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廣州의 廣州窯는 司饔院의 분원으로 중앙 館窯였고 백자 가마터의 핵심이었다
廣州窯에서 생산된 上品의 백자는 우수한 태토와 유약을 사용해 갑발에 넣어 제작되어
형태와 색이 우수하여 갑번 (甲燔)이라고 불렀고 주로 왕실용이었다
上品의 백자는( 세종실록 )에 의하면
경기도 廣州의 樊川里
경북 상주군의 2곳 北秋縣里 已未常里
경남 고령군의 曳峴里 등 있다
조선왕조 太祖는 건국 초기 부터 전국의 가마터를 조사하여 정비하였다
조선 초기 형성된 백자 가마터의 분포 지역
廣州窯의 우수한 백자는 점점 지방으로 퍼져 전국으로 확대되었다ㅏ
(세종실록)에 의하면
전국에 磁器所 139개 陶器所는 185개소 라고 한다 소재 품질 등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 백자는 화려한 예술품으로 평가되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만큼 조선 백자는 기능성이나 실용성에 더 중점을 두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백자가 일상 생활 도구로서 활용되는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조선시대 화장품을 담은 화장품 用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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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화장하고 있다

등잔
그림 아래에 등잔

水盤
조선 후기 주막 풍경
여러 종류의 도자기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