕은 두개의 병력으로 쪼개어 서북방 방면으로 남하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1군이 경남 남해안 루트를 따라 남하, 2군은 서해안 방면으로 남하하여 양군이 전라도에서 함께 집결을 하여 임나를 쳤던 것으로 본다.
이때의 침공으로 인하여 임나의 대형옹관묘 세력이 그 자취를 감춘다.
이후 한성백제의 등장시기에 신라가 임나의 땅을 倭에게 동맹의 조건으로 할당을 해주어 倭가 다시 들어올 수 있게 되는데, 이 때 출현한 세력이 전방후원형이다.
전라도 지역의 전방후원형 세력은 AD470년 이후부터 출현하며, 멸망한 시기는 AD 540~550년경으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신라가 관산성전투에서 전라도의 임나를 쳐서 멸망을 시켰기 때문이며, 이 이후로 한반도에서 倭는 영원히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전방후원형 이후로 전라도 지역에서는 신라와 백제, 어느 쪽의 유물도 출현하지 않게 되는데, 이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신라가 전라도의 임나 지역을 친 배경에는 영토 획득이 목적이 아닌 살인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