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카레라이스를 처음으로 소개한 클라크
일본에 카레라이스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 클라크 박사다.
명치5년(1872)까지 일본은 육식을 금지하여, 모든 국민이 왜소(矮小)하였기 때문에 주변 국가에서는 일본나라를 왜국(倭國)이라고 불렀다.
을사조약 직전,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일본을 경유 한국에 들어온《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도서출판 책과함께, 2003)의 기록에 보면,「코레아인들은 일본인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다.
또한 신체가 발달하되어 있었고, 균형이 잡혀 있었다.(32쪽).
일본에서는 내가 일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컸으나, 여기(코레아)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키가 컸고 체격이 우람했으며..., 그들의 자유롭고 품위있는 태도는 실제보다 그들을 더 커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그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꼴이 되었는데...,(57쪽)」는 것이다.
클라크 박사는 왜소한 일본인의 체위 향상을 위해, 명치정부에서 육식금지가 해금되자 카레라이스를 개발하여 북해도에서부터 보급하였던 것이다.
클라크 박사는 친구 선교사들과 함께 북해도에 포플라나무를 보급하기도 하여 일본에서는 우표까지 만들어 기리고 있다.
클라크 박사 기념우표와 포플라 우표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