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대학 사학과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는 “현존하는 미륵상의 양식은
신라계의 것이며, 신라에서 보내준 불상이라는 것을 전해주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히라노 구니오(平野邦雄) 교수·미스자와 스미오(水澤澄夫) 교수
·미즈노 세이치(水野淸一) 교수 등은 “적송 미륵상은 신라에서 보내준 것이며,
한국 국보 제83호인 금동반가상과 똑같다”라고 밝혔다
도쿄대학 건축사학과 오타 히로타로(太田博太郞) 교수와 도쿄교육대학 미술사학과
마치다 고이치(町田甲一) 교수는 공저에서 “미륵상은 광륭사 사찰 기록에 따르면
스이코왕(592∼628) 11년(603)에 백제에서 보냈다”라고 한다.
또한, 고니시 아키오(小西秋雄)도 미륵상은 백제에서 건너왔다라고 밝혔다.
미륵상의 얼굴 개조 사실을 밝힌 미술사학자 신이치 교수의 경우이다.
이 사람은 1976년 <역사공론> 6월호 ‘아스카불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에서 말하기를
“미륵상은 조선인이 조선 땅에서 만들어 가지고 왔다기보다는 조선인 1세대쯤 되는 사람이
일본 땅에 와서 일본 재료인 적송으로 만든 것 같다”라고 했다가
30년이 지난 2006년 7월 ‘일본·아시아 미술 탐색’에서는 많이 누그러진 자세로
“조선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가져왔다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끝을 흐리고 있다
그동안 일부 일본 학자들은 ‘광륭사 미륵상’을 일본인이 만든 것으로 둔갑시키려고
상당한 논문을 쏟아냈다. 신이치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광륭사 미륵상을 만든 사람이 고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불상 재료이다.
1951년 고하라 지로(小原次郞) 교수가 발표한 한 편의 논문은 종래의 일본제작설을
일시에 잠재웠다.
그는 ‘上代조각 재료 사적고찰’ (불교예술 13호. 1951년, 일본)이란 논문에서 7, 8세기
일본 불상들은 녹나무인 데 비해 미륵상의 재질은 적송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700여 불상의 나무 재질을 연구한 사람으로 이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이다.
정리해보면 “일본에서는 불상 재료로 적송이 안 쓰인다”가 중요한 결론이다.
고하라 교수 자신은 한국에 두 번이나 방문하여 한국의 소나무 재료를 연구한 결과
이런 결론에 확신을 했다면서 이 책에서 ‘적송=조선’ 등식을 확인해주고 있다.
신이치는 그의 논문에서 미륵상 얼굴 수리 이야기를 비교적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미륵상의 진실’을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얼굴이 개조되어 기쁘다”를 말하고자
함이었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신이치의 ‘미륵상 얼굴성형’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표로 정리한다.
신이치의 주장
미륵상은 명치 때에 수리했다.
수리 이전에는 분명히 한국인의 얼굴이었다.
얼굴 수리 이후 일본인의 얼굴에 가까워 일본인의 사랑을 많이 받게 되었다.
얼굴 수리 전에 모양을 본떠 도쿄예술대학에 보관하고 있다.
얼굴에 손을 가했다고 해서 문화유산의 가치가 손상된 것은 아니다.
문 제 점
정확한 연월일을 밝히지 않았다.
어떠한 상태이기에 수리를 하게 되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얼굴을 완전히 바꾼 것이 잘된 일이라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본을 떠서 어떤 상태로 보관하고 있는지에 대해 언급이 없다.
문화유산 수리 시에는 원형 복원이 상식인데도 문화유산의 가치 손상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신이치는 ‘아스카불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이란 논문에서 미륵상이 원만히 수리되었으며
아주 흡족하다고 했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불상 얼굴 개조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일본 국보 제1호 미륵상은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명치시기에 얼굴 수리를 했다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얼굴로 바뀌었다. 이런 신이치의 주장을 보면 광륭사 미륵상은 얼굴이 성형 수술된 것이 분명하며, 그것도 한국인의 얼굴에서 일본인의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다음 사진을 한번 보자.

수리 전의 얼굴 모습 : “우리나라에 있는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의 얼굴과 닮았다.

위 사진은 미의 비밀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이라는 책에 나오는
수리 전의 미륵상 모습이다. 사진으로 볼 때 얼굴 모습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뺨 부분도 도톰한 게 역력한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얼굴에 손을 댔을까?
만일 얼굴 손상이 있었다면 정확한 손상 정도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피치 못해 복원을 하는 경우에도 이 사진을 토대로 얼굴 손상을 최대한 줄이면서
복원했어야 한다.

그수리 뒤의 얼굴 모습 : 표면 처리가 말끔해졌으나 얼굴 모습은 수리 전의 인상과 달라져
일본 불상의 얼굴 모습으로 바뀐 느낌이 든다.”라는 아주 간단한 설명이 전부다.
이 미륵상에 대한 복원이야기를 다룬 책이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이다.
이 책은 1977년 2월11일 nhk 교양 특집 ‘미의 비밀’의 하나로 다룬 내용이다.
위 사진 속 미륵상 얼굴 앞에서 100여 년 만에 얼굴수리를 재현해 보이는 사람은 도쿄예술대학
교수 니시무라 코쵸(西村公朝)다. 그러나 이날 방송을 책으로 묶은 원고 어디에서도 불상 얼굴의 손상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신이치는 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명치시대에 이 상(불)은 수리되었으나 그때 수리에 손을 대기 전에 두부(얼굴포함 머리)의
형(型)을 떠놓은 것이 도쿄예술대학에 보존되어있다.(明治時代にこの像は修理されたがそのとき修理の手をくだす前に像の頭部を型にとったものが東京の芸大に保存されている。)
【참고문헌】
1.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小原二郞 外 5人, 日本放送出版協會,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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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飛鳥佛にみる日本と朝鮮> 歷史公論. 1976. 6
4. <古代日本と佛敎の傳來> 永井信一·田村圓澄 外, 雄山閣出版, 1981
5. <半跏像の道> 田村圓澄, 學生社, 1983
6. <秘佛開眼> 西村公朝, 淡交社, 1976
7. <半跏思惟像の硏究> 田村圓澄·黃壽永, 吉川弘文館, 1985
8. <秘佛> 久野建, 學生社, 1978
9. <京都の佛像> 塚本善隆. 淡交社, 1968
10. <定本佛像> 望月信成, 日本放送出版協會, 1971
11. <正倉院の謎> 由水常雄, 學燈社, 2007
12. <반가사유상> 황수영, 1992, 대원사
13. <한국인이 만든 일본 국보> 홍윤기, 문학세계사, 1995
14. 일본 위키피디어: http://ja.wikipedia.org 외 다수 사이트
15. <廣隆寺> 광륭사 절 팜프렛, 32쪽 日本 便利堂,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