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밭농사
초기 농경은 수렵 목축 어로를 병행하며 발전하였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8.000년전 황허강 유역에서 밭농사가 시작 되었는데
재배 곡물은 조 수수 기장 등 잡곡이었다
이러한 잡곡은 생육 기간이 짧아 생산력이 낮기 때무에 돼지 개 소 등 가축을 길러 보조 식량으로
삼았다
해안 지방에서는 물고기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젓갈을 만들었다
초기의 농경은 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땅에 작물을 재배하면서 사람들이 점차 정착 생활을 하게
되고 수확한 곡물을 오래 보관하거나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토기가 만들어졌다

강원도 고성 문암리 5.000년된 밭 유적
신석기 시대 5호 주거지에서 빗살 무늬 토기 파편이 발굴되었다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국토의 70%가 山地이므로 목축은 발달하지 못했다
사냥을 하거나 가축에서 얻을 수 있는 식용 고기가 부족했다 때문에 식용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중요한 단백질과 지방 공급원은 콩이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과 지방(脂肪)공급원은 콩이었다
콩을 원료로 하는 간장 된장 등 발효식품이 발달했고
콩 원료의 간장 된장은 현재의 한국의 식품의 기초로 사용되고 있다
콩의 원산지는 만주와 한반도로 보고 있는데 북한의 회령 고조선 유적에서 기원전 1.300년전
청동기 시대 유물과 함께 콩 팥 기장이 나왔다고 한다
중국 화이허 강 이북 만주 한반도 서북부 지역은 동아시아 대표적 밭농사가 발전한 지역이다
2. 벼농사
양쯔강 하류 지역에 기원전 6.000년전 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벼농사는 양쯔강 하류에서 산동 반도를 지나고 한반도로 전파되었다가 한반도 남부에서
海路로 일본 규슈로 전파되었다
벼농사의 전파 경로는 여러 경로가 있는데 위에 언급한
양쯔강 -산동 반도 -한반도 -일본 규슈 이 경로가 主流라고 생각된다
일본측 자료
벼농사 전파 경로
경로를 보면
중국 산동 반도- 한반도 서북부 -북한 평안도 南京 유적 -충남 부여 松菊里
-경남 진주 大坪里 에서
일본 板村으로 표시되고 있다
津島江道가 벼농사 유적으로 연대가 제일 높게 표시되고 있다
한국의 경기도 고양시 5.020년 볍씨는 표시되고 있지 않다
고양시 볍씨는 1991년에 첫 발굴되었다
전파 경로를 보면 벼농사가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것을 일부 인정하고
있는데 벼농사의 연대가 제일 높은 곳은(한국 일본) 일본의 津島江道로 표시되고 있다
이것은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전래되기 이전 부터 이미 일본에서 벼농사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충남 세종시 3.200년전 논 유적
오른쪽의 두둑한 논둑( 노란 線)과 물꼬를 터주는 배수로 (둥글게 표시된 부분 )의 흔적이 보인다
전체 논 면적이 4.000평이 넘고 논의 단위 면적은 100평에서 200평에 이른다
금강변에서 700m떨어진 자연제방의 습지에 조성되었다

충남 관창리 (寬倉里) 유적의 주구묘 (周溝墓)
한반도의 벼농사가 일본으로 전래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은 많다
1994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충남 관창리 (寬倉里)유적에서 기원전 3세기의 주구묘 (周溝墓)가
약 100기 정도 발굴되었다
주구묘(周溝墓)는 일본에서 이미 3.000기가 발굴되었는데 일본은 周溝墓를 일본의 독자적
무덤 양식으로 주장해 왔지만 한국의 충남 관창리 유적에서 일본 보다 앞 시기의 주구묘
(周溝墓)가 발굴되었기 때문에
周溝墓는 한반도에서 농경 금속문화 등 여러 문화와 함께 일본으로 전래된 것이 입증되었다

아가리에 粘土帶를 덧붙여 만든 토기이다
이 粘土帶 토기는 한국의 한강 유역에서 금강 하류에 이르는 중서부 해안에서 처음 등장하여
한반도 남부를 지나고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좌측 한국 충남 아산 남성리 유적 출토
우측 일본 요시노가리 출토
일본의 周溝墓는 긴키 지방을 중심으로 일본 곳곳에서 발굴되는데 조성 연대는 고분시대 초기
기원후 3세기에서 4세기의 것이고
한국의 周溝墓는 서해안 지역 즉 옛 馬韓의 故地에서 주로 발굴되고 조성 연대는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에 이른다
일본의 벼농사의 전파 경로를 보면
크게 한반도 남부의 경로와 중국 강남지방의 경로가 있다
고대 라는 시대를 감안하면 海路보다 더 안전적인 육로를 통해 이동한 인구 집단이 월등히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4세기 까지 한반도 사람들은 스스로 船을 이용할 수 없었고 조몬인이 한반도 일본 중국으로
항해하고 있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일본인이 있는데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8.000년전 船이 발굴되었고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고래 잡이
船그림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조몬인의 문화가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가 없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벼농사와 금속문화를 가진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도래인들에 의해
조몬인들은 일본의 동북지방으로 밀려 나갔다
무덤 양식은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누구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