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하회(河回)마을 (이 사진 출처 경북일보)
세계 문화유산 ,한국 유교 문화의 중심 안동 河回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河回는 물이 돌아간다 라는 의미입니다
河回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洛東江이 보이고 강 건너 절벽 芙蓉臺가 보입니다
강가를 따라 조성된 소나무 숲은 萬松亭입니다

萬松亭 숲
河回마을 북서쪽 강가의 넓은 모래 퇴적층에 萬松亭이라고 불리는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소나무 숲은 朝鮮 宣祖때에 柳雲龍(1539년~1601년)이 강 건너 바위 절벽 芙蓉臺의 강한 기운을 완화하고
북서쪽의 약한 기운을 메우기 위해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고 해서 萬松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萬松亭 소나무 숲은 여름에는 홍수 피해를 막아 주고 겨울에는 세찬 바람을 막아 준다고 합니다
현재의 소나무는 1906년에 다시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수령 90년에서 150년 정도 되는 소나무 100그루와 마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심은 소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芙蓉臺

養眞堂 보물 제306호
河回 마을에는 한국의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전통 가옥에는 안채(內堂) 사랑채(舍廊) 행랑채(行廊)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舍廊은 주로 남성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문중 행사를 하거나 외부 손님을 접대하는 곳입니다
안채(內堂)는 주로 여성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가사 출산 육아 음식 장만 등 집안의 살림을 맡아하는 곳입니다
行廊은 하인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대문 양쪽에 배치되는데 집안의 보안 역할을 합니다
河回 마을에서 제일 규모가 큰 養眞堂은 豊山柳氏 大宗宅으로 원래 99칸이었으나 현재는 53칸만 남아있습니다
이 고택은 朝鮮 宣祖때에 문신 柳成龍(1542년~1607년)의 형 柳雲龍(1539년~1601년)의 宗宅입니다
養眞堂이라는 이름은 이 가옥을 중수한 柳雲龍의 6대손 柳泳의 아호를 따서 붙인 이름인데
朝鮮 明朝때에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立巖 柳仲郢(1515년~1573년)과 그의 아들 謙庵 柳雲龍이 살던 집으로 柳仲郢의
아호를 따서 立巖고택이라고도 합니다
왼쪽이 안채(內堂) 의 뒷 모습 이고 , 立巖고택 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 舍廊입니다

안채(內堂)의 뒷 모습
계단식 기단 문을 통해 안채 (內堂)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만
현재는 후손이 살고 있으므로 출입을 삼가해 주십시요 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立巖고택 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 舍廊입니다
舍廊은 높은 기단 위에 팔각 지붕으로 세워졌고 정면 5칸 측면 2칸입니다
안채 (內堂)와 舍廊은 분리된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채(內堂)의 지붕과 舍廊의 지붕은 맞배 지붕( 박공 지붕)으로
처리하여 내부 공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舍廊의 왼쪽 (온돌방 쪽) 마루에서 안채(內堂)의 마루로 갈 수 있는 문이 있습니다
제사 등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 안채(內堂)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이 문을 통해 음식을 날랐다고 합니다
舍廊의 오른쪽으로 後園으로 나가는 문이 있습니다 後園에는 柳氏 문중의 조상을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현재는 마루로 올라 가면 안된다고 했기 때문에 내부는 볼 수 없었습니다
舍廊의 마당은 집안의 행사나 문중의 행사를 위한 장소이기 때문에 넓게 비워 놓습니다

솟을 대문
솟을 대문 양쪽으로 하인들이 거처하는 行廊입니다
솟을 대문 안으로 舍廊의 지붕이 보이고 있고 後園으로 나가는 문 옆에 모과 나무가 있습니다

오른쪽은 舍廊으로 들어가는 솟을 대문과 行廊이고 왼쪽은 안채(內堂)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안채 (內堂)에는 현재 후손이 살고 있으므로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河回마을을 방문하고 근처 안동 민속 박물관에 방문하였습니다

청화백자 龍紋 酒甁 .백자 매화 양각 酒甁

장신구
노리개 뒤꽂이 粧刀 鍼筒 바늘집 빗 거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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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 구조와 명칭
베짜기 하는 여인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