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금을 이용하여 만든 금박 장식의 의복은
왕실이나 상류층의 전용으로 민간에는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후기 유물을 보면 왕실이나 양반 가문의 복식 외에 일반 서민들의 복식에도
부분적으로 금박 장식이 발견되고 있다

1935년 김광균 결혼식
신부는 드림 댕기를 하고 있다

근대 1910년 드림댕기
석주선 기념관
금박 문양은 혼례식이나 명절 등 특별한 날에 입는 의복에 건강 長壽 복을기원하는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서민층에서의 금박 문양은 주로 댕기 종류에 많이 발견된다 댕기는 머리를 묶을 때 장식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官營工匠에 금박을 만드는 金箔匠 . 금박을 직물에 찍는 도다익장(都多益匠)을 두어 다양한 금박 문양을
생산하였다
1533년에는 傳敎에 따라 성절사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사절단 )편에 훈금법(燻金法)이나 묘금법(猫金法)을
전수받고 왔다 라는 기록이 있다
훈금법은 은박으로 금 빛을 내는 것이다
또 비싼 금 대신에 자황으로 금박을 찍었다는 악학궤범의 기록이 있고
1505년에 花金都多益과 花雌都多益을 신분에 따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假金제작 방법에 대해서는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箭散稿)에 의하면
은박 1냥에 松子 7전 소황 3전을 섞어 그을리면 금색으로 변해 假金을 만들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조선왕실에서는 금박을 付金이라고 하였다
왕실의 복식 유물의 圓衫 댕기 당의 등에 금박 무늬가 남아있다
사찰에서는 불상 보살상의 改金이나 단청 寫經에 쓰였고 칠기에는 금니를 새겼다
조선 중기 후기에 일반 서민도 혼례식에서 원삼이나 활옷을 입을 수 있게 허용되면서
점차 일반 서민들도 혼례식에서 머리를 장식하는 댕기에 금박으로 문양을 새겨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민간인들의 결혼 사진에서 新婦가 화려한 댕기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17세기 李端夏의 부인의 도투락 댕기 ( 유물 )
댕기는 여성들의 긴 머리를 묶어 장식하는 끈이다
이 댕기는 李端夏1625년~1689년)의
부인이 대례복을 입고 큰 머리를 할 때 사용한 도투락 댕기이다
자주색 바탕에 금박으로 무늬를 찍었다



도투락 댕기( 복원 )
김덕환(金德煥) 금박장 작품
댕기에 대한 기록으로 고려도경에 의하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붉은 비단으로 머리를 묶고 나머지 머리카락을 아래로 내린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댕기는 조선시대에 와서 한층 더 다양해졌다
도투락 댕기는 예장용 댕기 중에 하나이다
조선시대 혼례식에서 新婦가 머리에 족두리나 화관을 쓰고 쪽진 머리 뒤에 도투락 댕기를 길게 늘어뜨리는데
도투락 댕기는 (뒤 댕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투락 댕기는 보통 180cm 길이에 10~12cm 너비의 크기로 만들어 중앙을 제비부리로 접어 두 가닥이 되게 한다
댕기 정수리에 학이나 부귀 등의 금박을 올리고 위쪽에는 석옹황이나 옥판을 달고
중간에 박쥐 동자 난초 등의 금박 무늬를 넣고 하단에는 壽 .福 글자로 마무리 한다
혼례용 댕기에 동자 (童子)무늬를 넣는 이유는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다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 1921년

남바위
방한용 모자이다
오른쪽 어머니와 딸의 방한용 모자는 풍차(風遮)이고 왼쪽 아들이 쓴 방한용 모자는 남바위이다
어머니와 딸이 쓴 風遮는 나비 꽃 등 무늬가 금박되어 있고 호박(琥珀)이나 옥으로 꿰어 만든 줄로 장식되어 있다
모자 아래에 얼굴을 감싸는 볼끼가 붙어 있으면 풍차(風遮)이고
볼끼가 없으면 남바위 라고 한다

복건(幞巾) 20세기초
이 복건은 왕자가 쓰던 복건이다 왕자가 돌복(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생일에 입은 옷)으로 착용했던 복건이다
검은색 용문단 (龍紋緞) 위에 금박을 올리고 보석으로 장식하였다
정면 상부 중앙에는 감로수 병 속에 담긴 긴 불로초와 壽福康寧이라고 길상 문자를 금박했고
감로수 밑에는 囍 글자를 조각한 비취를 부착했고 양쪽에 두 마리씩 봉황을 금박했다
오른쪽 끈 위에는 壽福壽福 .아래에는 蒼松君子之節이라고 금박했고 안쪽 아래에는 落落長松夏雲 이라고 금박하였다
왼쪽 끈 위에는 福壽福 .萋萋芳草春錄
안쪽 아래에는 錄竹烈女之情 이라고 금박되어 있다
후면 상부 중앙에는 학 무늬. 측면 좌측에는 壽福和風甘雨瑞日祥雲 우측에는 壽福門心皆水物我同春 이라고
付金(금박)하였다
하부 양쪽 모서리에는 각각 1개의 편복문과 불로초 무늬를 부금했고 그 사이에 孝悌忠信을 부금(付金)햇다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 소년
조선시대 금 장식의 유형 시기별 출현율을 보면
직금(織金法)이 35.58%로 제일 높고 금사자수(金絲刺繡)는 34.97% 印金은 29.45%순서이다
그런데 15세기 16세기의 출토된 금 장식의 복식 유물 중에 직금이 사용된 옷은 95%로 월등히 높지만
이후 점점 줄어든 반면 금사자수 기법이나 인금(印金)이 사용된 복식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그 비중이 높아져 갔다
조선시대 金장식 기법을 사용한 복식 유물 중에 출토된 자료는 29.37%이고 소장(所藏)자료는 68.29%로
所藏자료가 훨씬 많다
출토 복식 자료는 대부분 16세기 이전 것으로 일반 양반의 복식 자료이고
所藏자료는 19세기 이후 것으로 대부분 왕실 복식 자료이다
17~18세기 金장식 복식 유물은 그 數가 현저히 낮은데 이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란 때문으로 보이다
19세기 이후 金장식 유물 중에 印金法 즉 금박 장식의 유물이 많은데 왕실의 所藏자료가 제일 많다
금박의 의복은 세탁을 하면 금박이 쉽게 훼손되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국가의 중요 행사가 있을 때 착용하는 예복으로서 세탁을 잘 하지 않은 것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금박은 훼손 우려 사치 등 이유로 민간에는 허용하지 않았지만
조선 중기 후기에 일반 서민들도 혼례복으로 원삼이나 활옷을 일을 수 있게 허용되면서
머리를 장식하는 댕기 등 부분적으로 금박을 했던 것이 발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