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이 된 오스트리아 출신 프렌체스카대한민국의 제1-3대 이승만 대통령의 아내로, 첫 번째 영부인 되는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태생 유대인이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1900년 6월 15일 사업가인 아버지 ‘루돌프 도너’ 공과 어머니 ‘프란체스카 게르바르트’ 여사 사이에서 세 명의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프란체스카 어려서는 의사를 희망했으나 사업을 계승할 아들이 없어 대신 막내딸을 트레이닝을 시켜야 하겠다는 판단 하에 상업전문학교에 보내고 또한 영어 습득을 위해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보냈다.
맥아더 회고록에는 의미심장한 두개의 문장이 나온다. "나는 1931년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다.…나는 1948년 프리메이슨의 가장 높은 계급에 올랐다." 왜 가입하였는지, 무슨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1880년 1월 26일 미국 아칸소에서 태어난 맥아더는 1964년 4월 5일 워싱턴 DC에서 타계했으며, 버지니아 주 노퍽에 묻혔다.
▲ 전시중 이승만과 맥아더! 한국의 초대 영부인이 유대인 출신인 덕분에 역시 유대인 맥아더는 한국을 힘껏 도왔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이스라엘은 약 17만 달러 상당의 의약품을 원조했다. 실제 6·25 전쟁 당시 미군이나 영국군 등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유대인은 4천여 명에 달한다.
한국전에 참전한 유대계 미군들은 병영 내에 간이 시나고그(Synagogue, 유대교 회당)를 설치했다. 차임 포톡이란 군종 랍비가 유대교 예배를 집전하였는데, 포톡은 戰後 뉴욕에 돌아가 철학가와 문인으로 명성을 구가하였는데 2002년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쟁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이렇게 잊지 않고 우리를 찾아주니 정말 고맙습니다.” 주 이스라엘 대사관이 6·25 전쟁에 참전한 유대인 참전용사들에게 감사 메달을 수여하는 활동을 벌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모든 이들이 맥아더의 전략적 독창성과 우수성, 최소한의 사상자로 승리를 쟁취하는 백전백승의 출중함을 이구동성으로 칭송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성공은 맥아더를 한국전 영웅으로 만들었고 그의 인기는 본국은 물론 한국과 극동지역에서 하늘 높이 치솟았다.
출중한 능력과 준수한 외모, 군인 명문가 출신의 맥아더 장군은 항상 남보다 탁월했기에 부러울 게 없었다. 모든 이들이 그의 전략적 독창성과 우수성, 최소한의 사상자로 승리를 쟁취하는 백전백승의 출중함을 이구동성으로 칭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