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변하지 않은 불변성 때문에 목걸이 반지 등 장신구나 생활 도구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의복에 금을 사용한 것은 기록으로
신라 眞德女王 5년에 金總布에 대한 기록이 있고
통일 신라시대 興德王 때에 服式 金題에 五頭品 六頭品의 여자 의복에 금니 은니를 금지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때는 鎖金紅梅花羅 라는 직물 명칭의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때는 금박이나 付金이라는 명칭 대신에 鎖金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직물에 金絲를 넣어 문양을 짜는 기술을 織金이라고 하는데
고려시대 유물로는 1302년 아미타불 복장 유물 중에 주황색 羅에 모란 무늬가 織金된 옷감이 있는데
현존하는 최초의 유물이다
또 1346년 문수사 소장품이 있는데

보물 제1572호 서산 문수사 금동 아미타 불상(1346년)의 복장 織金된 직물 복원
藍色鴛鴦紋織金綾이 있다
■ 1. 인금(印金)
복식에 금으로 장식하는 기법에는
인금(印金) 직금(織金) 金絲刺繡 등 여러 유형이 있다
印金은 금가루를 사용하는 방법과 금박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金가루를 사용하는 방법에는 니금법(泥金法) 살금법(撒金法)이 있고
금박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첩금법(貼金法)이 있다
니금법은 고운 금가루나 은가루를 접착제와 함께 반죽하여 이것을 도안에 따라 조각하여 놓은
목각판에 솔로 칠해서 직물에 찍어 무늬나 윤곽을 만들고
무늬 안에 색칠을 하는 방법이다
니금법(泥金法)은 삼국시대 고려시대에 많이 사용한 기법이다

고려불화
아미타여래의 옷 문양
고려불화에서 당시의 직물의 직조 기술을 알 수 있고 직물에 다량의 金泥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金絲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까지 사용된 전통 섬유 공예이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직금(織金)공예가 발달하였다
살금법(撒金法)은 型紙나 목각판을 사용하여 접착제를 직물에 塗布한 후에 금가루를 뿌리면
접착제가 塗布된 부분에 금가루가 붙게 되는데 직물에 금가루가 잘 붙도록 눌러 고정시키는 방법이다
고려시대 직물 유물 중에 금가루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하얀 접착제만 남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고려시대는 살금법을 잘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官營工匠 중에 장야서(掌冶署)에 금박장과 은박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첨급법(貼金法)은 주로 朝鮮시대에 사용한 기법이다
첩금법은 朝鮮 후기 기록 林圓經濟志에 소개되어 있고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중요무형 문화재 金景用의 금박 제작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금박 장식을 위해서 먼저 나무판에 문양을 새긴다
2.문양을 새긴 나무판에 큰 붓으로 접착제(민어 부레)를 바른다
3. 床 위에 비단을 펼쳐 놓는다
4. 펴 놓은 비단 위에 금박을 엎어 놓고 흔들리지 않게 주의하며 손에 힘을 주어 무늬가 일정하게 박히도록
누르며 손바닥으로 내려친다
5. 비단이 붙어 있는 금박 판을 들고 손바닥으로 살살 문질러 접착제가 비단에 잘 묻도록 한다
6. 다시 床위에 금박판을 놓고 한 손으로 비단을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금박 판을 한쪽 끝 부터 떼어낸다
7. 접착제로 무늬가 박힌 비단 위에 금박지를 한장씩 옮겨 덮는다
8.금박지가 덮히지 않은 작은 부분에는 손 끝에 금박지를 묻혀서 빈틈없이 메운다
9. 습기가 없는 마른 손을 가볍게 쥐고 금박지를 올린 위를 골고루 살짝 두드린다
10.금박지가 잘 마른 다음 부드러운 헝겊으로 가볍게 문지르면 무늬 외에 금박의 여분이 떨어진다
11.가느다란 칼 끝으로 긁어내며 마무리 한다
금박장(金箔匠)은 직물위에 얇은 금박으로 글씨나 문양을 찍어내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위에 열거한 금박제작 과정은 林圓經濟志에 소개된 금박 제작 방법과 그 기법이 비슷하다고 한다
김경용(金景用)에 이어 4대째 가업을 이어 온 금박장은 그의 아들 김덕환 (金德煥)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철종(哲宗 재위 1849년~1863년)때 부터 가업을 이어 왔다고 한다
김덕환은 1954년 부터 아버지 김경용 문하에 입문한 후 평생을 금박 기능 보존과 전승을 위해 노력하였다
2006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 119호 금박장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2018년에는 병환으로 명예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2019년 별세하였다

금박장 김덕환 (金德煥)
나무 판에 문양을 새기고 있다

문양 판에 접착제를 발라 비단 위에 찍은 다음 금박을 올리고 다듬고 있다
朝鮮시대 기록 經國大典에 의하면
朝鮮왕실이나 중앙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제작하던
京工匠에 상의원(尙衣院)소속의 금박장이 4명이 있었고 본조 소속 금박장이 2명 있었다고한다
금박 장식의 대례복(大禮服)은 평소에는 입지 않고 혼례식이나 국가의 중요 행사가 있을 때 입었고
행사가 끝나면 부드러운 한지에 싸서 보관하였다가 그 사용자가 사망하면 壽衣(염습할 때 시신에 입히는 옷)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금박 장식의 의복은 유물로 전하는 것은 많지 않다
朝鮮시대 직물에 사용하는 금 장식 기법에는
문양판에 접착제를 바르고 직물 표면에 찍어 금박이나 금가루를 사용해 문양을 나타내는 印金法
금사로 직물에 문양을 짜 넣는 織金法
직물 위에 금사로 刺繡하여 문양을 나타내는 金絲刺繡 등 있는데
복식의 금 장식 기법의 유형 시기별 출현율을 보면
織金法이 35.58%로 제일 높고 金絲刺繡가 34.97% .印金法이 29.45% 순서이다
15~16세기에 출토된 금 장식의 복식 유물 중에 織金法이 사용된 것은 95%로 월등히 높았지만
이후 점점 줄어든 반면 金絲刺繡 기법이나 印金法 기법의 복식은 朝鮮 후기로 갈수록 높아졌다
15세기 16세기 유물은 대부분 촐토된 유물인데 비해 19세기 이후는 대부분 所藏자료이다
朝鮮시대 전체로 보면 금 장식 기법을 사용한 복식 유물 중에
출토 유물은 29.27% 所藏자료 유물은 68.29%로 所藏자료 유물이 훨씬 많다
이것은 출토 유물은 금 장식이 훼손되어 보존이 어렵고
특히 17세기 18세기의 금 장식 유물의 數가 현저히 떨어지는데 이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란을 겪은 때문으로 보인다
16세기 이전 朝鮮前起의 출토 유물은 양반 가문의 유물이 대부분이고 19세기 이후 所藏자료는 朝鮮왕실의
자료가 대부분이다
금사를 사용한 의복 유물로는 恩津 宋氏 唐저고리 하단에 찍은 蓮花紋織金緞이 있다
금박 장식의 유물로는 대부분 왕실의 복식인데
純祖의 세째 딸 德溫公主(1822년~1844년)가 입었던 원삼 등 있다

김덕환(金德煥)
왕비의 紅圓衫을 기초로 복원한 紅圓衫에 금박을 올리고 다듬고 있다
1533년에는 傳敎에 따라 성절사(聖節使 明나라에 보내는 사절단 ) 편에 은박으로 금색 같은 색을 내는
훈금법(燻金法)이나 묘금법을 전수받고
왔다 라는 기록이 있다
2..직금 (織金)


英親왕비
雲鳳紋織金 唐衣
두벌 당의이고 겉 당의에는 백색의 견사로 일곱가지 형태의 꽃
매화 모란 난초 국화 영지 무화과 석류 무늬와
불수감 구름 .무늬와 壽 福 글자를 새겨 넣었고
어깨와 앞 뒤길 하단에는 구름 봉황 무늬를 짜 넣은 연두색 직금단이다

영친왕비 대란치마
스란단이 2층으로 부착되어 있고 봉황과 구름 무늬로 금박되어 있다
스란치마는 왕실에서는 小禮服으로 입는 치마이고 대란치마는 大禮服으로 입는 치마이다
치마의 하단에 직금이나 금박으로 장식하는 緞을 스란단 이라고 하는데
스란단을 1층으로 달면 스란치마이고 스란단을 2층으로 달면 대란치마라고 한다
금박을 찍은 스란단은 따로 만드는데 국가의 중요 행사가 있을 때 붙여서 입었다가 행사가 끝나면 떼어내고
부드러운 한지에 싸서 보관하였다고 한다
왕실 의복에 찍은 금박은 순금으로 하는데 .악학궤범 등 기록에 의하면 금 대신에 자황으로 금박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傳왕비 당의
국가민속 문화재 103호
문화재 지정 당시 (1976년 1월 26일)에 왕비가 입었던 옷으로 전해졌다고 해서
傳왕비 당의라고 명명된 유물이다
그런데 이 유물을 기증 받은
세종 대학교 (前 수도 여자 사범 대학) 설립자에 의해 순정효 황후가 착용했던 옷으로 박혀졌다고 한다
가슴과 등 양쪽 어깨에는 금사로 刺繡된 둥근 모양의 五爪龍補가 부착되어 있다
직금은 순금을 이용한 편금사(扁金絲 :얇은 금박을 종이 위에 붙여 길게 오려 내는 것)이다
오조룡보(五爪龍補)의 刺繡 문양에는 연금사( 撚金絲)와 撚銀絲가 사용되었다
의복에 새기는 금박 문양은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구분되었다
왕의 곤룡포 ( 袞龍袍)에는 용 문양이 사용되고 .왕비의 의복에는 봉황 무늬가 사용된다
公主와 옹주의 의복에는 모란 매화 국화 등 꽃 무늬가 사용되었다
복식에 사용한 문양은 長壽 부귀 공명 권력 자손번창 등 현세의 기원을 담아 문양을 도안하였다
용 봉황 →권력
문자 무늬 →壽 福 卍
과실 → 복숭아 석류 뷸수감은 三多를 상징하는데 각각 多壽 多男 多福을 의미한다
새 곤충 → 벌 나비 박쥐 학 거북 등은 사랑 長壽 복을 부르는 것을 상징한다
화문→연화 매화 모란은 군자 순결 부귀를 상징한다
금원문 →둥근 원 안에 주된 문양을 넣어 단위 문양으로 시문한다
테두리→테두리를 두르는 문양인데 금박 공예에서는 난간문 이라고 한다
3 금사자수 (金絲刺繡)

李晉왕자 壽字紋 귀주머니
앞쪽 아래에 卍字紋을 중심으로 양쪽에 매화가 繡놓아져 있고
그 위에 파도 바위 삼산 불로초가 繡놓아져 있다
위에는 壽字紋을 수(繡)놓고
그 밑에 불로초가 꽂힌 꽃병 박쥐를 繡놓은 후 그 둘레를 금사(金絲)로 전체를 화려하게 繡놓았다
아래부분 양쪽에 삼각형의 귀 처럼 생긴 부분이 있어 귀주머니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