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삼국사기)에 따르면 7세기 초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삼국사기 권2에 차는 선덕여왕(632 - 647)부터 있었다는 기록 (다자선덕여왕지시유지(茶自善德女王之時有之))
(삼국유사)에는 서기 48년 가락국 수로왕에게 시집오는 야유국(인도) 공주의 배에 비단, 금, 은 등의 패물과 함께 차나무 씨가 실려있었다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사신이었던 김대렴이 당(唐)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
삼국사기 제 10권 흥덕왕조에 왕3년(828) (입당회사 대렴지다종자래 왕사식지리산 (入唐廻使 大廉持茶種子來 王使植智異山))
경주 안압지에서 회색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언정영(言貞榮)이라는 찻잔에 작은 글씨로 “茶” 자가 씌여 있다
(삼국사기) 경덕왕은 충담사를 궁중에까지 맞아서 차를 마신 기록이 있다.
왕은 "차의 기미가 신기하여 입안에 이상한 향기가 가득차다"(茶之氣味異常 中異香郁烈)고 하였다.
(삼국유사)제 5권 ‘월명사 도솔가’를 통해 경덕왕24년 충담사의 삼화령이 미륵부처에게 차를 올렸다는 내용이 있다.
유명한 다인들은
원효대사(705-803)
원효를 모시는데 차를 다려드리려 했으나 물이 없어 딱하던중 바위틈에서 갑자기 물이 솟아났는데 그 맛이 젖과 같이 매우 달아 늘 차를 달여 마셨다고 한다.
자장법사 (705-803)
신라 성덕왕의 아들, 중국차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당시 구화산에 심은 차를 (공경차)라고 했으며 맛이 특별하다는 기록이 청나라의 (다사)에 적혀있다
설총 (?-692-746-?)
설총이 신문왕(681-692)의 자문역을 맡았을 때 (임금께서는 좋은 고기와 곡식으로 배를 부르게 하나 차와 술로써 정신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라고 했다. 이때 술보다 차를 앞서 애기함으로써 차를 중요시 했다.
보천과 효명태자
(삼국유사)제3권의 내용에 이렇게 적혀있다 (매일 두 태자는 동중수를 길어나가 차를 달여 공양햐고)하는 내용이 있다
충담스님 (?-765-?)
(삼국유사)제2권에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이라는 글속에 충담과 경덕왕이 주고 받던 차 얘기가 있다.후세에 많은 귀중한 차자료를 남겼다. (안민가)
고구려...
고구려의 옛 무덤에서 전차가 발견,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지방 이름으로 句茶國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고구려에서 차가 음용됨을 알수있다
- 무용총에서 발견된 "접객도"는 차를 접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백제...
일본 東大寺要륵(동대사요륵) 백제(百濟)의 귀화승 행기(行基)(668 - 748)가 중생을 위하여 차(茶)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백제(百濟)의 차(茶)가 일본에 전래되었음을 알려 주는 기록이다
고려...
고려 시대는 신라 시대의 차문화 계승 및 불교와 함께 차 문화의 전성기를 꽃 피운 시기 .
삼국의 차는 왕족과 귀족,선승과 화랑을 중심으로 그 문화가 이어져 왔다면,
고려의 차는 왕실과 귀족,선승과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고려의 차는 크게 4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왕실차,귀족차,사원차,서민차가 그것이다.
왕실차
궁중에서 행하는 차로서다방(茶房0이라는 관청을 두고 관원이 왕과 왕비,태자와 공주 등
왕족들의 차생활을 도우며 책봉식과 공주하가(公主下嫁),연등화와 팔관회 등의
진다의식(進茶儀式)에 차를 올렸다.이 왕실차는 지극히 의식적이며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왕이나 태자등이 차를 마실 때는 주악까지 따랐으니 그 당엄함을
말로 다 할 수가 없다.여기에서 의례음다법이 생겨난 것이다.
귀족차
추밀향상(樞密鄕相)이나 지방관등의 귀족들이 행하는 차로서,귀빈접대시나
한거 유회(遊會)등에서 주로 마셨다.외국의 사신 일행을 청하기도 하고
가까운 벗을 청해서 다정(茶亭)이나 경치좋은 자연에서 끽다(喫茶)로 즐기거나
사당에 차를 올린다.이로인해 귀족들의 다회(茶會)나 계회(契會)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중에 쌍명개로회(雙明皆老會)나 강좌칠현(江佐七賢)이 유명하다.
여기에서 풍류다음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원차
승려들이 불전(佛殿)에 헌다하거나 참선하는 사이사이에 즐겨 마셨는데
다도삼매(茶道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이로써 삼매음다법(三昧飮茶法)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수도생활에 방해가 되는 잠을 안자기 위해 많이 마셨다.
이렇게 필요한 차는 사원 근처에 다촌을 두고 주민들로 하여금
차를 재배해서 바치게 하였다.
서민차
일반 서민들이 다세를 징수당하고 난 다음 끝물을 채취해서 만들어
약으로 쓰거나 간간이 끓여서 마시는 것을 말한다.감기,몸살,두통이 생기면
약탕관에 물과 차를 함께 넣어 달여서 한사발씩 마신다.그러면 두통이 나았다.
이렇게 헤서 약용음다법이 생겨난 것이다.
이때의 다세는 못시 혹독해서 지리산 주민들이 징세를 피하기 위해
이사가거나 차나무를 불태워 버리기도 하였다.
1. 茶房 : (다방)
천령, 오악명산을 섬기는 중요한 국가 행사인 팔관회,
부처님께 국가의 태평을 비는 행사인 연등회
때의 여러 행사 중에서 차와 관계되는 의례를 맡아 진행하는 관청.
2. 茶軍士 (다군사)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풍습
다방에 소속되어 궁중 밖에 차 행사를 할때 관련된 일을 준비하는 군인들.
3. 茶時 (다시)
관리의 비행을 조사하고 풍기를 바로 잡고 백성의 억울한 누명을 해결해 주는 기관인 사헌부
에서 매일 한 번씩 모여 차를 마시며 공정한 판결을 기했던 제도.
4. 茶院 (다원)
임금, 고나원, 승려 들이 여행을 가는 중에 쉬어 가는 일종의 국영 여관.
차를 마시기 좋은 곳에 (좋은 물, 차 산지가 가까운 곳에 ) 만들어 놓음.
5. 茶店 (다점)
다점은 일반 백성들이 차를 사고 차를 마시는 집.
6. 茶所 (다소)
고려시대에는 19개 이상의 다소가 있었음. 차를 생산하는 곳
또 다구를 몹시 화려하게 만들어 사용했으므로 고려다구는 송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쳤다.
고려에서는 토산차로 뇌원다(腦原茶)와 대다(大茶)가 생산되었고 송나라의 용봉다(龍鳳茶)가 수입되었다.
이규보 (1168-1241)
고려중엽 대문장가로 민족 정신에 바탕을 두고 우리것을 글로 썼고 손수 차를 끓이기를 즐기어
(차 한사발은 바로 참선의 시작)이라고 하였으며 (동국이상국집).(백운소설).(국선생전)등의 저서가 있고 500여 편에 이르는 다시를 남겼다
(차(茶)의 맛은 도(道)의 맛)이라고 하여 (다도일미.(茶道一味))를 주장했다
다선일미(茶禪一味) 또는 다도일미(茶道一味)를 노래한 詩
초암의 다른 날 선방을 두드려
몇 권의 오묘한 책 깊은 뜻을 토론하리
늙기는 했어도 오히려 손수 샘물 뜰 수 있으니
한 사발은 곧 이것이 참선의 시작이라네
“草庵他日叩禪居/ 數卷玄書討深旨/ 雖老猶堪手汲泉/ 一?卽是參禪始”
진각국사 (1178-1234)
(진각국사어록)외에 다수가 있고 그는 돌아가신 스승의방에서 소반가득 담아온 눈에 우물을 파서 거기서 녹아 내린 물을 떠서 작설차를 끓였다.
원감국사 (1226-1292)
다시문(차를 적은 한 시) (원감국사 가송)에 전해진다. 차의 맛이 달다고 표현했다.
이제현 (1287-1367)
저서로는 (익재 선생집)(임재난고)(역옹패설)등이 있고 그는 경포대와 한송정에서 신라사선들이 차끓여 마시던 것과 똑같은 설지조를 개성근처 묘련사에서 발견된 것을 기념하여 그 내력을 기문으로 남기고 여러문인들과 그 석지조에 차를 끓여 마셨다
조선 시대...
1.고려 말 원나라로 부터 성리학이 들어 오면서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심신수양의 도구로 차가 사용
2. 고려시대의 불교적 차문화에서 유교적 차문화로 바뀜.(왕족위주---선비위주)
3. 명나라의 차 문화 영향으로 고급차들이 많이 등장.
4. 우리나라의 다성 초의선사는 정약용,김정희등과 교류를 통해 차 문화 보급
5. 왕실의 차문화 (고려때 차문화를 계승 발전)
-다방茶房 : 왕실의 다례를 주관하는 일을 함.
세종때는 특별 채용 시험을 통해 다방의 관리를 뽑음.
-다시茶時: 고려때 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대부분의 관청에서 차 마시는 시간이 있었음.
밤에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며 국가의 일을 논하고, 부정을 저지를 자에
대해 처벌을 논하기도 함.
-다모茶母 : 관청의 차 심부를 하는 하는 서민층 여성
조선 중엽에는 비밀 형사 역활을 함.
6. 조선 전기 왕의 제사나 상례에 차를 올렸다. 왕과 왕후의 기제사 때나 묘제사때 주로 다(차)탕을 올렸다.
7. 선비들은 안빈낙도의 정신으로 차 생활을 즐겼다.
조선시대 왕조실록에 나타난 차의 기록은 천오백 회가 넘는다
조선시대 차(茶)백과사전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차(茶)에 관한 내용이 세부적이면서도 방대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차의 종류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작설차(雀舌茶). 죽로차(竹露茶).보림차(寶林茶).황 차(黃 茶). 황금차(黃金茶).뇌소차(雷笑茶). 선 차(仙 茶).노아차(露芽茶).소 차(小 茶).
용척다병(龍脊茶餠).
조선의 대용차: 백산차(白山茶).해아차(孩兒茶).국화차(菊花茶).인삼차(人蔘茶).천궁차(川芎茶).구기차(拘杞茶).기국차(杞菊茶)
우유차(牛乳茶).오과차(五果茶).송절차(松節茶).상지차(桑枝茶).귤피차(橘皮茶)
중국의 수입차는 용단차, 봉단차, 건안차, 용정차, 보이차, 자순차, 황차, 향편차
다인
다산 정약용 茶山 丁若鏞 (정약용 1762 - 1836 영조 38년 - 헌종 2년)
1801년(순조元年) 申酉邪獄(신유사옥)에 연류되어 全南康津으로 유배되어 1 8 년간 귀양살이를 하다가 57세(1818)에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 살다가 1836년 75세로 별세 茶山은 1 8 년간 유배 생활동안 牧民心書, 經世遺表, 欽欽新書등 三部作외 500여권 의 저서를 남김
茶山은 귀양지에서 茶山草堂을 지어 손수물을 길어 茶를 끓였다. 그가 유배된 뒷山에 茶나무가 많고, 野生茶 나무를 키우고 유유히 뜨는 구름, 나는새, 푸른산, 떨어지 는 낙엽, 빗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의 손으로 不間水를 떠다 茶를 끓였다.
(책뿐인 茶山草堂 오직 봄꽃 만발하고 계곡을 흐르는 물 비개인 뒤 귤나무숲의 아름다움이여 나는 바위터 샘물을 길어 차병을 씻네)
茶山은 44세(1805)때에 10살 아래인 大芚寺(대둔사 : 대흥사)의 兒庵(아암) 惠藏(혜 장) 스님을 만나 茶生活에 심취 茶山은 兒庵에게 周易(주역)을 가르치고 茶를 얻어 마셨다.
茶山은 茶가 나쁜 버릇을 고친다고 하였으며 茶를 잘재배하면 中國의 馬(말)과 바 꾸어 나라살핌에 보탬이 된다고 주장
茶山이 1 8 1 8년 유배생활에서 풀려 고향으로 귀향하자 康津(강진)의 제자 18명이 모 여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茶信契(다신계)를 조직하였다.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김정희 1786 - 1856 정조 10년 - 철종 7년)
(참선과 茶 끓이는 일로 한해를 보냈다)는 말이나 草衣에게 써준「茗禪」에는
「草衣가 손수만든 茶를 보내어 왔는데 그제다(製茶) 솜씨를 칭찬하고 글로써 이를 보답한다」고 쓰여있다. 그의 茶詩 20여수가 전해지고 있다.
초의선사 (장의순) 草衣禪師 (초의선사 1786 - 1866 정조 10년 - 고종 3년)
차(茶)에 관한 그의 저술로 다신전(茶神傳).동다송(東茶頌)있어 차(茶)에 관한 모든 것을 정리하였다..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
기타...
한국 최고령 차나무 500 ~ 700년 추정 하동 정금리 차나무 (경산남도 기념물 지정)
하동은 차 시배지로 신라 김대엽이 처음 차를 심은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