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서 수만명의 시민을 학살한 일본군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학살현장이 1966년 6월 11일 싱가폴에서 발견되었다. 2천명이 넘는 희생자들은 일본군이 점령중이던 1942년에서 1945년 사이에 처형되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 생존자의 증언으로 일본군의 만행은 백일하에 드러났고, 희생자들의 시신은 30여 곳에서 발견되었다.
일본군은 중국을 위해 기금을 모았거나 일본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주도한 싱가포르 중국인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1942년 2월, 일본군은 18세부터 50세의 모든 중국인 남자들은 5곳에 마련된 장소에 집합하라는 공고문을 게시했다. 헌병대가 집집마다 총검으로 위협하여 집합 장소로 몰아냈다. 수많은 중국계 시민들이 트럭에 실려 타나메라 베사르 해변으로 끌려갔다.
각자 등뒤로 손이 묶인 사람들이 줄줄이 차에서 내렸다. 일본군은 그들에게 바다를 향해 걸어갈 것을 명령했다. 그들이 어느 정도 걸어갔을 때 일본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사격이 끝난 후 일본군 병사들은 시체를 발로 차기도 하고 총검으로 찌르며 생존자가 없는지를 확인했다. 일본군은 시체를 그냥 방치해 두어 부패한 시신들이 조수를 따라 떠다녔다.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이러한 진상이 전해졌다.
일본군은 1942년 2월 18일에 중국인 청년 6000명을 학살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조사단은 시그랍, pungol, chang gi 등에서 대량의 시신을 발견. 학살된 사람은 5만에서 10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은 현지인들의 조사에 의하면 5만명∼10만명으로 추정되고, 일본군이 인정한 것만 해도 6000명이나 된다. 6000명이라고 해도 하나의 도시에서 죽인 민간인의 숫자로는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