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에 조선인의 코와 귀를 묻은 무덤이 있다고 한다
그 무덤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왜군들이 조선인 12만 6천명의 코와 귀를 자르고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보낸 것을 묻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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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무덤 (코 무덤)]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다
이 무덤은 16세기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한 이른바 분로쿠 (文祿) 케이쵸 (慶長)의 役( 한국역사에서는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1592년
~1597년 )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 부터 전공 (戰功)의 표식이었던 적국의 목 대신에 조선 軍民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戰功品은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 매장되어 공양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까지 전해오는 귀 무덤 코 무덤의
유례이다
귀 무덤 코 무덤은 사적 오토이 토성들과 함께 교토에 현존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련 유적들의
하나이며 무덤 위에 세워진 오륜 석탑은 1643년에 그려진 그림 지도에도 이미 그 모습이 나타나
있어 무덤이 축조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건되었다고 추정된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서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 무덤 코 무덤은 戰亂으로 입은 조선인들의 수난의 역사로서 오늘날 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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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안내문 내용에서 더 들어가 봅시다
당시 왜군은 戰功의 보고를 위해 조선인의 머리 대신에 코를 베어 본국 일본으로 보냈는데
그 數가 늘어나자 코와 귀를 베어 소금에 절이고 헌상했다고 한다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귀는 2개이지만 코는 1개이므로 머리 대신 코를 베어 오라고 명령했다
왜군 1명당 코 3개씩 할당되었으며 吉川廣家가 거느린 왜군 5000명은 1만 8350개의 코를 잘라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왜군 장수 오오가와우치 히데모토가 쓴 일지 (朝鮮物語)에 의하면
戰果 보고에 혈안이 된 왜군이 동료 전사자는 물론 살아있는 조선인의 코를 베어 함께 보냈을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 무덤은 원래 코 무덤이었는데 너무 잔인하게 들린다고 해서
에도시대 유학자 林羅山이 귀 무덤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한글 안내문으로
....戰功品은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이 곳에 매장되어 공양의식이 거행되었다 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왜군들이 조선인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이고 일본으로 보낸 목적이
전쟁으로 사망한 조선인을 공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오해될 수 있겠습니다
공양을 목적으로 조선인의 코를 베어 무덤을 조성했다는 것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조선인의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낸 사실이 빠져 있고
또 근처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는 神社가 있어
애초에 코 무덤을 조성했던 당시에는 후손들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영웅으로 하여
선조들의 戰功을 자랑스럽게 알리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부산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발굴된 유골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東萊城)전투에서 희생된 조선인의 유골입니다
어떤 이는 조선의 킬링필드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선조 1592년 4월 15일 동래성에서 왜군의 침략에 사망한 조선인이 5000명이 넘는다고 하였다
또 남원성 (南原城) 진주성 (晉州城)전투가 치열했는데
조선인들은 왜군을 코와 귀를 베어가는 괴물이라는 뜻으로 耳鼻野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가 울면 耳鼻野가 온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아이가 위험한 곳에 노출되면 저지하는 수단으로 耳鼻野라고 외치기도 하는 ..
이 耳鼻野는 현재 경상도 전라도 지역에서 아직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