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대중의 정치적 성향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정치에서 과거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文句가 있다.
인내천(人乃天) = 사람이 곧 하늘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다.
그 의미는 시대의 vision은 정치적 leader가 아니라 한국인 대중 스스로가 이미 잘 알고 있고,
정치하는 녀석들은 그져 그것을 잘 이해하고, 노력하면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국 대중의 정치의식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력하고 절대적인 정치적 motto가 자리잡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한국 사회라는 길들지 않는 야생마는 이미 달려갈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있다.그리고 그 방향을 거스르는 마부를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마부에게 허락되는 것은 韓國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가도록 조력하고 노력하는 것 뿐.
韓國馬가 허락하지 않는 방향의 길로 이끄는 마부는 역사적으로 반드시 단죄 되었다.
이승만: 자신이 馬의 주인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馬가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초라하게 내동댕이 쳐졌다.
민주당 과도 정부: 말이 스스로 고삐를 내어줬지만, 그것을 제대로 잡아 보지도 못하고, 박정희에게 따귀 맞고 쫓겨났다.
박정희: 초창기 馬의 의지(자손들에게는 무식함과 가난함을 물려줄 수 없다.)를 잘 받들어 크게 성공했다.
馬로 부터 "너야 말로 진정한 나의 마부이다."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一身의 정치적 욕망을 드러내면서, 가족들은 물론 자신도 비참한 말로를 겪었다.
전두환: 馬의 고삐를 잡고 제법 순탄하게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馬의 의지에 따라 독재를 포기, 대통령 직선제와 선거를 통한 정권이양에 얌전히 노력하고, 조용히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전히 건강하게 생존
노태우: 선배 전두환의 전례를 벗어나지 않고, 치적이나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 개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군사정권 시대의 막을 스스로 내렸다.: 조용한 노년을 보내다가, 현재 노환으로 투병중이라고 함
김영삼: showman ship이 강한 사람. 馬와 제대로 달려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馬이 눈과 귀를 현혹시키기 바빴다. 군사정권 시대의 잔당들을 완전히 숙청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馬의 구유를 망실하고, 여물 창고도 비워버렸다. 馬는 한동안 박정희 이전과 같은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김대중: 초기의 박정희와 유사한 수준으로 馬의 의지를 잘 이해하고, 그것에 성실하게 노력했다. 기근에 허덕이던 馬의 건강을 회복시키는데 성공했지만, 현실감각이 결여되어 신기루를 향해 달리도록 만들었다.
노무현: 시대의 변화에 따라 馬의 심중이 이전과 다르게 변했다. 훌륭한 마구와 넉넉한 여물이 마련되었고, 馬는 이제 진정으로 멋진 질주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을 잘 이해하고 그 의지에 따르고자 노력했고, 馬의 인정도 어느 정도 받았지만 변화의 혼돈에서 강인하게 버티지 못했다.
이명박: 질주하고 싶은 馬를 끌면서 말고기에만 관심 가졌던 녀석.
박근혜: 보기 드물게 거칠고 질긴 馬를 자신의 애완용 pony로 착각했던 어리석은 바보.
-> 두 사람은 현재 적당한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말고기 녀석과 자신을 애완용 pony취급했던 바보에게 지쳐있던 馬가 스스로 고삐를 내어줬다. 그 의지는 이제 거친 야생마의 본성을 갈무리해서 방황을 멈추고 멋지고 아름답게 질주하고 싶다. 였다. 하지만...
능력도 부족한 녀석이 자꾸 자신의 의지대로 馬를 이끌려고 하고, 고삐도 놓치고, 여물창고는 馬 스스로 관리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져 멋지게 타고 있는 척 show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馬는 이미 이 녀석을 내팽개칠까? 그냥 순순히 내려오도록 기다릴까? 고민하면서 다음 마부는 어떤 녀석으로 할까? 궁금해 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미국인들은 그져 얌전한 식민지 시민이었다. 그들에게는 독립국가, 민주주의 같은 것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져 열심히 풀을 뜯어먹는데 여념이 없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馬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마굿간의 얌전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George Washington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그들에게 독립의 염원, 민주주의 가치를 심었고, 미국이 탄생했다.
George Washington은 國父라는 칭송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다. 현재 미국 시민사회의 자존감과 정치의식의 씨앗을 그가 심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감히 國父. 위대한 지도자를 자칭할 인간은 없다. 한국사회는 그런 것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한국 민중은 스스로가 과거부터 시대의 요구와 자신이 나갈 방향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지도자는 필요없다. 그져 민중의 의지와 시대의 요구에 겸손하고, 그 실현에 적합한 능력과 성실함을 갖춘 일꾼이 필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