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김
해의(海衣), 자채(紫菜), 청태(靑苔), 감태(甘苔)라고도 하며 마른김은 건태(乾苔)라 한다.
삼국유사(고려 충렬왕 11년. 1285년)에 기록된 김에 기록은 신라시대에 먹기 시작한것으로
복쌈(복리:福裏)은 대보름날에 취나물이나 배추 잎, 혹은
김에 밥을 싸서 먹는 것을 말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경상도지리지.1420년)에 토산품으로 기록된 것과
(동국여지승람.1486년)에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으로 기록된 것이 있다
우리 민속에 정월 보름에 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설이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35273
김 양식
1640년 인조 때 전남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金汝瀷)이라는 사람이 해변에 표류해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보고 양식하기 시작하였다는 내용의 1714년 2월 광양현감 허심이 쓴 김여익 공의 묘표에 전해내려오고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지리지등 문헌상에도 이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역사적인 사실을 뒷바침하고 있다.
일본의 김양식을 시작한 겐로쿠시대(1688~1703)보다 최고 60년전에 김을 양식했다
1919년 종중에서 건립한 영모재와 김여익 공의 위패와 묘표문이 보관되어 있는 인호사,
김 생산 도구 32종 53점이 전시되어 있는 김 시식 유물 전시관이 당시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김 시식지는 1987년 6월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광양시에서는 유일하게 김과 관련한 지정 문화재로 김의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놀이인
"용지 큰줄다리기가" 300여 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021757
자세한 기록은...
해우, 해의(海衣), 해태(海苔)라고 불리는 김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먹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진상품과 무역품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17세기부터 양식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주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만든다.
삼국유사(고려 충렬왕 11년. 1285년)에 기록된 김에 기록은 신라시대에 먹기 시작한 기록
김이라는 현대어가 해태(海苔)라고 표현된 최초의 기록은
1817년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의 저서 (경세유표 經世遺表)에 나타난다.
1650년경 전라남도의 광양의 김여익(金汝翼 : 1606∼1660)이 처음으로 양식법을 찾아내서
보급했으며 이때 특별히 부를 이름이 없어서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부르게 되었다
김은 (삼국유사)에 처음 나와 신라시대 때부터 먹은 것으로 보이며 이 밖에 (경상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김을 토산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1429년 (세종실록)에 명나라에 보낼 물건 중 하나로 해의(海衣)가 있는데, 김을 부르는 말이다.
조선시대 동안에는 충청도 태안군, 경상도 울산군, 동래현, 영덕현과 전라도 일부지역에서 김을
만들어 서울로 올리는 진상품의 하나였다. 이렇듯 귀한 먹거리여서 1650년에는 1첩의 값이
목면 20필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
인조18년(1640년)에 전라남도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이 처음 김을 양식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대나무나 참나무 가지를 간석제에 세워 김을 이 가지에 달라붙어 자라게 하는 섶 양식이었다.
김의 양식법은 완도 조약도의 김유봉, 완도 고금면의 정시원에 의해서도 시작되었다
김여익이 김양식법을 고안한 것은 1640년에서 1660년(현종 1)이다.
완도·조약도의 김유몽(金有夢), 완도 고금면의 정시원(鄭時元)의 해의 시식설보다 빨리 시작되었다.
1714년(숙종 40) 당시 광양현감이었던 허심이 지었다는 김여익의 묘표(墓表)에 기록되어 있다
김을 싸서 먹는 방법은
복쌈은 대보름날에 취나물이나 배추 잎, 혹은 김에 밥을 싸서 먹는 것을 말한다
동국세시기의 기록
19세기 중반에도 김을 쌈의 재료로 쓸 수 있었으므로, 판김이 존재했다
노적 쌓듯 쌓는다고 했으므로, 김에다 밥을 동그랗게 말았다.
19세기 문헌인 <시의전서>
김쌈은 김을 손으로 문질러 잡티를 뜯는다. 손질한 김을 소반 위에 펴놓고, 발갯깃으로 기름을 바르며 소금을 솔솔 뿌려 재워 구웠다가 네모반듯하게 잘라 담고 복판에 꼬지를 꽂는다.
(김쌈 - 시의전서, 19세기)
김매순(1776~1840)이 쓴 "열량세시기"의 ‘정월조’에 실린 기록
해의 등으로 밥을 싸서 먹는데 그것을 박점이라고 한다.
1849년 쓴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상원(15일)에 해의로 밥을 싸먹는데 이를 복리(福裏)라 한다
여러 장의 해의를 합해 간장에 참기름·깨소금·설탕·고춧가루를 섞어 바른 후 햇볕에 말려
불에 살짝 구워 반듯하게 썰어 상에 올리는 것이다 ("시의전서").
김에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과 설탕을 뿌려 재워두웠다가 석쇠에 구워 반듯하게
썰어 쌈으로 하였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김을 채취후 말릴때 쓰는 도구를 김 발장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재래식 김발장의 모습의 사진

해태(김) 연장
사진 9-134
재래식 김발틀. 재래식 고데 건조대
개량식 김발틀. 개량식 고데 건조대
(1648년도 유물)
사진 9-135
해태(김) 씻는 막대 섭꽂이 창. 김칼
(광양 김 박물관 민속및 구비전승에서 사진 참조)
이처럼 조선시대에 지금의 김양식과 건조하는 짚을 엮어서 발장을 만들고,
그 위에 해의를 고루 펴서 말린 뒤에 떼어내는 방법을 생각해낸것은 김여익입니다.
일본의 김양식은 겐로쿠시대(1688~1703)입니다만
일본보다 최고 60년전에 조선에서 판김과 김양식을 하고 있었는데
감히 한국인에게 김을 말하는가 어리석은 왜구씨? k
뭐? 김밥은 일본에서 왔다는? 이런 개소리는 하지말아라