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의 귀족과 부자들이 강자맥적(羌煮貊炙)을 즐긴다고 걱정하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숯불구이가 중국에서 너무 유행한다고 걱정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설날이면 단향회를 열어, 불을 피워놓고 설야멱(雪夜覓)을 먹는다고 했는데 대나무 꼬챙이에 쇠고기를 꽂아 굽는 것이라는 설명이 추재집(秋齋集)에 나온다.
신라시대에도 박달나무로 숯불을 피운 후 고기를 구워 먹는 모임이 있었으니, 송나라보다 이전이다.
원나라에서는 고려에서 쇠고기를 수입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숙수까지 초빙해 갔다.
고려의 왕이 원나라에 탐라(제주)의 쇠고기를 원나라로 보냈는데
고기를 굽는 요리사도 함께 갔다고 했다.
조선시대의 東國歲時記에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음력 10월 1일은 숯불에 고기 구워 먹는 날이며.
화로에 숯불을 화로에 피워놓고 번철을 올려놓은 후, 쇠고기를 기름, 간장, 파,마늘 등으로 양념해 구우며 화롯가에 둘러 앉아 먹는데 이를 난로회라고 한다.
그리고, 숯불구이를 먹는 유래를 설명했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10월 초하루에 관리들이 난로에 피울 숯을 대궐에 보낸 후 민간에서는 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며 난로회를 갖는데 지금 우리나라 풍속도 그러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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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의하면
지금은 철망이 있어, 꼬챙이가 필요 없어졌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철사로 제작된 석쇠가 1800년대 초에 이미 이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왜인이 만든 무연 로스터는
불고기 역사에 아무 의미도 없으며
안중에도 없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