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은 스스로를 잘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하고, 또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연극 배우로 살아간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 보여주기 위한 또 다른 자아로 일생을 산다.
이것이 바로 전범국 열도를 부정하는 왜인들의 자화상이다.
미국 유럽 국가들은 노예제, 식민지 경영에 대해서 죄를 인정한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너무나 쿨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
그러나 연극性 민족의 왜인은 처음에는 과거의 범죄에 대해서 인정하는 척하며 사죄하다가 곧바로 돌변해 버렸다.
이런 경우는 열도 이외 너무나 찾아보기 힘든 희귀적 일례이다.
오직 왜인만이 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오직 열도만이 가능한 가면的 연극性이다.
이것 때문에 한국인은 왜인에 대해서 신용할 수 없고 화가 더 난다.
왜인은 왜 cool하게 과거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지 못하는가?
미국과 유럽 백인처럼 왜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정석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변명과 왜곡 날조로 찬양 미화하는가?
할복의 전통도 일종의 연극性이다.
왜인은 전통적으로 타인에게 보여 주기 위한 쇼를 하고 살며 죽는다.
한국인은 이것이 싫기에 왜인을 증오한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정당하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라.
한국인은 그것마저 부정하는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
왜인이 진심으로 사죄하면 100년 간 갈등과 증오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양국의 우호는 이것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