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가도(冊架圖) 혹은 책거리란 18, 19세기 조선 민간에서 유행했던 그림들로 책을 비롯한 도자기, 문방구, 향로, 자명종 등 가지고 싶은 물건들이 책가 안에 놓여진 모습을 그린 그림과 병풍을 가리킵니다. 양반 이외에도 일반인들 사이에도 많이 퍼진 그림이기에 여전히 많은 수가 남아있습니다.

창덕궁 주합루
책가도가 조선에 퍼진 계기는 조선의 22대 국왕 正宗에 의해서 였습니다. 正宗는 창덕궁에 전용 도서관인 주합루를 짓고 古文을 즐겨읽거나 젊은 나이에도 고관들과 유학 토론을 자주 걸만큼 재능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보수적이고 독설가 기질이 있던 왕이었습니다. 특히 전대 왕이자 자신의 할아버지였던 영조가 좋아하던 연애소설을 잡서라고 부르며 전부 없애버릴 정도로 연애소설을 지독하게 싫어했는데 이런 성향이 대표적으로 표면적으로 들어난 사건이 문체반정(文體反正) 입니다.


당시 청나라와 민간을 통해 퍼진 연애 소설로 인해 양반 사이에서 새로운 문체와 신조어들이 유행처럼 번지자 이를 배척하고 정통적인 古文을 부흥시키려 하였는데 오늘날로 따지면 인터넷 신조어 배척 운동과 비슷했습니다. 이런 의지를 드러내듯 正宗는 어좌 뒤에 두는 日月五峯圖 대신 책가도를 걸어놓았는데 이것이 왕실 畵員을 통해 민간에 전파되어 유행으로 번지게 됩니다.


책가도의 기원은 찬장이나 방에 컬렉션을 모아두던 Studiolo 그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서양 부호들은 이런 찬장이나 컬렉션 수집 방을 소유하고 자신의 수집욕과 지식을 자랑하고는 했는데 이는 후에 박물관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건륭제의 궁정화가이자 중국화에 원근법과 명암기법을 적용시킨 것으로 알려진 주세페 카스틸리오네(Giuseppe Castiglione)의 다보각경(多寶各景)의 형태로 중국에 전해지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조선에 전해지게 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多寶各景과 가장큰 차이는 수납장이 아닌 책이 중심이 되었고 명암을 적게 주고 색채 대비를 크게 하였다는 겁니다.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적은 미색을 준 반면 배경이되는 책장은 청색, 혹은 녹색 같이 채도가 강한 책을 줍니다. 또한 초기에는 그림안에 책만 있었지만 도자기, 시계 등 점차 가지고 싶은 물건이 진열된 모습으로 바뀌었고 여기에 붉은색 계통을 색을 입히고는 했습니다.

冊架圖를 본따 만든 명동 애플 스토어 3호점 조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