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漢시대 채륜 (蔡倫)에 의해 발명된 제지 기술이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서기 285년 백제 王仁 박사가 한자와 논어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넌 무렵 부터 라고
짐작되고 있다
일본에 제지 기술이 전해진 것은
서기 610년 고구려 승려 曇徵에 의해 전해졌다고 하는데
담징 (曇徵)이 채화 및 맷돌 종이 墨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고 그 제지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일본 正倉院에는 신라의 종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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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문양 도배지 목판인쇄
충청도 외암리 민속 마을의 사랑방에서 나온 도배지
그런데 구마모토의 제지 기술은
1598년 임진왜란 당시 加藤淸正에 의해 조선에서 끌려 왔던
道慶 慶春 道勤 형제에 의해 전해졌다고 한다
道慶이 작업했던 곳은 구마모토의 玉東町에 있는 浦田谷이고
동생 慶春이 작업했던 곳은 구마모토의 鹿北町의 川原谷이다
浦田谷에는 道慶의 직계 후손 木本씨가 道慶의 묘를 지키고 있다
道慶의 묘비는 높이가 1m 정도로 비석 정면에는 休譽道慶居士靈位 라고 쓰고 있고
오른쪽에는 木本道慶妾碑라고 음각된 부인의 묘비가 있어
道慶이 일본에서 木本이라는 姓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道慶 형제가 일본에 와서 처음 정착한 곳은 구마모토의 淸水龜井町이었는데
이 곳은 물이 나쁘고 닥나무 사정이 좋지 않아
道慶은 1615년에 浦田谷으로 이주하였고 동생 慶春은 4년 후 鹿北町의 川原谷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鹿北町의 川原谷 사람들은 慶春을 기다려 맞이하였다
이 지방 사람들이 그를 기다려 맞이했던 이유는
당시 농민들은 지정된 곳 이외에는 농작물을 심을 수 없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웃 浦田谷 마을이
道慶에 의해 전파된 제지 기술로 농민들은 일정한 수입이 생겨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등
농민드의 생활이 좋아지자
이것을 부러워한 川原谷의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자 慶春의 이주를 기다려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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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春을 환영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마을 입구에서 기다렸다는 유래에서
慶春碑가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도 제지 기술을 전해 주었던 은혜를 잊지 않고 매년 12월 7일 慶春祭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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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春碑는 높이 약 1m에 아래 폭이 80cm크기의 비석인데
오른쪽에는 寬永10년 (1633년) 高麗國之住라고 쓰고 있어
慶春이 1633년에 사망한 조선인 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옆에 높이 1m의 말뚝에는 加藤淸正이 조선으로 부터 데리고 왔던 제지 기술자
慶春의 묘로 지금도 祭를 지내고 있다고 쓰고 있다
뒤에는 이 묘비가 鹿北町의 문화재라고 밝히고 있다
九州의 제지업 성전결영저 (成田潔英著) 웅본현사 (熊本縣史)에 따르면
九州의 제지업은 1598년 加藤淸正에 의해 조선에서 온 道慶 慶春 형제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막내 동생 道勤은 제지 기술 뿐 아니라 토목 기술자였는데
가토 기요마사 (加藤淸正)을 수행하여 용수로를 파던 중에 큰 바위가 떨어져
익사하였다고 한다
川原谷에는 아직 이 저수지가 있는데 (道勤淵)이라고 부른다
특히 道慶이 만든 종이는 浦田紙라는 고유 명사로 일본 제지 역사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