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사이티미현 삼호정 (衫戶町의 고야태역 (高野台驛) 근처에
일본 최대 인쇄소의 하나 철판 인쇄 주식회사의 종합 연구소가 있고 연구소에는
인쇄 사료관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의 무라카미氏가 제공한 자료에는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1616년 제작의 준하판 (駿河販)활자가 조선에서 전래된 銅활자를 배워 제작되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었다
1616년은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패태하고 8년이 안되는 시점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死後 패권을 장악한 덕천가강 (德川家康)이 은퇴 후 靜岡의 駿府城에
은거하면서 준하판 銅활자를 제작한 것이다
德川家康은 林道長을 감수자로 하여 1615년 大藏一覽 11책 群書治要50책을 간행했는데
당시 사용한 활자가 준하판 銅활자를 사용했다는 것

1677년 현종실록을 간행하기 위해 제작된 銅활자 국내에 남아있는 금속활자 가운데
제일 오래되었다
德川家康은 조선에서 전래된 銅활자 제조를 1616년에 배워 책을 인쇄하는데 사용했다
그가 만들었던 銅활자는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일부 잔존해 오던 것을 남규 문고에 보관해
오다가 1946년 철판 주식회사에서 소유하게 되었으며 1962년 중요 문화재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중요 문화재가 된 준하판이 나오기 까지 많은 조선의 금속활자가 임진왜란 기간 중에
탈취되어 왔다

책이 가득한 조선시대 양반 집
科擧제도로 선비에게는 책은 필수
일본의 무장들은 원래 활자나 책에 관심이 없었는데 당시의 일본의 지식인 이라고 할 수 있는
승려들이 조선이나 중국을 왕래하면서불법을 배우며 활자와 책이 문화의 기본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의 금속활자 약탈의 배경에는 통역이나 참모 역할을 하던 승려들이 있었다
이것들 승려는 도요토미의 참모였던 교토의 相國寺의 승려 西笑承兌 東福寺의 승려 永哲
安國寺의 승려 惠瓊 등 있다
특히 惠瓊은 조선으로 직접 건너 서적과 활자 약탈을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의 활자를 약탈한 일본은 인쇄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宇喜多秀家
경복궁 교서관 주자소에서 인쇄기를 약탈한 장본인
임진왜란 당시 한성부 경영 사령관이던 성주 宇嬉多秀家는 경복궁 교서관의 주자소에서
금속 활자와 인쇄기를 약탈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고 도요토미는 다시 활자와
인쇄기를 일왕 後陽城에게 헌상했는데
일왕은 1593년 교토 사찰 西洞源의 승려 시경 (時慶) 등 12명에게 故文孝經을 인쇄하도록 하였다
조선이 이미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를 인쇄했던 전통을 이어 받아 1403년 조선組 최초 銅활자
계미자 (癸未字)를 주조했고 세종 시대에 큰 글씨와 작은 글씨를 결합하는 조판법을 발전시켰다
당시 조선의 인쇄술의 기술은 일본에 크게 앞섰다
德川家康은 조선의 활자와 인쇄 방법으로 유학 관련 서적들을 대량으로 배포하려 했지만
기술 부족으로 銅活字는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木활자를 이용하여 조선의 책을 번역해서
藩의 교과서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서적 보급으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오면 일본의 지식인들은 그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부터 인쇄술의 전래가 있었던 것이다

준하판 (駿河販) 활자
조선의 銅활자 제조법으로 만든 금속활자
일본의 기술자들이 조선의 활자로 인쇄를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油性의 먹(墨)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銅활자를 본받은 木활자를 제조하여 水性의 墨으로 인쇄하였다
조선은 油媒墨의 개발이 이루어져 그 기술은 중국을 능가하였다고 한다
駿河版을 이용해서 인쇄한 群書治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