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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1870년 조선국 交際始末內探書
조선 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을 내탐하여 오라 라고 지시한 문서
이 문서는 일본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동시에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로 확인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일본의 수로지 (水路誌)를 봅시다
1872년 일본은 해군성에 수로료 (水路寮)를 설치한다
1883년 수로료는 각국의 수로지 번역을 끝내고 세계 水路誌인 환영 水路誌를 편찬했는데
조선국 일반 정세 리앙쿠르 列岩의 발견 경위 등 내용을 상세하게 수록하였다
1886년 수로료를 水路部로 개편하고 12월에 환영 수로지를 제2권 제 2판을
발행하였다 수로지 (水路誌)를 국가 영역별로 구분하여 발행하기 시작했고 제4편에
조선 東岸편에 리앙쿠르島 列岩으로 수록하였다
1894년 11월 조선 水路誌를 최초 발행하여 제 4편 조선 東岸편에 리앙쿠르島 列岩으로
수록하였다 여기서 울릉도는 松島라고 명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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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은 독도를 리앙쿠르 라고 부르면서 이 리앙쿠르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무렵 1900년
일본의 어부들이 울릉도 독도에 들어와 벌목을 하거나 고기를 잡는 등 불법 조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본인들의 행패에 대해 대한제국과 일본이 공식적으로 공동 조사를 한다
韓日공동 조사 후 대한제국은 같은 해 1900년 10월 25일
于山島를 石島라고 개칭하고 칙령 제 41호로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竹島 독섬 (石島)를
대한제국 영토로 반포한다
대한전도
1899년 대한제국 학부가 제작한 지도 (地圖)
독도가 于山島로 표기되고 있다

1802년 일본의 古地圖
竹島 松島 조선의 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
1900년 한일 공동 조사 후
1902년 5월에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 보고서에 의하면
본도 울릉도 정동 50해리에 작은 섬 3개가 있다 속칭 리앙쿠르 라고 하는데 본방인은 松島라고
한다 라는 문구가 있다
1905년 이전 일본 정부의 리앙코島에 대한 명칭은 松島였다
그런데 일본 해군 전함 新高號 행동일지(1904년 9월 25일)에
독도라는 명칭이 나온다

일본 해군이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기 위해 事前준비로 新高號를 독도에 파견했는데
먼저 울릉도에 들러서 주민들로 부터 청취 조사를 하도록 하였다
일본 해군 전함 新高號 행동일지 1904년 9월 25일
줄친 부분
松島에서 리앙쿠르岩 관찰자로 부터 청취한 정보에 의하면 韓人은 독도라고 쓰고
본방인은 리앙코島라고 한다
독도 명칭은 울릉도 주민들의 언어와 관련된다
1938년 조선어 사전
독 dok 은 돌의 사투리 한자로 石
행정지명으로 독도는 于山島 石島 독도 순서로 표기되었다
대한제국 당시 행정지명으로 독도라는 명칭은 1906년 鬱陵 郡守 沈興澤의 보고서에 나온다
심흥택 (沈興澤)이 울릉도에 갔다가 울릉도를 방문한 시마네현 관리들로 부터
독도가 시마네현에 편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사실을 중앙정부에 보고한다
보고서에 本郡 소속 독도 라는 문구가 나온다
돌 발음이 사투리로 dok로 되고 한자로 훈독하여 獨
섬이라는 뜻의 한자 島가 합해져
독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