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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단 小銃 (Berdan rifle)
아관파천 이후 일본 세력은 축소되었고 대한제국은 실질적으로
이 시기에 러시아와 일본의 상호견제 속에 군사력을 증강합니다.
즉 이 시기 이후의 병기가 大韓帝國軍 주력 병기이며
韓日倂合 이후 독립 운동에 사용된 병기들입니다.
新式軍의 교관을 파견하고 있던 러시아에서 탄약 693상자와 함께 3000挺의 無償供與를 받고
수입 물량을 합해 6000挺 이상을 보유합니다.
(Wikipedia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Berdan_rifle )
실질적으로 大韓帝國軍의 주력 小銃입니다
諸元
製作國: 러시아
製作者: 히람 베르단
製作年度: 1868년(Berdan I), 1870년(Berdan II)
口徑: 10.75 mm x 58 mm
무게: 4.2kg(I), 4.3kg(II)
전체 길이: 1346mm
銃身 길이: 826mm
裝彈數: 1發
발사 속도: 分當 10發
유효 射距離: 284m(I), 364m(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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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ser1871 小銃 (Mauser model 1871 rifle)
대한제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대되자 대한제국은 다른 무기 供給處를 원합니다.
대한제국은 중립국인 독일에 小銃 구입을 의뢰하였고 Mauser M1871 小銃을 直輸入하였습니다
탄약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購入量은 최소 2~3000挺,
최대 5000挺 내외로 추정됩니다.
諸元
製作國: 독일
製作者: 폴 폰 마우저
製作年度: 1870년
口徑: 11 x 60 mm R
무게: 4.5kg
전체 길이: 1350mm
銃身 길이: 855mm
裝彈數: 1發
발사 속도: 分當 12發
유효 射距離: 350m

레밍턴 롤링블럭 M1867 小銃 (Remington RollingBlock M1867 rifle)
普佛戰爭에서 프랑스가 대량 구입하였고 辛未洋擾때 미국 해병대가 사용했던 小銃입니다.
1884년 小銃과 군수품이 특정 국가에 隸屬化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3~4000挺 이상을 도입했습니다.
乙未事變[명성황후 弑害]때 [侍衛隊]가 일본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小銃입니다.
諸元
製作國: 미국
製作者: 미국 레밍턴(社)
製作年度: 1867년
口徑: 12.17x44 mm rimfire (original rifle)
무게: 4.3kg
전체 길이: 1355mm
銃身 길이: 951mm
裝彈數: 1發
발사 속도: 分當 7~9發
유효 射距離: 400m

구한말 조선 군대의 병력 규모
侍衛隊
1895년(高宗 32年) 5월 25일 勅令 120號의 반포에 따라 편성된 군대로, 軍部大臣의 감독 아래 宮內의 侍衛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 편제는 1개 聯隊(2개 大隊), 1개 大隊(2개 中隊), 1개 中隊(3개 小隊)로 하였으며 聯隊에는 聯隊長(副領)을 비롯, 大隊長(參領) 2명, 副官(副尉) 2명, 餉官(正尉) 2명, 中隊長(正尉) 4명, 小隊長(副尉:參尉) 14명이 있었다. 이들은 兩番으로 나누어 매 3日마다 교대하여 宮內 警備를 담당하였으며, 軍樂隊도 부설하였다. 그러나 창설 3개월 후인 8월, 일본인 守備隊와 일본 폭력단이 조선군 訓鍊隊와 합세하여 명성황후를 弑害한 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산되어 訓鍊隊에 편입되었다.
高宗이 러시아 公館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中央軍을 러시아式으로 개편하면서 1897년(光武 1年) 3월 侍衛隊를 다시 설치하였다. 이 당시의 侍衛隊는 1大隊가 총원 1,070명으로 200명을 1개 中隊, 5개 中隊를 1개 大隊로 편제하였는데 1897년 10월에는 1개 大隊를 추가 편성하여 第1大隊와 第2大隊라고 하였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즉 1898년 10월 軍制를 확충, 강화하여 1大隊와 2大隊를 합쳐 시위 1聯隊로 했으며, 2개 聯隊에 砲兵大隊까지 편제하여 전투 部隊로서의 면모를 갖추었고 軍樂隊까지 두었다. 1900년 다시 侍衛獨立騎兵大隊를 창설하여 2개 聯隊와 獨立騎兵大隊로 조직하였다.
聯隊의 편제를 보면, 1개 聯隊에 2개 步兵大隊와 1개 砲兵大隊를, 1개 大隊에 4개 中隊를, 1개 中隊에 4개 小隊를 소속시켰다. 그리고 砲兵大隊는 2개의 山砲中隊와 1개의 野砲中隊로 조직되었다. 1개 山砲中隊에 3개 小隊를, 1개 野砲中隊에 3개 小隊를 소속시켰다. 1902년 10월 侍衛隊는 총 병력 5,000명으로 증강되었지만,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日帝에 의해 1905년 4월 강제로 감축되었다. 侍衛隊의 2개 聯隊를 步兵의 1개 聯隊로 줄이고, 砲兵大隊와 騎兵大隊를 각 1개 中隊로 감축시키고 軍樂隊를 폐지해 이른바 侍衛混成旅團으로 통합하였다.
親衛隊
조선 말기 왕궁의 경비를 담당했던 中央軍. 1895년(高宗 32年) 乙未事變 때 日帝가 閔妃 시해에 訓鍊隊를 동원하였다는 비난을 받게 되자 金弘集 內閣이 訓鍊隊를 해산하고, 이른바 육군 편제 강령을 반포하여 왕궁 수비를 위한 中央軍으로 이를 설치하였다.
親衛隊는 1개 大隊에 4개 中隊를, 1개 中隊에 3개 小隊를 편제한 2개 大隊를 두었는데, 1개 中隊兵力은 220人으로 총 병력은 약 1,700人이었다. 다음해 정월 工兵으로 편제된 親衛 제3大隊를 설치하였으나, 高宗의 아관파천 등 국내 정세가 불안해지자 3월에 第4~5大隊를 추가로 배치하였다. 또한 工兵隊 등을 폐지하는 동시에 3개 大隊를 합쳐 1개 聯隊로 만들었다. 4,5大隊만으로는 1개 聯隊가 되지 못하자 이를 독립 大隊로 두고, 이에 속하였던 馬兵隊를 근대적인 騎兵隊로 독립, 개편하였다. 高宗 환궁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親衛隊도 증강하였는데, 1900년에는 親衛聯隊에 다시 工兵 1개 中隊와 輜重兵 1개 中隊를 증설 配屬하여 內實을 단단히 했다. 1902년에는 2개 聯隊로 증편되었다. 각 聯隊에 聯隊長 1人, 副官 1人, 武器主管 1人, 旗官 1人이, 각 大隊에는 大隊長 1人, 餉官 2人, 副官,正校 각 1人, 副校 3人이 소속되었다. 中隊에는 中隊長 1人, 小隊長 4人, 正校,副校,參校 각 1人, 曲號隊 副校 1人이 소속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日帝는 이때 軍制 개혁의 명목 아래 1905년 군대 감축을 실시, 1단계로 親衛隊를 폐지하였다.
최신 近代式 무기로 무장한 대한제국 군대의 병력 규모
侍衛隊(5,174人) + 親衛隊(4,426人) + 鎭衛隊(15698人) = 25298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